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제약사 재즈파마슈티컬스(Jazz Pharmaceuticals)와 스페인 제약사 파마마(PharmaMar)는 백금착제 항암제로 치료 중이거나 치료한 후에도 증상이 진행된 전이성 소세포 폐암(SCLC) 치료제 ‘젭젤카주’(Zepzelca, 스페인명 Zepsyre, 성분명 러비넥티딘, lurbinectedin, 코드명 PM1183)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 승인을 받았다.
젭젤카는 DNA의 구아닌 잔기(guanine residues)의 수소 대신 알킬기(탄소 2개 이상의 탄화수소기)를 치환시키는 알킬화제(alkylating drug)로서 유전자 전사, DNA 수리 경로 등에 일련의 억제작용을 함으로써 세포 주기를 교란시키고 종국엔 세포가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젭젤카는 지난 2월 FDA에 의해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됐고 표지개방, 다기관, 단일실험군 대상으로 이뤄진 2상 임상 PM1183-B-005-14 임상시험(Study B-005, NCT02454972)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에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획득했다. 총반응률(overall response rate, ORR) 및 반응기간(response duration)을 토대로 가속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승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려면 차후 확증시험에서 생존기간 연장 등 임상적 효용성을 입증하고 상세 내용을 기술해야 한다.
B-005 임상은 백금착제 항암화학요법제로 치료를 진행한 후에도 종양이 진행된 백금민감성 및 백금저항성 성인 소세포 폐암 환자 총 105명을 모집해 미국과 유럽 6개국 26개 병원에서 진행됐다. 이번 임상연구 결과는 ‘란셋 온콜로지’ 지난 5월호에 ‘소세포 폐암 환자 2차 치료제로서 러비넥테딘의 효과: 단일군, 표지개방, 임상 2상 바구니형 시험’(Lurbinectedin as second-line treatment for patients with small-cell lung cancer: a single-arm, open-label, phase 2 basket trial) 주제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환자들은 체표면적 1㎡당 3.2mg의 러비넥테딘을 3주마다 60분 이상 종양이 진행되거나 참을 수 없는 독성을 경험할 때까지 주사맞았다. 연구 결과 재발성 소세포폐암 환자 중 암 크기 축소 및 진행 중지 등의 반응을 보인 총반응률은 35%에 달했고 평균반응기간이 5.3개월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사외 독립적검토위원회(IRC)가 평가했을 때는 각각 30% 및 5.1개월로 파악됐다.
재즈파마슈티컬스의 브루스 코자드(Bruce Cozadd) 대표는 “소세포폐암은 아직까지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어서 젭젤카의 승인은 백금착제 치료 진행 중 또는 후에도 진행된 전이성 소세포폐암 환자들을 위한 중대한 진전이 이뤄진 것”이라며 “환자들이 재래식 항암화학요법제로 치료를 진행했을 때 처음에는 반응을 나타내다가 공격성 재발이 빈도 높게 뒤따르고 결국 치료제 저항성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신약이 미국 시장에 선보이면 항암제 부문에서 재즈파마슈티컬스의 존재감이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젭젤카는 내달 초 미국 시장에서 시판될 예정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세일럼(Winston-Salem)에 소재한 웨이크포레스트침례교병원(Wake Forest Baptist Health)의 종양학 전문가인 제프 페티(Jeff Petty) 박사는 “소세포 폐암의 공격적인 특성과 다수에서 재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반응이 입증된 효과적인 새 치료제가 나온 것에 흥분된다”고 말했다.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에게도 젭젤카가 재발성 소세포폐암에 추가할 수 있는 절실하게 필요한 치료 옵션이라고 강조했다.
파마마의 호세 마리아 페르난데즈 수자-파로(Jose Maria Fernandez Sousa-Faro) 대표는 “FDA가 젭젤카를 가속승인한 것은 지금까지 종종 간과해왔던 소세포폐암 환자군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의료상 니즈에 부응할 수 있음을 방증해주는 것”이라고 확언했다.
임상 결과 환자의 20% 이상에서 가장 빈도높게 수반된 부작용은 호중구감소증, 림프구감소증, 피로, 빈혈, 백혈구감소증,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 증가, 혈중 알라닌 아미노트랜스페라제(alanine aminotransferase) 수치 증가, 혈당 상승, 혈소판감소증, 구역, 식욕감퇴, 근골격계 통증, 알부민 수치 감소, 변비, 호흡곤란, 나트륨 수치 감소, 혈중 아스파르테이트 아미노트랜스페라제(aspartate aminotransferase) 수치 증가, 구토, 기침, 마그네슘 수치 감소, 설사 등이었다.
재즈파마슈티컬스과 파마마는 지난해 12월 19일 재즈파마슈티컬스 측에 젭젤카의 미국 판권을 올해 1월부터 이양하는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선불 계약금 2억달러, 향후 마일스톤 5억5000만달러, 올해 일정 시점(비공개) 안에 미국 승인이 이뤄질 경우 추가로 2억5000만달러츠를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19)에서 총반응률 35.2%과 치료 민감성 환자 비율(most sensitive to treatment) 45%란 성적표를 보여준 게 10억달러 빅딜의 단초가 됐다. 결국 신종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도 가속승인 절차를 거쳐 6월에 희소식을 듣게 됐다.
이번 승인은 파마마에게 그동안의 부진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1886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015년 10월 23일 안트라사이클린(anthracycline)를 포함한 화학요법을 받은 지방육종과 평활근육종 아류형 포함 진행성 연부조직육종(soft tissue sarcoma, STS) 치료제인 ‘욘델리스주사1.0밀리그램‘(YONDELIS 성분명 트라벡테딘 trabectedin)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이 약의 미국 파트너는 얀센(Janssen Research & Development)으로서 2014년 11월 24일 신약승인신청서(NDA)을 제출했다. 그러나 2018년 1월 중순 난소암 임상 3상 실패로 주가가 급락하는 등 침체기를 걸어왔다.
파마마는 마드리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애초 해양천연물에 기원한 항암제 등을 개발하다가 지금은 욘델리스, 젭젤카 외에 PM184, PM14 등 항암제 파이프라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분자진단회사인 지노미카(GENOMICA), 유전자침묵(gene silencing, RNAi) 치료제를 개발하는 사일런티스(Sylentis)를 관계사로 두고 있다.
재즈파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 90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항암제, 신경계질환치료제를 전문 개발하고 있다.
이번 젭젤카의 소세포폐암 치료제 승인으로 파마마와 제휴관계를 맺어온 보령제약이 빛을 볼 전망이다. 2017년 11월 보령제약은 젭젤카 국내 판권을 사들였다.
앞서 2016년 10월에는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아플리딘’(Aplidin 성분명 플리티뎁신 plitidepsin)을 도입했다. 플리티뎁신은 아플리디움 알비칸스(Aplidium albicans)라는 해양천연물을 원료로 하며, 종양세포 내 단백질(eEF1A2)에 작용하여 암세포를 억제하고 세포자살에 이르게 한다. 2016년 3월 파마마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의 19개 국가에서 255명 다발성골수종 환자를 대상으로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단독치료와 덱사메타손에 아플리딘을 추가하는 병용치료의 효과를 비교하는 3상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병용군은 단독군에 비교해 병의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35%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탈모 등 항암제 부작용이 적어 유망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2019년 1월 4일 호주 의약품 승인기관인 TGA(Therapeutic Goods Administration)로부터 승인을 받은 후 추가로 허가를 취득한 나라는 없다.
파마마는 플리티뎁신(plitidepsin)이 인비트로 시험에서 신종코로나감염증(COVID-19) 억제 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현재 스페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스페인 의료보건제품청(Spanish Medicines and Healthcare Products Agency, AEMPS)의 승인을 받아 2상 임상(APLICOV-PC)에 들어갔다고 지난 4월 28일 공표했다. 다의료기관, 무작위 배정, 병행, 표지개방 연구로 3가지 용량의 플리티뎁신으로 병원에 입원한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2상 1단계 연구는 2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전후의 바이러스 밀집도 변화, 증상적 개선 등의 지표를 측정한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최적 용량을 보건당국과 상의해 결정한 뒤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 들어갈 계획이다.
재즈파마는 임상시험에 앞서 신종 코로나(SARS-CoV-2)와 복제 및 전파 방식이 비슷한 코로나-19 바이러스(HCoV-229E)를 대상으로 한 아플리딘을 실험한 결과 eEF1A2(다발성골수종·뇌종양·난소암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억제하는 방식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복제 및 전파 억제와 유사해 치료제로서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시험은 스페인 국립고등연구위원회(Spanish National Research Council, Consejo Superior de Investigaciones Cientificas, CSIC) 산하 국립바이오테크센터(Centro Nacional de Biotecnologia, CNB)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