무더위에 자칫 입맛을 잃어버리기 쉬운 여름철, 사라진 입맛을 되찾아주는 해산물이 있다. 단단한 몸에 원뿔꼴의 돌기가 많이 나 ‘바다의 파인애플’이라는 칭송을 듣는, 바다 향기를 머금은 달보드레한 멍게다. 특유의 외양 때문에 ‘못생겨도 맛은 좋다’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기도 한다.
얼마 전 경북 포항에서 어민이 아닌 사람이 몰래 잠수장비를 이용해 멍게를 불법으로 120kg이나 포획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포획을 자행할 정도로 자연산 멍게는 여름철이 제철인 맛깔스런 해산물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사람만 먹을 수 있었고 양식이 이뤄진 1960년대 이후에서야 전 국민이 멍게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양식 초창기에는 특유의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꽤 비싼 음식 축에 들었지만 요즘은 횟집에서 밑반찬으로 나올 만큼 흔해졌다. 쉽게 접하고 흔히 먹을 수 있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는 멍게를 이용한 각종 요리와 멍게에 함유된 영양분, 효능 등에 대해 알아본다.
멍게·비단멍게 등 종류 다양 … 회·비빔밥·젓갈 등 감칠맛에 풍미 더해
멍게(학명 Halocynthia roretzi)는 멍게과(Pyuridae)에 속하는 척삭동물로 몸빛은 대체로 선홍색이다. 껍질에는 우둘투둘한 돌기가 있고 멍게가 입을 열었을 때 위쪽에 물을 넣고 빼는 십(十)자 모양의 입수공과 일(一)자 모양의 출수공이 있다. 이를 통해 각종 유기물과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다.
아래쪽에는 뿌리가 있어 암석이나 조개처럼 단단한 곳에 달라붙어 산다. 한 개체에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이며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두 가지 방법으로 번식하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 유생일 때는 뇌와 척삭 등 제법 고등한 형태의 기관을 갖추지만 한곳에 정착한 이후에는 스스로 뇌를 소화해버린다. ‘척삭’이란 몸길이 방향으로 난 몸의 지지끈을 말하는데 척추동물은 척삭이 척추로 발전한 반면 척삭동물은 발전하지 못한 채 성체가 된다.
멍게는 한국과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데 우리나라는 전 연안에 서식하나 특히 동해와 남해안에 많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최근에는 양식으로 생산하는데 경남 통영과 거제 지역의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멍게가 전국 유통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멍게는 우렁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멍게의 본 명칭이 ‘우렁쉥이’였는데 경상도 방언인 ‘멍게’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멍게라 불리게 됐다. 현재는 멍게와 우렁쉥이 모두 표준어로 인정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멍게의 종류는 수산시장이나 횟집에서 흔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준명 멍게를 비롯해 붉은멍게(비단멍게), 끈멍게(돌멍게) 등 다양하다. 가장 쉽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멍게는 표준명 멍게다. 울퉁불퉁한 껍질에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4월부터 8월까지가 제철이지만 양식을 많이 하는 덕분에 요즘은 사계절 내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단멍게로 불리는 붉은멍게는 껍질이 매끈하고 겉과 속이 붉은 게 특징이다. 자연산으로 쌉싸름한 맛이 적고 껍질이 얇으며 가격은 멍게보다 비싸다. 돌멍게로 불리는 끈멍게는 100% 자연산으로 멍게들 중 가장 고급 품종이다. 겉은 짙은 황갈색을 띠며 돌과 비슷한 외형이다. 껍질은 매우 두껍지만 속살이 부드럽고 시원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 바다에 유입된 외래종인 투명한 유령멍게와 분홍색의 분홍멍게는 먹을 수 없다. 폭발적인 번식력으로 우리 바다의 생태계를 해치고 양식 어민에 피해를 입히고 있어 우려스럽다.
제철 멍게를 보다 맛있게 즐기려면 무엇보다 신선한 것을 고르는 게 우선이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다. 껍질의 색이 붉고 크기가 고르고 단단하며 광택이 나는 것을 고르면 된다. 또 껍질을 까고 난 알맹이가 선명한 오렌지색이며 특유의 향을 가득 품고 있는 게 맛이 좋다.
멍게는 조개나 해삼처럼 따로 해감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후 바로 손질하면 된다. 먼저 멍게의 양 쪽 끝 부분을 잘라 물을 빼준 후 몸체를 반으로 갈라 껍질과 속살을 분리한다. 속살에 검은 내장이 보인다면 이것은 제거해준다.
멍게는 날것 그대로 먹어야 진짜배기 맛을 느끼기에 좋다. 영양 가득한 멍게는 회로는 물론 멍게밥·멍게비빔밥·멍게젓갈 등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샐러드에도 사용하고 있다. 회 또는 비빔밥으로 먹기에는 여름철 멍게가 제격이다. 여름철에는 멍게에 글리코겐 함량이 풍부해져 1년 중 가장 맛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선한 멍게에 초장과 채소를 곁들인 멍게비빔밥이 별미로 멍게비빔밥을 섭취하면 대장염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채소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대장 내 염증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까닭이다.
멍게와 초장은 음식궁합도 아주 좋다. 초장이 멍게의 비린 맛을 잡아주고 특유의 향을 배가시켜주는 것은 물론 고추장과 식초 등 따뜻한 기운의 초장 성분이 멍게의 찬 성질을 중화시켜줘 영양학적으로도 궁합이 잘 맞는다. 멍게를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와 양념을 넣어 만드는 멍게젓갈도 특유의 감칠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단백질 풍부 저지방 해산물 … 신티올·타우린 성분 숙취해소·피로회복 도움
여름철 미각을 사로잡는 멍게는 식재료로서는 물론 영양학적 가치가 높고 질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비타민 A·B2·B6·C와 나트륨·칼륨·칼슘·철·인 등 신체대사에 필요한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영양의 보고(寶庫)다. 100g당 80Kcal 정도로 해삼·해파리와 함께 지방질이 거의 없는 3대 저칼로리 해산물이다. 반면 단백질 함량이 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 또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멍게를 먹을 때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나는데 이는 불포화 알코올인 신티올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신티올은 숙취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술안주로도 제격인 것은 이 때문이다. 멍게는 다른 동물에 비해 글리코겐 함량도 많은 편이다. 글리코겐은 피로 해소에 좋으며 성장 증진, 감기·천식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멍게에는 아연도 함유돼 질병 초래 원인으로 작용하는 몸속 염증과 세포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제철 멍게는 아연이 더욱 풍부해 염증을 유발하는 독소를 체외로 배출하며 면역력을 증강시켜 외부의 세균으로부터 인체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농촌진흥청이 100g 당 아연 함량을 비교한 결과 꼬막 1.8mg, 주꾸미는 3mg, 멍게 6mg으로 멍게는 꼬막의 약 3배, 주꾸미의 약 2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멍게에는 타우린이 다량 함유돼 피로회복과 노화방지는 물론 심장 및 혈관 강화에 도움이 된다. EPA 성분도 있어 성인병 예방에도 유익하다. 또 바나듐이라는 무기물이 고농축으로 함유돼 천연의 인슐린으로서 당뇨병에도 이롭다. 멍게에 함유된 콘드로이친 성분은 연골에 영양을 공급해 연골을 파괴하는 효소를 억제하고 염증을 가라앉혀 연골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밖에 멍게 껍질에는 고농도 천연 식이섬유소가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 혈당을 감소시키고 변비를 방지하며 비만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여름철 입맛을 사로잡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멍게지만 섭취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멍게 자체가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는 식재료여서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의 경우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물론 건강한 일반인인 경우에도 가급적 하루 6개 이하로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