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피의 기생충 박멸 신약인 펙시니다졸(fexinidazole)이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아프리카 트리파노소마감염증 감비아형(African trypanosomiasis caused by the parasite Trypanosoma brucei gambiense) 1~2기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인간 아프리카 트리파노소마병(human African trypanosomiasis, HAT)으로도 불리는 수면병은 사하라 이남에서 서식하는 체체파리(tse-tse fly)에 의해 전파되는 기생충 감염성 질환으로 트리파노소마감염증(trypanosomiasis) 또는 파동편모충증(波動鞭毛蟲症)으로도 부른다.
펙시니다졸은 6세 이상이면서 체중이 최소한 20kg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풍토병인 수면병 중 가장 고빈도로 발생하는 감비아형 파동편모충증 환자의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완전 경구용(all-oral) 수면병 치료제가 FDA 승인을 얻은 것은 펙시니다졸이 처음이다. 10일 동안 1일 1회 경구 복용한다.
현재 사용 중인 수면병 치료제들은 효과적이지만 수액으로 정맥주입하거나 정맥 또는 근육 주사해야 하기 때문에 입원 또는 외래진료가 요구된다. 이는 아프리카 오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낮춰 환자와 의료인들에게 큰 제약으로 남아 있다.
펙시니다졸은 본 임상시험을 진행한 비영리 연구개발기관 소외질병의약품이니셔티브(Drugs for Neglected Diseases initiative DNDi)와 콩고민주공화국(DRC) 및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의 국가 수면병 프로그램, 사노피 등이 협력해 개발됐다. DNDi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경없는 의사회’가 받은 상금을 발판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5개 국제 연구기관이 출자해 2003년에 출범했다.
HAT는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 지역의 농촌지역 거주자 거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약 6500만여명이 수면병에 걸릴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2기 수면병 환자들의 경우 원충이 혈액뇌장벽을 뚫고 들어가 환자들에게서 신경정신병학적 증상들을 유발하게 된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거의 대부분 치명적인 양상으로 악화된다. WHO 보고에 따르면 아프리카 수면병 발생 건수는 사노피 측의 협력에 힘입어 2001~2020년 사이에 97%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노피는 WHO와 장기 협력을 계승해 FDA 승인 후에도 펙시니다졸을 WHO에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사노피 글로벌헬스사업 부문의 뤽 쿠이켄(Luc Kuykens) 수석 부사장은 “이번에 FDA의 허가를 취득한 것은 20년 전에 WHO와 함께 야심찬 소외 열대질환들과의 싸움을 시작한 이래 장기간 노력해온 핵심 성과물 중 하나”라며 “2018년 말 유럽 의약품청(EMA)이 유럽 이외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데 이어 FDA가 시판을 승인한 것은 수면병을 지속가능하게 퇴치하기 위한 노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강조했다.
FDA의 허가를 취득함에 따라 소외질병의약품이니셔티브(DNDi)는 ‘열대질환 우선심사 바우처’(PRV)을 1회 부여받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수면병을 포함한 소외 열대질환들의 신약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이 PRV는 사노피도 공유할 수 있어 현재 두 번째 수면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아코지보롤(acoziborole) 승인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파동편모충 감염에 의한 또다른 수면병으로는 중남미 열대 풍토병인 샤가스병(Chagas disease, American trypanosomiasis)이 있다. 크루스 파동편모충(Trypanosoma cruzi) 감염에 의해 발생하며 이를 매개하는 곤충은 흡혈 침린재류(Triatoma bug, 일명 키스벌레·kissing bug)다. 작년 8월 6일 FDA는 이 감염증의 치료제로 바이엘이 개발한 ‘람핏’(Lampit 성분명 니푸르티목스 nifurtimox)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