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시총 1000억달러서 몬산토 인수 금액보다 낮은 600억달러로 급감 … 제약·농업 사업분리 필요성 제기
건실한 제약·화학기업으로 신뢰받던 바이엘이 2018년 6월 미국 몬산토(Monsanto)를 인수를 계기로 농업·제약·고분자재료 기업으로 탈바꿈했으나 몬산토 인수 후 2개월 만에 나온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 관련 소송 첫 판결을 받아 일순간 파티가 됐어야 할 인수합병이 불운의 소용돌이에 빨려드는 단초가 됐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엘은 최근 발암물질인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성분 제초제를 사용한 뒤 암에 걸렸다며 피해자 12만5000명이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구두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엘은 관련 절차를 빨리 끝내기 위해 10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출할 예정이다. 진행 중인 소송에 80억달러(약 9조6000억원), 예비비에 20억달러(2조4000억원)를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엘 측은 “라운드업 제초제 피해자와 가진 논의에서 진전이 있었다”며 “금전적으로 합리적이고, 미래의 잠재적 소송까지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다면 합의를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바이엘이 언급한 미래의 잠재적 소송은 추가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난 4월 기준 라운드업 제초제 발암물질 관련 소송은 5만2500여건에 달했고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구두합의로 약 5만~8만건이 해소될 전망이다.
바이엘은 2018년 몬산토를 무리하게 인수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글로벌 화학·제약·농업기업의 기업인수합병(M&A) 열풍 속에 이 분야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합병을 강행했다. 인수 금액은 630억달러(약 76조원)에 육박해 1998년 다임러벤츠의 크라이슬러 인수금액인 386억달러(약 45조원) 이후 20년 만에 독일 최대 M&A 기록을 경신했다. 바이엘은 2016년부터 몬산토에 구애를 했다. 처음 620억달러를 인수금액으로 제안했지만 몬산토가 기업가치에 비해 저렴하다며 거절했다. 추가 협상을 거쳐 2년 뒤 10억달러를 추가한 630억원에 합병됐다.
2015년 말 미국 화학업계 1, 2위인 다우케미칼(The Dow Chemical Company)과 듀폰(Dupont)이 1400억달러(약 162조원) 규모로 합작하면서 1등이 됐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다시 분할돼 현재 다우, 듀폰, 코르테바로 삼분됐다. 2016년 2월 중국 최대 화학업체 켐차이나(중국화공)가 당시 중국 최대 M&A인 440억달러 규모로 스위스 신젠타를 인수하면서 2위 규모가 됐다. 이에 종합 3, 4위이던 종자시장 1등 바이엘과 살충제시장 1등 몬산토의 합병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바이엘 주주들은 합병 시너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인수 비용 때문에 규모를 키우는 효과만 있을 뿐 기업 재무상태는 더 나빠질 것이라 판단했다. 더욱이 2016년부터 진행된 라운드업 제초제 관련 소송이 대규모 소송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음도 울렸지만 합병은 강행됐고 이를 전후해 대규모 주식 매도가 이어졌다.
주주들의 예상대로 바이엘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합병한 뒤 2개월 만에 피해자에 대한 첫 배상판결이 나오면서 줄소송이 이어졌다.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짊어질 위험이 커지면서 회사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8년 100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하던 바이엘 시가총액은 28일 기준 몬산토 인수금액 630억달러보다 적은 612억달러(약 73조원)로 40% 가까이 급락했다.
처음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전직 학교 정원 관리인 드웨인 존슨(48)으로 2012년부터 하루에 2~3시간씩 해마다 30여차례에 걸쳐 글리포세이트 성분이 들어 있는 189ℓ들이 탱크의 몬산토 제초제를 뿌렸다. 그는 라운드업의 고농축 제품인 ‘레인저 프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7월 글리포세이트의 발암 위험성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글리포세이트는 2016년 정식 발암물질 목록에 등재됐다.
이에 2014년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 판정을 받은 존슨은 몬산토 제초제를 사용하다 암에 걸렸다며 몬산토를 상대로 2016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존슨의 변호인단은 ‘라운드업’과 ‘레인저 프로’에 포함된 글리포세이트 성분의 발암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경고하지 않아 존슨이 암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몬산토가 존슨에게 2억8900만달러(약 3468억원)를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지만 고등법원에서 몬산토의 배상액을 7850만달러(약 886억원)로 대폭 깎았다. 수전 볼라노스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 판사는 “의식적으로 위험성을 무시한 몬산토의 행동에 악의가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글리포세이트 자체도 위험하지만 이를 다른 성분과 합성하면 독성이 강해진다는 몬산토 내부보고서까지 나오면서 몬산토는 배심원단으로부터 3925만달러(약 468억원)의 손해배상과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의 징벌적 배상 평결을 받았다. 이를 참고해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손해배상금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징벌적 배상금은 대폭 깎아 각각 3925만달러씩 총 7850만달러를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결론적으로 최종 배상액은 고법 판결과 같았다.
이 판결을 시작으로 줄소송이 이어지자 바이엘은 항소에 나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비롯한 전세계 규제당국,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라운드업과 이 제초제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안전하다고 인정했다고 바이엘은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배상판결이 적게는 7850만달러부터 많게는 20억달러가 넘는데다 소송 청구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향방이 불투명한 상태다. 주요 투자자들은 승소하지 않는 것 외에는 회사가 신뢰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바이엘 제약사업부도 특허권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이엘이 최근 도입한 파이프라인은 2018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 받은 록소온콜로지(Loxo Oncology)의 유전자 표적 항암치료를 위한 경구용 선택적 트로포미오신 수용체 키나제(Tropomyosin receptor kinase, TRK) 저해제인 ‘비트락비캡슐’(Vitrakvi, 성분명 라로트렉티닙, larotrectinib)로 1년 6개월째 신약이 나오지 않는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 약은 국내에서 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7월 31일 허가된 비전이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뉴베카정300mg’(Nubeqa, 성분명 다로루타마이드, darolutamide)도 2010년 물질특허를 등록한 뒤 2012년에 임상을 시작해 늦깎이로 신약이 됐다. 핀란드 오리온파마슈티컬스와 공동 개발한 약이다.
이에 장기적으로 농업과 제약 사업부를 분리해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위말 카파디아(Wimal Kapadia) 번스타인리서치(Bernstein Research) 애널리스트는 “바이엘이 정상 궤도로 회복하기 위해선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개선과 소송의 원만한 해결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과거 동물사업부를 분리할 때도 많은 투자자들이 농업과 제약 사업부가 분리되길 기대했다”고 말했다.
몬산토는 전세계 유전자변형작물(GMO)의 90%에 대한 특허권을 소유한 농업기업으로 1901년 제약업계에서 30년간 근무한 존 프란시스 퀴니(John F. Queeny)가 부인의 처녀 시절 이름을 따 설립됐다. 최초의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을 생산해 코카콜라에 납품하는 화학업체로 시작해 카페인, 바닐린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17년엔 아스피린도 제조했다. 1940년대까지 합성섬유, 폴리스티렌(polystyrene) 등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10대 화학기업으로 성장했다. 1954년 독일 바이엘과 처음 협력해 미국에서 폴리우레탄을 판매했다.
미국 작가 레이첼 카슨이 1962년 발표한 ‘침묵의 봄’에서 심각한 폐해를 고발한 살충제 DDT와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로 쓰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미군에 공급했지만 이듬해 이 무기 사용이 금지되자 환경친화적 제초제라며 출시한 ‘라운드업’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 잡초를 제거하지 못해 토양오염만 유발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고농축 버전인 ‘레인저 프로(RangerPro)’를 출시해 매년 전세계에서 8억t씩 판매됐다.
1982년 세계 최초로 식물의 유전자 조작에 성공한 몬산토는 옥수수, 콩, 면화 등 3대 품목에 집중해 GMO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미국과 브라질 등 중남미시장을 공략했다. 2004년엔 몬산토의 GMO 종자로 농산물을 생산해 허가 없이 판매한 캐나다·미국 농민을 대상으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채소·과일 씨앗 생산기업인 세미니스(Seminis), 목화 씨앗 생산기업 델타앤파인랜드(Delta & Pine Land), 네덜란드 종자 전문기업인 디루이터시드(De Ruiter Seeds)를 잇따라 인수하며 종자사업을 강화했다. 글로벌 농업기업의 기업인수합병(M&A) 바람을 타고 2018년 6월 주식 전량을 바이엘에 매각하면서 세계 2위 농업기업으로 올라섰다.
미국 세미니스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당시 이 분야 1위였던 흥농종묘와 3위인 중앙종묘를 동시에 인수 합병하면서 세미니스코리아가 설립됐다. 몬산토가 세미니스를 인수하면서 몬산토코리아가 한국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2012년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이 몬산토의 채소 종자 사업부를 인수했다가, 2016년 LG화학에 매각해 지금의 팜한농이 됐다. 기존 몬산토코리아는 동부팜한농에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토마토, 고추, 파프리카, 시금치 등 4가지 주력 상품은 남겨둔 채 명맥을 유지하다가 바이엘 본사가 몬산토를 인수하면서 국내에선 바이엘크롭사이언스로 편입됐다. 국내 농가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첨단 육종기술로 생산한 종자를 배포해 GMO 종자를 확산시키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