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재벌가 및 연예인의 의료용 마약 불법 투약 스캔들이다. 이 때 꾸준히 언급되는 ‘프로포폴(propofol)’은 대중에게 마치 마약처럼 비춰지기도 하나 사실은 의료용 수면마취제다.
흔히 수면마취의 정확한 의학적 명칭은 ‘의식하 진정요법’이다. 마취를 해도 의식은 깨어 있다는 의미로 환자가 물리적 자극이나 언어에 의한 지시사항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수면마취는 환자의 통증이나 불안감을 완화해 의료진의 원활한 시술을 돕는다.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수면마취제는 크게 프로포폴, 미다졸람(midazolam), 케타민(ketamine) 등이 있다.
우유주사 프로포폴, 오·남용 시 호흡 부작용 발생
프로포폴은 1977년 영국의 화학회사인 ICI가 화학합성으로 개발한 수면마취제다. 페놀기가 붙어있는 화합물로서 실온에서 물에 녹지 않아 물 대신 대두유에 약품을 녹여 주사약으로 만들었다. 이 대두유로 인해 탁한 흰색을 띠어 ‘우유주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 우유와는 무관하다. 대두유 외에 난황레시틴(계란 노른자), 글리세롤 등이 용매로 사용된다. 따라서 콩이나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프로포폴은 정맥으로 투여하며 빠르게 단시간 동안 작용한다. 주로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성형수술의 마취제로 사용된다.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를 진정시키는 용도로도 쓰인다. 정확한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면 유용하고 안전한 정맥주사 마취제로 평가된다.
프로포폴을 맞으면 뇌에서 수면을 유도하는 ‘GABA(γ-Aminobutyric acid, 감마아미노부티르산)’라는 물질이 분비되면서 ‘억제성 신경전달’을 항진시켜 빠르게 마취가 된다. 단순히 환자를 잠들게 하는 게 아니라 뇌기능을 억제하고 기억중추를 마비시켜 기억이 나지 않게 한다. 수면제와 마취제의 중간 성격을 모두 갖는다.
다른 마취제보다 마취유도 및 회복이 빠르며 오심·구토를 일으키지 않는 게 장점이다. 투여한 약물은 간에서 대사돼 모두 소변으로 빠져 나오며 체내에 남지 않는다.
유용한 만큼 문제점도 있다. 프로포폴을 투여하면 수면신호를 주는 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틸산 수치가 높아져 뇌내 ‘가바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음이온이 뇌세포 안으로 쭉 들어가면 흥분상태였던 뇌 세포가 잠잠해지면서 잠이 들고 의식이 사라진다. 이 때 뇌에서 행복감과 쾌감을 높이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돼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극도의 쾌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단 프로포폴을 맞는다고 무조건 마약처럼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포폴로 마취돼 잠이 든 상태에선 도파민 분비로 인한 도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즉 어쩌다 한 번 내시경시술이나 성형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맞는 것은 중독될 위험이 없다.
문제는 이 도취감을 느끼려고 마취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줄여 맞는 것이다. 장기간 적은 양의 프로포폴을 주기적으로 맞다보면 결국 중독되고 만다. 프로포폴에 중독되면 처음엔 조금씩 맞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점차 늘어나, 나중에는 끊고 싶어도 강력한 충동과 갈망을 이기지 못해 다시 찾게 된다.
암페타민(amphetamine)이나 헤로인(heroin) 등 환각성 마약에 중독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프로포폴 투여시 나오는 도파민 양은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인 미다졸람 주사를 맞았을 때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상 등 부작용을 유발해 ‘건망증 주사’로도 불린다.
프로포폴을 오·남용하면 수면 도중 무호흡 상태에 빠져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수술에 대한 부담감 탓에 거리낌 없이 수면마취를 요구하지만 그 위험성은 간과한다. 시술 중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프로포폴 용량을 늘려 깊은 진정상태를 유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도폐쇄나 호흡억제 등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프로포폴은 오·남용 사례가 빈번해 2011년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김덕경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프로포폴을 적정량 이상 투여하면 호흡 억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수면마취를 실시하는 게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동국제약 ‘포폴주사’, 명문제약 ‘프로바이브주’ 등이 대표적이다. 1% 주사제는 △성인 및 3세 이상 소아의 전신마취의 유도 및 유지 △인공호흡중인 중환자의 진정 △수술 및 진단시의 의식하 진정에 사용된다. 2% 주사제는 △성인 및 3세 이상 소아의 전신마취 유도 및 유지 △인공호흡중인 중환자의 진정에 쓰인다.
미다졸람, 오피오이드와 병용 시 호흡 저하 심하게 나타나
1986년 미국에서 승인된 미다졸람은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약물로 중추신경을 억제한다. 진통작용이 거의 없으며 있어도 아주 약하다. 대신 망각효과가 뛰어나 검사를 받을 때는 통증을 느껴도 검사를 받고 나면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진정 및 기억상실 효과 외에도 적정 혈중농도에 도달했을 때 음주를 한 듯 편안하고 이완된 효과가 나타난다.
적응증은 △수술 전 진정 및 수술 전후의 기억력장애 △단시간 진단 또는 내시경검사 시행 시 진정 목적 △다른 마취제 투여 전 전신마취 유도 목적 △ 중환자실 환자의 장기간 진정 등이다. 부광약품의 ‘부광미다졸람주사’, 명문제약 ‘미다컴주’ 등이 대표적이다.
미다졸람은 작용 발현시간이 빠르고, 작용시간이 짧으면서 기억상실 유도 효과가 있어 선호되는 약물이다. 혈관주사 후 1~2분이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3~4분에 최고치에 이르며 15∼80분 정도 지속된다. 미다졸람 제거율은 간이나 신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고령 혹은 비만한 사람에서 감소할 수 있다.
미다졸람의 초회 용량은 건강한 성인에서는 2~2.5mg(0.03∼0.07 mg/kg)을 가능한 천천히 1~2분 이상에 걸쳐 투여하는 게 좋다. 고령 혹은 허약한 환자는 1~1.5mg 부터 시작한다.
만약 마약성 진통제나 다른 중추신경계 억제 약물을 함께 사용한다면 30% 정도 감량이 필요하다. 검사 후 회복되까지 1~2시간이 걸리며 검사 당일 운전 혹은 고도의 판단이 필요한 업무는 피해야 한다.
심혈관계 억제 효과는 적은 편이나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주된 부작용은 호흡기능 저하이며 지나치게 많이 투여하면 무호흡 상태가 되기도 한다. 오피오이드를 병용한 환자에서는 호흡 저하가 더 심하게 일어난다.
미다졸람 정맥 투여 후 유발되는 호흡 억제는 3~5분 후에 최대가 되고 1~2시간 지속된다. 심한 저산소증이 발생 시 길항제(해독제)인 플루마제닐(Flumazenil) 투여한다. 효과가 3~5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므로 위급하면 관내 삽관 혹은 마스크로 충분한 산소를 공급한다.
진통·진정 효과 나타내는 케타민, 심박수·혈압 상승에 주의
펜사이클리딘(Phencyclidine)계 유도체인 케타민은 정맥 또는 근육으로 투여되며 진통·진정 효과가 있다. 케타민은 시상피질계(thalamocortical system)와 변연계(limbic system) 간의 기능적 해리를 일으켜 대뇌로 전달되는 통증 경로의 감성적인 부분을 척수 부위에서 차단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맥주입시 1분 안에 빠르게 작용하고 10∼15분 정도로 짧게 유지된다. 케타민은 주입이 쉽고, 벤조디아제핀나 오피오이드와 달리 기도와 심혈관계를 억제하지 않는 게 장점이다.
케타민은 호흡 억제 부작용은 적으나 교감신경 자극을 유발해 약물의존적으로 심박수, 혈압, 심박출량이 상승하는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허혈성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고혈압이 있는 환자는 피해야 한다. 다른 부작용으로 아나필락시스, 천식, 기도점막 부종 등을 포함한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또 두통, 혼란, 경련, 지남력 상실, 환각, 비정상적인 사고, 극도의 공포, 흥분, 비상식정인 행동, 불면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투여한 환자 6~12%에서 각성기 섬망(Emergence delirium)을 유발할 수 있다.
케타민은 △수술, 검사, 외과적 처치시 전신마취 △흡입마취 유도 △기타 마취제 보조제 등으로 사용되된다. 휴온스 ‘휴온스케타민염산염주사’ 등이 있다.
정맥주사는 체중 ㎏당 1~2㎎을 천천히 투여하고 필요에 따라 절반 또는 동량을 추가할 수 있다. 근육주사는 체중 ㎏당 5~10㎎을 투여하고 필요에 따라 초회량의 동량 또는 그 이하의 양을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