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독일·프랑스·네덜란드 ‘포괄적 백신동맹’ 아스트라제네카와 4억도스 계약 … EU도 24억유로 예산 확보
독일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자국의 큐어백(CureVac)에 3억유로(약 4100억원)를 투입, 지분 23%를 인수키로 했다고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독일 정부의 국책은행인 KfW(Kreditanstalt für Wiederaufbau)가 나섰다. 단순히 백신회사에 자금을 지원해 백신 물량을 입도 선매하는 다른 나라와는 차원과 다르다. 독일 정부는 “큐어백의 경영 독립성을 유지하고 기업 전략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공공성에 입각해 사실상 국유화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이 큐어백 지분 투자에 나서는 바람에 이웃한 프랑스 등도 자국 백신회사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독일 정부의 지분 투자 직전에 미국이 큐어백을 인수하거나 기술을 사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가 파다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게 근거없는 루머는 아니었던 듯 독일 정부 페테르 알트마이어(Peter Altmaier) 경제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보를 팔 생각이 없다. 나도 자유시장주의자이지만,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분야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큐어백의 직전 CEO인 다니엘 메니첼라(Daniel Menichella)가 지난 3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돌연 사퇴했다. 그는 원활한 업무 수행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던 터라 백악관으로부터 모종의 제의를 받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잠재력 있는 외국 백신 개발회사의 기반을 미국으로 가져오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이 10억달러의 자본을 대는 조건으로 연구 결과에 대한 독점적 권리 보장을 원한다는 소식이 지난달 중순께 알려지기도 했다. 수 주 후 독일의 주간지 ‘Welt am Sonntag’(일요일 세계)는 “트럼프가 투자를 제안했고 COVID-19 연구성과를 미국에 귀속시키려 했다. 상황이 급반전돼 독일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어 당분간 큐어백을 둘러싼 밀고당기기는 정체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보도해 그 전말이 알려졌다. 메니첼라는 사직 이후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큐어백은 2000년 독일 튀빙겐대 연구진이 세운 바이오벤처다. m-RNA백신 전문 개발사로서 세계 최초의 mRNA 백신을 만들기 위해 미국 모더나(Moderna)와 경쟁하고 있다. 모더나는 전세계 백신 중 가장 임상 진행이 빨라 3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독일의 또다른 백신기업인 바이오엔테크(BioNTech)는 미국 빅파마인 화이자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지난 4월에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이들 연합은 지난 3일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초고속 실행계획’(Operation Warp Speed)에 따라 선정한 5대 백신 개발 업체에 들어갔다. 바이오엔테크(화이자) 역시 모더나, 큐어백과 같은 mRNA 백신으로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도록 코딩이 된 mRNA를 세포질에 주입한다. 독일과 미국에서 각각 4월말과 5월초에 임상 1/2상이 시작됐다.
큐어백은 정치적, 경영적 폭풍우가 몰아닥치는 환경 속에서도 연구개발을 지속해 이달 중 시행될 1/2a상 임상의 전망을 밝게 하는 괜찮은 전임상결과를 지난 5월 발표했다. 큐어백은 자사의 COVID-19 백신 후보가 동물모델에서 높은 수준의 바이러스 중화 역가를 생성,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개발에 성공하면 수억 도스 분량을 제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큐어백은 동물실험 결과 2μg(마이크로그램) 저용량의 백신후보물질이 COVID-19 감염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광견병, 독감, 호흡기세포융합(RES)바이러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mRNA 백신과 비슷했다. 실제로 광견병 백신의 경우 1상 연구에서 1μg의 저용량으로도 건강한 지원자에게 면역반응을 일으켰다. 큐어백으로서는 독일 정부의 출자로 이론을 실제 임상에서 검증해볼 실탄이 생겼다.
mRNA백신은 질병 특이적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mRNA 가닥을 함유, 질병에 대한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 시스템을 자극한다. 모더나와 큐어백의 COVID-19 백신은 신종 코로나가 건강한 세포를 감염시키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다.
페테르 알트마이어 장관은 “큐어백 기술은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시장에서 통용되는 파괴적인 새로운 백신과 치료 방식을 개발할 수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독일 정부의 투자는 이런 개발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 기술의 모든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백신이 임상시험을 통과할 경우 독일이 우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회사에 재정적 안정을 주고 싶다”고 언급했다.
디에트마 호프(Dietmar Hopp)가 출자한 지주회사(dievini Hopp BioTech holding)가 2005년 이후 큐어백에 압도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호프는 투자자들에게 “그동안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과 독일 바이오테크 발전을 위해 매우 열심히 지원해왔다”며 “큐어백은 독일의 기업가정신을 가진 두드러진 생명공학 혁신 초기 사례 중 하나로 COVID-19백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전염병 백신과 다른 적응증의 새로운 치료 방식에 대한 잠재력이 큰 mRNA 기술을 가진 세계적인 리더”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위기는 환자를 위한 바이오테크산업, 우리 사회, 세계 동포들에게 밀접한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바이오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기 연구단계를 넘어 정부 지원을 받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영국, 유럽백신동맹(4개국) 등서 총 8억도스 선주문받아
앞서 이탈리아·독일·프랑스·네덜란드는 지난 3일 유럽적 토양에 맞게 유럽의 자본과 제약산업 기술로 백신자립을 꾀하는 ‘포괄적 백신동맹’(Inclusive Vaccine Alliance)을 맺었다. 구체적 행동으로 지난 15일 아스트라제네카(AZ)와 4억 명분(도스)의 백신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7억5000만유로(8억4300만달러)에 3억도스를 받고 1억도스를 추가로 공급받는 옵션이 걸렸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으로 백신을 개발 중이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에서 승인을 받아 임상 3상을 앞두고 있다. 이르면 올 가을에 개발이 완료돼 올 연말에 1차 공급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지난달 17일 AZ는 영국 정부에 1억도스를, 21일에는 미국 정부에 3억도스를 공급키로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 유럽 4개국에 4억도스를 만들어주기로 함에 따라 총 8억도스를 선주문 받은 셈이 됐다.
AZ의 파트너인 제너연구소가 만든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관련 DNA 염기서열을 복제능력이 없는 아데노바이러스(운반체·벡터)에 심어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토록 유도함으로써 코로나 외형을 띠게 해 항체 생성을 유도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복제 불능 벡터를 이용한 유전자 재조합 백신의 하나다. 그 핵심물질인 ChAdOx1 nCoV-19는 이 연구소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백신용으로 만든 ChAdOx1 MERS와 비슷하다.
유럽연합(EU)도 백신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EU 집행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27개 회원국 정부로부터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사전 구매 협상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EU는 24억유로(약 3조2600억원)의 자금을 백신 확보를 위해 융통할 수 있게 됐다. 4억5000만명의 회원국 시민을 위한 백신을 확보할 돈줄을 미리 챙겨둔 셈이다. EU 집행위는 현재 여러 제약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인 기업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중국도 4개 업체나 각축 … 시노백, 조만간 브라질 등서 3상 임상
전세계적으로 미국 모더나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3상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선 최대 국영 제약기업 시노팜(Sinopharm) 산하 우한생물제품연구소·베이징생물제품연구소, 베이징 시노백바이오텍(Sinovac Biotech·科興中維 군사의학연구원과 공동), 톈진 칸시노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康希諾生物·베이징생명공학연구원과 제휴), 베이징 중국의학과학원 및 베이징협화의학원(Chinese Academy of Medical Sciences & Peking Union Medical College) 부설 중국의약생물기술연구소(The Institute of Medicinal Biotechnology, IMB) 등 4곳이 격돌 중이다. 시노백과 칸시노바이오로직스는 1/2상 후반에 접어들었고 시노팜이 이보다 다소 늦으며 IMB의 진척이 가장 느리다.
시노백이 중국에서는 가장 유망한 것으로 평가되고 현재 3상 진입을 논의 중이다. 이 회사는 14일 건강한 지원자 600명을 대상으로 한 1/2상 임상 중 2상 결과 환자의 90%이상에서 투여 2주 만에 중화항체가 생성됐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3상 임상계획을 조만간 제출할 예정이며 브라질에서 3상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11일 브라질 바이오의약품 제약사인 인스티튜토부탄탄(Instituto Butantan)과 계약을 체결했다.
칸시노바이오는 모더나와 거의 같은 시점에 임상을 시작해 지난달 22일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란셋(Lancet)’에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인 Ad5-nCoV를 100지난 18~60세 건강한 사람 108명을 대상으로 각각 36명씩 저용량, 중간용량, 고용량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접종한 결과 28일 뒤 절반에서 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특히 고용량 투여군은 4분의 3에서 항체가 형성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중화하는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투여 후 28일째에 항체값이 피크를 보였고, 특정 T세포의 항체반응은 투여 후 14일째에 정점에 달했다. 저용량과 중간용량 투여자는 절반 정도에서 중화항체가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중등도 정도의 효과를 냈다.
근육주사 후 7일째에 환자의 83%(고용량 및 저용량)과 75%(중간용량)에서 부작용이 나타났으나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주사 부위 통증으로 54%를 차지했고 고열 피로 두통 근육통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요컨대 효과는 중등도로 기대에는 미흡하며, 부작용 없는 안전성이 장점인 것으로 평가됐다.
중국에서 진행 중인 4가지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 가운데 칸시노만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감염력을 없앤 아데노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끼워 넣은 유전자재조합 백신이고, 나머지 세 업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비활성화시켜 인체에 주입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중국은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초창기만 해도 임상 지원자가 많았으나 4월 들어 안정화 단계에 들면서 환자 모집이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2018년 창춘 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사의 불량 DPT 백신 접종 등 중국 백신의 안전성을 의심케하는 과거 대형 안전사고가 중국인의 의식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AZ로부부터 백신 수급 모색 … 국산화도 병행, 진척도·개발비 투하 부진
한국 정부는 국내 백신 개발 업체를 지원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개발되는 백신을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백신 수입을 검토하기 위해 아스트라제네카와 협력 체계를 만들고 있다”며 “먼저 개발된 백신을 우선 도입해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사들이 먼저 코로나19백신을 개발한다해도 국제적인 물량 경쟁이 치열해 충분히 양이 국내에 공급되기 어렵고, 가격도 매우 높게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산 백신 개발이 시급하다. SK바이오사이언스·GC녹십자·제넥신 등은 속도가 느리지만, 외국사의 개발 진척과 상관없이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이들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은 수억원에 불과해 수억 달러 또는 유로를 투자하는 구미 선진국에 비해 ‘세발의 피’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