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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몸을 보호하는 자동경보체계 ‘스테로이드’의 역습
  • 박수현 기자
  • 등록 2020-11-09 11:08:04
  • 수정 2020-11-09 22: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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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도하게 분출되면 면역체계 저하, 과민, 불면증, 혈당증가, 혈압상승 등 이상반응 나타나

스트레스반응 시 우리 몸을 지켜주던 ‘코르티솔’ 호르몬도 현대인의 장기화된 스트레스로 체내에서 과잉 분비되면 역으로 인체를 공격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 중 당질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의 일종인 코르티솔(Cortisol, 화학식명 하이드로코르티손,  hydrocortisone)은 체내에서 ‘투쟁 도피 반응’을 기반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해 왔다. 덕분에 인류는 포식자를 즉시 알아보고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었다. 급성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야수, 무법적 폭력, 자연재해, 전쟁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대신 현대인의 삶은 경쟁 스트레스, 교통체증, 마감시한 등 당장 위험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옥죄는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이에 대적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인체는 코르티솔이란 자동경보시스템을 켜놓고 24시간 대비한다. 하지만 코르티솔은 몸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적응하거나 대항하는 다양한 호르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게 코르티솔이다. 콩팥의 부신피질에서 생성된다. 외부의 스트레스와 같은 자극에 맞서 몸이 최대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분비돼 혈압과 포도당 수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즉 코르티솔은 간‧근육‧지방세포 등에 작용해 스트레스에 대항, 몸 전체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게 하는 신호를 전달한다. 지방세포는 지방산을 공급하고, 근육세포는 단백질을 분해해 에너지로 사용되며, 간에서는 글루코겐을 합성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세포로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코르티솔은 포도당 대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글루코코르티코이드’로 불린다.
 
예컨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리의 몸은 그러한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따라서 신체의 신경계에서는 교감신경계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 노르에피네프린, 스테로이드 계열의 호르몬도 함께 분비된다.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은 심장박동을 높이고 적에게 맞설 수 있는 흥분감과 용기를 제공한다. 반면 스테로이드는 교감신경에 의한 과도한 자극이나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을 총칭해 ‘스트레스호르몬’으로 불리지만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상태를 잘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감정적으로 불편하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면서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코르티솔이 누그러뜨려 준다.

코티솔은 섭취된 음식을 분해해 당분이 간에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글리코겐신생, glycogenesis)되도록 촉진하기도 하고 인체에 에너지가 필요하면 간에 저장된 당분과 지방세포의 지방산을 혈액으로 보내 쓸 수 있게 해준다. 세포에서 당분의 이용(해당작용 glycolysis)을 억제하고, 간과 위장관을 제외한 모든 세포의(특히 근육) 단백질을 줄이면서 간에서 아미노산 이용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이 호르몬은 포도당신생(糖新生, Gluconeogenesis 지방질, 단백 등 당분 이외의 것으로 글리코겐 합성)을 통한 혈당 증가, 면역시스템 저하,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대사 촉진을 지휘한다. 뼈의 생성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임신 30주와 32주 사이에는 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해 태아의 폐가 완성되는 것을 돕는다.
 
코르티솔은 새벽과 오전에 가장 많이 분비되고 낮에는 중간, 저녁과 밤이 되면 적게 분비가 된다. 즉 평온한 상태에서는 활동을 쉬고, 일을 할 때 다시 늘어나면서 항상 적정량이 분비된다. 인체의 과도한 면역반응과 알레르기반응을 줄여주는 것도 코르티솔의 대표적인 역할이다.
 
코르티솔 합성 및 분비 조절 과정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부신피질(adrenal cortex)에서 생성 분비된다. 코텍스에서 유래돼 이름도 코티솔이다. 부신피질의 다발층에서는 코티솔, 망상체에서는 성호르몬, 사구체에서는 알도스테론이 각각 만들어진다.

 

인체에는 크게 두 종류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신장에서 무기물이나 이온 등의 재흡수를 조절하는 무기질 코르티코이드(mineralocorticoid)이고, 두 번째는 포도당신생 과정(gluconeogenesis)을 조절하고 면역반응을 낮추는 당질 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이다.
 
코르티솔은 당질 코르티코이드계에 해당한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내부에서 콜레스테롤로부터 만들어지는데, 콜레스테롤의 곁사슬(side chain)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또는 스테로이드 링 구조에 산소 분자를 도입할 때 생성된다.
 
코르티코트로핀분비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은 시상하부(hypothalamus)에서 분비돼 뇌하수체 전엽(anterior pituitary)을 자극한다. 그 결과 뇌하수체 전엽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이 분비된다.
 
방출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은 혈관을 타고 부신피질의 다발층(zona fasciculata)에 도달해 코르티솔의 분비를 유도한다. 이런 과정으로 코티솔이 적정량보다 많아지면 시상하부에서 CRH의 분비를 억제하여 음성피드백(negative feedback system)을 형성하고 코르티솔의 양이 적절히 낮아지도록 유도한다.
 
호르몬의 단계적 조절(hormone cascade)은 최종 호르몬의 양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데에 도움을 주며 적은 양의 상위 단계 호르몬으로도 하위 단계에서 증폭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코르티솔 과도한 분비에 따른 부작용 … 체중증가‧근골격계 이상‧면역력 저하‧우울증 등
 
스트레스 상황이 끝나면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하고 정상으로 돌아가지만, 현대의 스트레스는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여 코르티솔 수치는 오랫동안 높은 상태로 유지된다. 이게 만성 스트레스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장기간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면역체계 등에 나쁜 영향을 준다. 이필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코르티솔 농도가 높은 사람은 암을 포함한 더 많은 퇴행성 질환을 앓는 경향을 보인다”며 “정서가 불안하고 성기능이 저하되며 콜레스테롤과 인슐린 대사가 나빠서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의 유발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는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농도를 낮춰 성욕 저하를 야기하고 더러 발기부전에 이를 수 있다. 수분 정체에 따른 부종, 고혈압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의 하나다. 무월경도 찾아올 수 있다. 

 
만성스트레스와 더불어 과로에 시달리고 피로한 상태인 현대사회에서는 코르티솔 분비량이 기본을 초과해 과량 분비되면서 부신도 생성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면 분비량이 줄게 되고 원래 자리에서 역할을 하던 코르티솔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스트레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우선 급격한 체중 증가가 초래될 수 있다.  높은 코르티솔의 영향으로 어깨, 가슴, 등과 같은 부위에 지방이 쌓이기 시작한다. 상반신이 두드러진 변화와 함께 이상하리 만큼 팔과 다리에는 살이 붙지 않는다.
 
다음은 피부 증상이다. 코르티솔 과다 분비는 피부에도 영향을 줘서 여드름, 가슴‧복부 및 허벅지에 생기는 보랏빛 병변, 멍, 얼굴과 몸에 털이 풍성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근골격계 증상에도 이상이 생긴다. 높은 코르티솔은 근육과 뼈에도 영향을 미쳐서 뼈 구조를 약하게 하며 특히 갈비뼈와 척추에 골절 위험이 커진다.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흉선도 코르티솔 과다 분비의 영향을 받는다. 높은 코르티솔은 세포의 죽음을 초래하며 면역체계가 바이러스 대신 신체 조직을 공격하게 만든다. 면역체계의 가장 흔한 증상은 천식과 알레르기이다. 루푸스, 크론병 또는 섬유근육통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기분 변화의 폭이 커진다. 불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나타나는 가장 흔한 증상으로 온종일 갑작스럽게 기분이 바뀌면서, 심각한 우울증 징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높은 코르티솔 수치가 혈류와 뇌로 공급되는 포도당을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뇌세포가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을 방해하며 일부 세포를 죽게 할 수도 있다.
 
코르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돼 생산된 에너지는 몸에 피로, 과민증, 불면증이라는 역효과를 낳는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체내 코르티솔 수치는 에너지 공급을 위해 오전 8시에 높아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코르티솔이 과잉 분비되는 쿠싱증후군 환자는 밤에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온종일 과도한 활동으로 휴식을 취해야 할 야간에 코르티솔이 과잉 분비되면서 오히려 긴장이 풀리지 않고 푹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코르티솔 수치 낮추는 법 … 카페인 조절‧수면 시간 확보‧운동 등
 
증가한 체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방법도 있다. 첫 번째는 커피 끊기다. 카페인은 코르티솔 수치를 시간당 최소 30% 정도 증가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효과를 18시간 동안 연장하기도 한다. 이화작용 물질대사를 낮추고 동화작용 물질대사를 높이고 싶다면 커피는 당분간 끊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수면 시간 늘리기다. 자기 전에 카밀레나 서양쥐오줌풀을 달인 차를 마시며 수면 주기를 개선하면 신체는 더 빠르고 오랫동안 수면을 취할 수 있다. 양질의 수면은 체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춰주면서 어리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해 세월의 영향을 최소화해준다.
 
세 번째는 운동하기다. 규칙적인 운동은 세로토닌 및 도파민의 생성을 높이고 근육량을 늘려 불안이나 우울증이 발생할 위험을 낮춰준다. 운동을 통해 체내에 축적되는 과도한 에너지를 더 많이 태우고 코르티솔 수치를 낮출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혈당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탄수화물, 단백질, 섬유질이 풍부한 식사를 통해 혈당치를 관리하는 것인데 이것들을 골고루 챙겨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비타민B, 칼슘, 마그네슘, 크롬, 아연, 비타민C, 알파리포산(ALA)과 같은 보조제의 섭취가 권장된다. 

코르티솔 스테로이드를 치료제로? … 감기‧염증‧알레르기 등 사실상 만병통치약급
 
다양한 형태의 합성 코르티솔은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항염증제로서 각종 염증성‧알레르기 질환을 개선한다. 
 
코르티솔 스테로이드의 경우 사실상 만병통치약급으로 처방된다. 일단 감기나 염증, 알레르기, 관절염, 피부병 등 세균감염성 질환이 아닌 거의 대부분의 질병에 쓴다. 개, 고양이, 말, 돼지, 소 등 웬만한 포유류에도 통용된다. 곰팡이성, 지루성 피부염 등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질환에도 쓴다. 진균감염에 쓰면 진균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리지 않느냐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가려움증을 제어하는 데 스테로이드만한 게 없어 널리 활용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광범위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의 조합은 세계 어느 나라나 일반약으로 몇가지 정도는 허용돼 있다. 

어디서나 잘 쓰이지만, 일단 스테로이드를 가장 애용하는 진료과 중 하나가 피부과다. 피부병 약으로 처방받으면 십중팔구 스테로이드다. 강력한 소염 및 항소양 작용으로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부신의 부담을 덜어줘서 피로 회복에 힘을 실어주고 피부결도 한결 좋아진다. 여드름도 줄어들며 피부가 매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효능과 투여 목적이 광범위한 만큼 투여 경로도 다양해서 먹는 약부터 시작해 주사제, 연고, 좌약, 비강 스프레이, 흡입제 등 거의 모든 제형으로 존재한다. 
 
대다수가 코르티솔(하이드로코티손)과 코르티손을 혼동한다. 코르티손(cortisone)에 수소 하나가 더 붙는 게 코르티솔이다. 두 가지 약물의 큰 차이는 없다.  코르티손의 강도는 코르티솔에 비해 80~90% 정도다. 코르티손을 코르티솔의 활성형 대사산물로 보기도 한다.
 
코르티손은 1949년 류머티즘의 특효약으로 발표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한 환자에 필요한 1일분의 코르티손을 만들려면 원료인 소의 부신이 40마리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세계의 모든 환자가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약효의 강도는 높인 하이드로코르티손·프레드니손·프레드니솔론 등이 합성 스테로이드가 값싸게 제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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