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와 6000만달러 백신 공급계약 체결 … 英 옥스퍼드대 양산 준비 박차 … 유럽 4개국 ‘포괄적 백신동맹’
뉴욕타임스가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5대 백신 개발 업체를 내정했다는 보도가 오보가 될 판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Gaithersburg) 소재 차세대 백신 개발 전문 생명공학기업 노바백스(Novavax)는 지난 4일 미국 국방부(DoD)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6000만달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연방정부(백악관과 보건복지부 중심)에서 추진 중인 코로나19 백신 ‘초고속 실행계획’(Operation Warp Speed) 참여기업 목록에서 제외된 지 하루 만이다. 이 계획은 미국 행정부가 내년 1윌 까지 자국민 3억명에게 투약 가능한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기 위한 사업으로 정부, 민간기업, 군이 모두 참여한다.
노바백스는 이 자금으로 미국 내 NVX-CoV2373 백신 생산에 투자하며 2020년 말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2·3상 또는 긴급사용 승인(EUA)을 받을 경우 미 국방부에 백신 1000만 도스를 공급한다. 이 회사는 또 미국 내 생물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과도 협력해 NVX-CoV2373 백신의 항원 생산 및 면역증강제인 매트릭스-M(Matrix-M) 생산을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NVX-CoV2373는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모방한 유전자 재조합 나노입자 항원에 ‘매트릭스-M’ 항원보강제(Matrix-M adjuvant)를 결합한 것이다. 항원 인식을 높이고 체내 면역반응을 배가시키는 원리다.
노바백스는 지난 5월 11일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으로부터 가장 많은 3억8800만달러를 NVX-CoV2373 개발 용도로 투자받았다. 5월 말부터 호주에서 시작된 임상1·2상에서 건강한 18~59세 성인 130여명을 대상으로 안전성 및 면역원성을 검증 중이다. 지난주에는 AGC바이오로직스와 백신의 주요 첨가물인 면역증강제 Matrix-M의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NVX-CoV2373의 첫 임상시험 결과는 오는 7월 중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바백스는 세계보건기구가 업데이트한 12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세계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시행 10개 제약사 중 한 곳인데도 불구, 최근 미국 정부에서 추진 중인 백신개발 사업인 ‘초고속 실행계획’ 참여기업 선정에서 제외됐다. 이 사업엔 모더나(Moderna), 영국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와 공동 개발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 연합, 존슨앤드존슨, 미국 머크(MSD) 등 이렇게 5개 그룹이 대상자로 뽑혔다.
이와 관련 스콧 고틀립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CNBC에 출연 “선정 기업들은 모두 메신저RNA(mRNA) 또는 바이러스 벡터 등 혁신 기술을 적용한 백신으로 구성됐다”며 “오직 MSD만이 기존에 승인된 경험이 있는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즉 모더나와 화이자는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도록 코딩이 된 mRNA 백신이며,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드존슨은 코로나19 유전자를 복제 불가능한 아데노바이러스 벡터에 삽입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MSD는 복제 가능하되 약독화된 홍역 바이러스를 벡터로 삼아 코로나19 유전자를 심는 과거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이다. 이에 비해 탈락한 노바백스와 사노피·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연합은 과거 방식이며, 사노피는 연구개발 진척 속도가 늦다고 고틀립은 꼬집었다. 갈수록 임상시험을 진행할 환자 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에 속도에서 뒤진 제약사는 상용화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유럽은 미국과 중국 간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 경쟁에서 밀리는 데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달 21일 미국 보건부(HHS) 산하 질병예방대응본부(ASPR) 직속 생물의학첨단연구개발국(BARDA)으로부터 백신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12억달러를 지원받는다고 공표했다. 미국 정부는 AZ의 백신이 개발 속도가 빠르고 유효성이 높을 것을 판단하고 초도물량 3억도스를 확보하기 위해 베팅을 했다.
옥스퍼드대 소속 기업 옥스퍼드바이오메디카(Oxford Biomedica)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주도하는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대량 생산을 위해 영국의 백신제조혁신센터(Vaccines Manufacturing and Innovation Centre, VMIC)와 5년 계약을 맺었다. 글로벌 수준의 물량 공급을 위해 옥스퍼드바이오메디카가 보유한 옥스박스 설비(Oxbox facility)를 늘려 아데노바이러스 기반 유전자재조합백신(AZD1222)의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VMIC는 옥스퍼드바이오메디카에 두 구역 8만4000평방피트 면적의 공간과 관련 제조설비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한 다른 유전자재조합백신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전망이다.
유럽 제약사 중 가장 앞서가는 AZ가 영국과 미국 우선 공급에 원칙을 두자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 4개국은 지난 3일 유럽연합 회의를 거쳐 유럽적 토양에 맞는 유럽의 자본과 제약산업 기술로 백신자립을 꾀하는 ‘포괄적 백신동맹’(Inclusive Vaccine Alliance)을 맺기로 했다고 네덜란드 보건부가 밝혔다. 그러나 이는 미국 정부처럼 선제적 투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추동력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반해 가장 먼저 지난 3월 중순 임상을 시작한 미국 모더나테라퓨틱스(Moderna Therapeutics)와 중국 칸시노바이로직스(CanSino Biologics·康希諾生物)는 벌써 항체가 형성되는 수준까지 임상이 진행됐다.
지난달 18일 미국 제약사 모더나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mRNA-1273’이 18~55세 성인 남녀 45명을 대상으로 한 1상 임상에서 대상자 45명 모두 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특히 평가 가능한 8명에서는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도 형성됐다고 강조하며 선두주자임을 과시했다.
나흘 뒤 칸시노바이오로직스는 22일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지난 3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인 Ad5-nCoV를 100지난 18~60세 건강한 사람 108명을 대상으로 각각 저용량, 중간용량, 고용량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접종한 결과 28일 뒤 절반에서 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특히 고용량 투여군은 4분의 3에서 항체가 형성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중화하는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투여 후 28일째에 항체값이 피크를 보였고, 특정 T세포의 항체반응은 투여 후 14일째에 정점에 달했다. 중등도 정도의 효과를 냈고 저용량과 중간용량 투여자는 절반 정도에서 중화항체가 나타났다.
근육주사 후 7일째에 환자의 83%(고용량 및 저용량)과 75%(중간용량)에서 부작용이 나타났으나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주사 부위 통증으로 54%를 차지했고 고열 피로 두통 근육통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중화황체는 바이러스에 결합해 무력화하는 항체로, 감염 전파를 막는 방패와 같다. 단순히 항체가 형성됐다는 것은 바이러스 감염병을 앓았다가 나았다는 의미이고, 중화항체가 있어야 재감염을 막을 수 있다. 확고한 면역력이 형성됐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진행 중인 4가지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 가운데 칸시노만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감염력을 없앤 아데노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끼워 넣은 유전자재조합 백신이고, 나머지 세 업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비활성화시켜 인체에 주입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미국 모더나가 개발 중인 mRNA-1273는 대표적인 RNA 백신이다. 경쟁자로 1상 막바지에 접어든 미국 이노비오(Inovio)의 ‘INO-4800’는 DNA 백신이다. 모더나는 3상 임상에 박차를 가운데 암젠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고 은퇴한 데이비드 멜라인(David Meline)을 영입했다.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Stephane Bancel) CEO는 회사가 절체절명의 전환기에 있다며 최근 2700만달러어치의 모더나 주식을 시장에 매각하고 오는 8월까지 근무하기로 한 로렌스 킴(Lorence Kim)을 대신할 인물로 멜라인을 초빙했다. 코로나19 백신과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 예방백신의 3상 임상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다. 한국계 아시아인으로 추정되는 로렌스 킴은 하버드대 생화학 학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스클 MBA, 같은 대학교 의학박사를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인 조셉 김이 창립한 이노비오의 INO-4800은 지난 3일 국내 임상 2상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 국내 최초의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으로 신청한 지 12일 만에 승인이 났다. 국내외 백신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이르면 연말께 백신 상용화가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나스닥에서 2조1000억원을 웃도는 시가총액을 형성하고 있는 이노비오는 오는 8월 코스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12월에 상장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노비오의 국내 협력사인 진원생명과학은 “이노비오가 자사의 미국 자회사인 VGXI에 지적 재산을 취하려는 소송을 제기했다”며 “VGXI는 이노비오가 계획한 대규모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을 하는 데 충분한 백신을 이미 제조했으며, 이노비오는 공급 계약 의무를 위반했고, (이에 따라) VGXI는 5월 7일자로 이노비오에 계약 종료를 통지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한편 피터 막스(Peter Marks) FDA 바이오의약평가연구센터(Center for Biologics Evaluation and Research, CBER) 국장은 워싱턴의 ‘초고속실행계획’팀에 차출됐다가 며칠 만에 다시 FDA로 돌아갔다. 연말까지 코로나19 백신을 내놔야 한다는 백악관의 압력, 특히 올 가을에 백신이 나와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전 열세를 뒤짚을 수 있다는 ‘10월의 기적’(October surprise)을 바라는 눈치를 보기가 싫어 FDA 복귀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는 “백악관의 코로나19 총괄조정관인 데보라 벅스(Deborah Birx)가 막스에게 정부가 어떤 백신을 우선시해 투자해야 하는지 물어봤고, 막스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뾰쪽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연구자, 정부, 제약업체와 협업하면서 규제에 관한 조언에 익숙한 막스로서는 백악관의 분위기가 질식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