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봐도 어여쁘고, 저리 봐도 예쁜 미인을 형용할 때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걸으면 백합’이란 어구를 종종 쓴다. 작약은 한 가지로 똑바로 자라기 때문에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비유이고, 모란은 가지가 나뉘어져 낮게 옆으로 퍼지므로 화려하고 후덕한 미인으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백합은 전체적인 자태가 우아하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모란은 ‘꽃의 왕’으로 대우받는다. 중국의 나라꽃(國花)으로 ‘부귀화(富貴草)’ ‘화왕(花王)’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작약과 꼭 닮은 목본꽃이라는 ‘목작약(木芍藥)’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명 목단(牧丹)의 한글 발음인 모란은 모란과(Paeoniaceae)에 속한다. 학명으로 Paeonia moutan과 Paeonia suffruticosa 등 2가지가 대부분이다. 근피를 약용하는 것은 주로 후자다. 작약(芍藥)은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에 속하며 학명은 Paeonia albiflora(백작약), Paeonia lactiflora(적작약) 등이다. 백작약은 중국 작약이라고 하며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하지만 약용이 주목적이다. 적작약도 중국에서 기원하지만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게 일반적이다.
둘 다 약어이자 애칭으로 패오니라 부르지만 식물학적 근원은 다르다. 패오니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패온(Paeon)에서 유래한 것이다.선조들의 모란과 작약에 대한 애정은 비단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모란과 작약은 몸을 보호하는 약재로서는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흰 꽃은 보혈작용, 붉은 꽃은 해열작용 … 색깔 따라 효과 다른 작약
작약은 예전에 함박꽃이라고도 불렸다. 커다랗고 화려한 꽃송이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듯하다. 키는 약 60cm가량으로 한국 전역에서 자란다. 한포기에서 곧은 여러 줄기가 나오고 잎과 줄기에는 털이 없다. 5~6월에 거쳐 줄기 끝에 지름 10cm가량의 붉은색 혹은 흰색의 꽃이 핀다.
작약꽃은 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으로 사랑받았지만, 특히 중국인들의 작약 사랑은 각별해서 고대 진나라 때부터 관상용으로 재배됐고 송나라와 청나라 때는 이미 품종만 수십 종류를 넘어섰다.
한방에서도 작약은 뛰어난 약효를 가진 귀한 약재로 사랑받고 있다. 백작약의 뿌리는 당귀‧천궁‧숙지황과 함께 혈액을 보강하는 사물탕(四物湯)의 재료가 된다. 이밖에 몸을 보호하는 보약 개념으로 작약뿌리는 자주 사용된다.
재미있는 점은 꽃의 색깔에 따라 작약 뿌리의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흰 작약의 뿌리는 보혈(補血)약으로 사용하고, 붉은 작약 뿌리는 열을 내리거나 화(火)기를 식힐 때 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재의 겉껍질을 벗겨내지 않은 것을 붉은 작약 뿌리로, 겉껍질을 벗긴 것을 백작약 뿌리로 대체하기도 한다.
작약, 통증 완화 및 진경 작용 …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
뿌리뿐만 아니라 작약은 꽃과 잎에도 약성이 풍부하다. 작약뿌리에는 패오니플로린(paeoniflorin), 패오놀(paeonol), 안식향산, 정유, 지방유, 수지, 탄닌(tannin), 베타시토스테롤(beta-sitosterol), 트리테르페노이드(triterpenoid) 등이 들어있다. 꽃에는 아스트라갈린(astragalin), 베타시토스테롤(beta-sitosterol), 헥사코산(hexacosane)이 함유돼 있다. 잎에는 탄닌(tannin) 성분이 많다.
작약은 혈액을 보강하고 통증을 완화시키면서 땀을 줄여주는 효능이 있다. 생리불순, 자궁출혈, 다한증, 근육경련 등에 사용된다. 진경효과가 뛰어나 다리에 쥐가 날 때, 설사 후 복통이 날 때도 쓰인다.
작약추출물에서도 진정작용과 진통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위액의 산도를 높여 소화 기능을 돕는 효능이 있으며 신경성질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황색포도상구균에 대한 억제 작용도 보고된 바 있다.
작약은 1회에 4~10g가량을 달여서 마시거나 가루내어 먹는다. 독성이 약해 부작용이 없는 대신 단기간에 효능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작약을 약으로 먹을 때는 꾸준하게 복용해야 한다. 또 혈액순환을 돕는 적작약 뿌리는 설사‧터진종기‧산후오로 등이 있을 때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꽃들의 왕 모란 … 뿌리에 패오놀‧페오노시드‧페노리드 등 약성 풍부
목단이라고도 불리는 모란은 예부터 꽃들의 왕으로 사랑받아왔다. 작약과 꽃 모양과 피는 시기가 비슷해 헷갈리기도 하는데 모란은 목본, 작약은 초본 식물이다. 모란은 다 자라면 키 높이가 2m에 이르는 낙엽관목이다.
모란은 가지가 굵고 잎 앞면에는 털이 없지만, 뒷면에는 흰빛이 도는 잔털이 있다. 모란은 5월말~6월 초에 붉은색‧흰색 꽃이 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다. 종자는 둥글고 검다. 삼국유사에서 당나라 황제 태종 이세민이 모란이 그려진 병풍을 신라 선덕여왕에게 선물했다. 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은 아름답지만 그림에 나비가 없는 걸 보니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태종이 배우자가 없는 선덕여왕을 조롱한 것인 줄 알고 발끈한 것이다. 그러나 모란꽃에는 향기도 있고, 벌과 나비도 찾아든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캐 한약재로 사용한다. 모란 뿌리인 목단피에는 패오놀(paeonol), 페오노시드 (paeonoside), 페노리드(paeonolid), 패오니플로린(paeoniflorin), 피토스테롤(phytosterol)이 함유돼 있으며 이밖에 약간의 정유 성분도 포함돼 있다.
목단피, 해열과 혈액순환 개선 … 알레르기비염 임상시험에서 효과 확인
모란의 뿌리껍질인 목단피는 주로 열을 내리거나 혈액순환을 조절해서 어혈을 없애는 데 사용한다. 코피, 대변출혈, 아랫배 뭉침, 월경 불순, 자궁근종, 타박상 등에 이용하고 피부발진, 종기, 근육경련 등에도 효과가 있다.
민간요법 중에서는 알레르기비염에 목단피 달인 물을 매일 저녁 50ml 씩 10일간 마시는 방법도 있다. 동일한 방법으로 알레르기비염 환자 31명에게 임상시험한 결과 12명이 완치, 9명이 호전 판정을 받았다.
목단피의 여러 약리성은 동물실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생쥐 복강에 목단피 주요 성분인 패오놀을 주사하자 진정‧진통‧체온강하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또 목단피 달인 물을 마취한 개‧고양이‧흰쥐에서 투여했을 때 모두 혈압이 낮아졌고, 고혈압을 앓는 개와 쥐에게 목단피 달인 물을 투약했을 때도 혈압 강하 효과가 확인됐다. 이밖에 부종 억제와 항균 작용 등이 동물실험에서 보고됐다.
목단피는 1회 4~6g가량을 달여서 마시거나 가루내어 먹는다. 향이 없다는 꽃과 달리 뿌리에는 진하고 독특한 향이 있다. 향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또 차가운 성질로 몸이 찬 소음인, 임신 중 혹은 생리량이 많은 여성에겐 투약하지 않는 게 좋다. 사상의학에서 목단피는 소양인의 약물로 분류된다.
작약과 모란이 약재로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모두 독성이 매우 낮아서다. 급성 독성실험에서 작약의 주요성분인 패오니플로린을 생쥐의 정맥에 주사했을 때 반수치사량(LD50)은 3530mg/kg이었다. 목단피의 주성분인 패오놀의 정맥주사 시 반수치사량은 90mg/kg이고, 위관류 시에는 3430mg/kg으로 전반적으로 독성이 아주 낮게 나타났다. 또 실험동물인 고혈압 개에게 패오놀을 투약했을 때도 간기능‧혈장‧혈액 내 비단백질성질소 수치‧심전도 등에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비교적 안전한 생약이라는 뜻이다.
조상들이 이들 꽃을 보고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아름답다고 칭송한 데에는 독성이 없는 착한 성품도 한 몫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