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제약사들이 연이어 임상 2상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증명하지 못하며 2호 치료제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된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Regkirona, 성분명 레그단비맙 Regdanvimab)에 자극 받아 경쟁적으로 치료제 개발의 속도전에 돌입했던 처음의 기세가 한풀 꺾어진 형국이다.
특히 셀트리온의 렉키로나가 글로벌 3상 완료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유의미한 동물효능시험 결과까지 확보해 세계 각국의 규제기관에 제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제약사 대부분은 전체 3단계로 구성된 임상 과정 중 2단계 결과를 바탕으로 빠른 의료현장 투입에 필요한 ‘조건부 허가’를 위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임상 2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조건부 허가에 실패했다고 해서 이를 치료제 개발 실패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유효성 평가지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새로운 임상 디자인을 적용해 진행하면,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상을 위해서는 추가적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신속한 치료제 개발에 제동이 걸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풍제약은 5일 본래 항말라리아 제제인 ‘피라맥스정’(Pyeamax 성분명 피로나리딘·아르테수네이트, Pyronaridine·Artesunate)의 임상 2상 결과 유효성 평가에서 1차평가지표로 설정된 ‘RT-PCR 진단키트기반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성 전환 환자비율(음전율)’에서 피라맥스군과 대조군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감염력이 있는 생존 바이러스 음전율을 추가 분석한 결과 고령·비만·기저질환 동반 등 중증 악화율이 높은 고위험군에서 피라맥스군은 투약 전 바이러스를 보유한 모든 환자에서 10일 후 100% 음전을 이룬 반면 위약군은 28일까지 100% 음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또 전체 환자군에서는 유의하지 않았지만 감염성 바이러스 고 보유환자에서 피라맥스 투약 3일차 바이러스 양이 위약군 대비 2.8배 유의적으로 감소된 점도 확인했다.
하지만 신풍제약은 조건부 허가 신청이 아닌 임상 3상에 대한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신풍제약이 임상 3상을 결정한 배경과 관련해 종근당의 ‘나파벨탄주’(나파모스타트, 본래 췌장염 치료, 혈액응고 억제) 사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종근당은 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 3월에는 나파벨탄의 임상 2상 결과로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지만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나파벨탄은 임상 2상에서 유효성 주 평가지표인 임상적 개선 시간에서 시험군과 대조군 간 차이를 보이진 못했지만 고위험군 환자 36명에서 증상 악화를 방지하고 치료기간과 치료율을 크게 개선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조건부 허가가 아닌 ‘추가 임상’, 즉 임상 3상 결과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고위험군 환자에서 가능성이 확인되기는 했으나 임상의 성공 지표랄 수 있는 주 평가지표에서 유효성이 입증되지 못했다는 자문단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종근당은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6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다국가 임상을 실시할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고려대 구로병원 등 총 13개 기관에서 환자를 모집 중이다.
한편 4월 초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품목허가를 신청했던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지코비딕주’(GC5131)는 아예 식약처 조건부 품목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식약처가 자문단 회의 결과 치료효과를 확증할 수 있는 임상 결과의 추가 제출을 권고했으나 녹십자는 품목허가를 포기하고 더 이상의 임상 진행은 중단한 상태다.
결국 금년 2월 국내 1호 치료제로 승인받은 셀트리온의 ‘렉키로나’ 이후 현재까지 국산 코로나19 치료제는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들이 연이어 임상2상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업계의 관심은 대웅제약의 ‘코비블록’(옛 호이스타정, 성분명 카모스타트 camostat 본래 췌장염 치료제)의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대웅제약의 코비블록도 지난해 12월 임상 2a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은 쓰라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웅제약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고 조건부 허가 통과 확률을 높일 수 있도록 코로나 경증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더 큰 규모의 임상 2b상을 진행을 완료하고 결과를 분석 중에 있다.
대웅제약 측은 “이달 중 임상 2b상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임상결과가 충족되면 3분기 내에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를 신청하는 동시에 임상 3상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며 추가적인 임상 3상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된 자가격리자, 중증 환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5일 일본의 제약사 니치이코(Nichi-Iko, 日醫工)는 미국 자회사인 세전트(SAGENT)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해온 카모스타트 임상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밝혀 대웅의 앞길은 밝지가 않다.
이밖에 지난 5월 B형간염 치료제 ‘레보비르캡슐’(Levovir 성분명 클레부딘 clevudine)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해 중등도 코로나19 환자 6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2상(CLV-201)의 톱라인 결과를 발표했던 부광약품과 코로나19 흡입 치료제 ‘UI030(부데소니드/아포르모테롤)’ 2상 임상시험 계획을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은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코로나19 국산 2호 치료제의 개발은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 기간 미뤄지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개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임상결과가 나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속도전에서 지구전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치료제로서의 추가적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완벽한 평가지표를 요구할 만큼 조건부 허가에 대한 식약처의 높아진 문턱과 100명 남짓 대상자로 임상시험을 하는 임상 2상과 달리 1000명 내외의 대상자를 모집해 치료제의 유효성을 본격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3상 임상시험이 생각처럼 녹록치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제약업계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코로나19 국산 2호 치료제가 출시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정 제약사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안전과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치료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신규 질병인 것은 맞지만 향후 계절독감처럼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수시로 감염을 경험하게 되는 질병으로 토착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치료제가 꼭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가급적 이른 시기에 국산 2호 치료제가 출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