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한국화이자의 3세대 ALK 티로신키나제 억제제(TKI) ‘로비큐아정’(LORVIQUA, 성분명 롤라티닙 lorlatinib)의 건강보험 급여가 기존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제로 확대됐다.
ALK 변이 양성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존 1~2세대 약물은 이제 3세대의 보완제로서 역할에 그치게 됐다.
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anaplastic lymphoma kinase, ALK) 억제제는 2번 염색체 내 EML4-ALK 전좌(또는 융합이라고 함)에 의한 변이를 억제한다. 비정상적인 ALK 단백질의 ATP 포켓에 결합하여 에너지 대사를 차단, 비활성화하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ALK 단백질에 티로신 키나제가 작용하면 ATP가 ADP로 전환되면서 인산(PO₄)이 떨어져나오고 에너지가 발생하면서 암이 촉진되는데 이를 억제하는 게 ALK 억제제다. 넓게 보면 티로신키나제 억제제(tyrosine kinase inhibitor, TKI)에 속한다.
폐암 가운데 80~85%가 비소세포폐암(NSCLC)이다. 전체 폐암 중 3~5%를 차지하는 게 ALK 변이다. 전체 폐암 환자 중 30~40%에서 EGFR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고 있으며, ALK 변이가 그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ALK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EGFR 양성 비소세포폐암에 비해 빈도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에게서 발생하며, 뇌전이가 흔해 진단 당시에 뇌전이를 동반한 환자가 30%에 이른다.
대부분의 ALK 양성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빠른 질병 진행으로 인한 임상적 악화를 경험하며, 궁극적으로 1~2년 내에 질병이 진행되는 특징을 보인다. ALK 돌연변이 프로파일 및 융합 아형(fusion subtype)은 치료 반응성과 예후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ALK의 새로운 돌연변이는 치료 내성을 형성하고, 예후를 나쁘게 한다.
ALK 억제제는 발전 시기와 ALK 억제 효과에 따라 1~3세대로 나뉜다. 1세대로는 화이자의 ‘잴코리캡슐’(Xalkori, 성분명 크리조티닙, Crizotinib)이 있다. 2세대로는 노바티스의 ‘자이카디아캡슐’(ZYKADIA, 성분명 세리티닙, ceritinib), 로슈의 ‘알레센자캡슐’(ALECENSA, 성분명 알렉티닙, alectinib), 다케다의 ‘알룬브릭정’(Alunbrig 성분명 브리가티닙 Brigatinib) 등이 있다. 로비큐아는 3세대를 연 개척자다. 1세대는 당초 c-MET 억제제로 개발되다가 향후 ALK 억제효과가 추가로 밝혀졌다. 아직까지는 2세대가 표준치료제로 인식되고 있다. 한지연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롤라티닙의 강점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화이자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로비큐아의 1차 치료 급여 확대와 관련한 임상적 의미 및 최신 데이터를 공유했다.
로비큐아의 급여 확대는 단순한 접근성 향상을 넘어, 장기 생존 혜택을 제공하는 혁신 치료 옵션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날 소개된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인 ‘CROWN’ 연구의 5년 추적 결과에 따르면, 로비큐아는 기존 1세대 약물인 크리조티닙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81% 감소시켰다.
특히, 5년 시점(60개월 차) 무진행생존율(PFS)은 로비큐아 치료군이 60%로, 크리조티닙 치료군의 8% 대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참고로 3년 시점(36개월 차)에서는 각각 65%, 10% 수준이었다.
기존 2세대 ALK 억제제의 5년차 전체생존율(OS)이 60%인 것으로 미뤄볼 때, 로비큐아는 2세대 치료제가 겨우 누릴 수 있었던 기대여명을 질병(진행) 없는 상태로 지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CROWN은 이전 치료 이력이 없는 진행성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296명을 대상으로 롤라티닙(로비큐아)와 크리조티닙(잴코리)을 비교한 무작위 대조 3상 임상이다.
로비큐아 투여군은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에 도달하지 않았으며, 이는 기존에 보고된 ALK TKI 중 가장 긴 수치다. 반면 잴코리군은 9.1개월에 그쳤다.
두개내 진행(폐암의 뇌전이)까지 소요되는 시간의 중앙값 역시 로비큐아군은 중앙값에 이르지 않았으나(95% CI NR), 크리조티닙 군은 16.5개월(95% CI 12.7~21.9)에 그쳐, 로비큐아군의 두개내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이 94% 더 낮았다.
특히 로비큐아군에서는 기저 시점에 뇌전이가 없었던 114명의 환자 가운데 단 4명만 뇌로 진행됐다.
기저시점에 뇌전이가 없었던 환자에서 로비큐아군의 5년 무진행생존율은 63%로 잴코리의 10%와 비교해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이 76% 더 낮았다.
뿐만 아니라 기저시점에 뇌전이가 있었던 환자에서도 로비큐아군의 5년 무진행생존율은 54%로 중앙값에 이르지 않았던 반면 잴코리는 24개월 이전에 모든 환자에서 질병이 진행됐다.
여기에 더해 로비큐아군은 기저시점에 뇌전이가 있었던 환자에서 5년차에 두개 내에 질병이 진행하지 않은 환자가 83%(HR=0.03, 95% CI 0.01-0.13), 기저시점에 뇌전이가 없었던 환자에서는 96%(HR=0.05, 95% CI 0.02-0.13)에 달했다.
이 같은 양상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환자 대상 하위분석에서도 유지됐다. 아시아 환자에서도 로비큐아군의 무진행생존기간은 중앙값에 도달하지 않았으나, 잴코리는 9.2개월에 그쳤다.
또 로비큐아의 두개 내 질병 진행의 위험성은 5년 시점에서 잴코리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의 위험이 99% 더 낮았다.
간담회에 나온 한지연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비소세포폐암 중에서도 ALK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군은 분자 표적치료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집단”이라며 “로비큐아는 뇌혈관장벽(BBB)을 효과적으로 통과하도록 설계돼, 뇌 전이 병변에서도 충분한 약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고위험 환자군에서도 뛰어난 두개내 반응률과 장기 생존율을 보였으며, 임상 현장에서 강력한 1차 치료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LK 변이 폐암 환자의 약 24~46%는 진단 시점에 뇌 전이가 있거나 3년 이내에 발생하며, 뇌 전이는 환자의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1차 치료제 선택 시 이를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5년 이상의 추적관찰 데이터를 확보한 ALK TKI는 현재까지 로비큐아가 유일하며, 장기 생존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우수성이 입증됐다”며 “1세대 크리조티닙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1년 내 재발하고, 2세대인 브리가티닙과 알렉티닙 역시 각각 2년, 3년 내 절반 이상이 재발하지만, 로비큐아는 5년 시점에서도 절반 이상이 치료 반응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세대 약물과의 경쟁은 사실상 게임이 끝났고, 이 데이터를 뛰어넘는 4세대 약제의 개발도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로비큐아는 중추신경계(CNS)에 미치는 효과가 뛰어난 데 대한 반대급부로 1~2세대 약제 대비 CNS 관련 이상반응은 더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피험자의 약 42%에서 나타난 CNS 관련 주요 이상반응으로는 인지기능 저하, 기분변화, 말더듬, 혼란, 감정 기복 등이 있으며, 일부 환자에서 치료 초기나 용량 증량 시점에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다. 인지기능 저하(치매 유발 우려)를 이유로 로비큐아 대신 1~2세대 ALK 억제제를 고집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대부분은 약물용량 조절(축소)이나 증상 경과 관찰을 통해 조절 가능하지만 환자 및 보호자, 의료진의 사전 인지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국내 폐암 전문가라면 이미 2차 이상 치료에서 로비큐아를 사용한 경험이 많아 관련 부작용 관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비큐아는 2022년 5월 ALK 양성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의 1차 치료 적응증을 획득한 이후, 3년이 지나서야 건강보험 급여 확대가 적용됐다.
한지연 교수는 “ALK 폐암 환자의 약 25~30%는 더 좋은(세대수가 높은 ALK억제제) 치료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치료 중단을 경험한다”며 “로비큐아가 1차 치료에 급여 적용됨으로써 초기부터 강력한 치료 전략을 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는 생존 기간과 삶의 질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로비큐아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Category 1),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강력 권고), 유럽종양학회(ESMO, Tier I-A) 등 주요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도 1차 치료제로 권고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번 급여 확대를 계기로, 로비큐아가 실질적인 1차 치료 옵션으로 더욱 활발히 활용될 전망이다.
이는 1세대를 거치지 않고 3세대로 직행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치료 옵션을 먼저 사용하라’는 게 최근의 항암치료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로비큐아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평가다. 따라서 2세대 표적 치료제들은 로비큐아 치료에 내성이 생기거나, 초기 이상반응으로 더이상 치료를 이어갈 수 없는 환자의 대안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