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 호전 시기 31% 앞당겨 … 한국도 “특례 수입 검토” … FDA, 중증환자에 사용 승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첫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1일(현지시각)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remdesivir)를 승인했다. 지금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승인했다는 게 FDA의 설명이지만 중증환자 치료로 제한적인 적응증을 받은 데다 부작용도 상당하고, 본래 조기에 투여할수록 효과가 좋고 증상이 진행된 후에 투여하면 효과가 없다는 게 길리어드의 주장이었던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렘데시비르의 효능이 확고하지 않은 이상 후속 신약의 개발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美 대선 앞두고 허가 서두른 정황 짙어 … 간 염증·주사 부위 염증 등 부작용 논란도
FDA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렘데시비르가 호흡장애로 인공호흡기 등이 필요한 코로나19 중증 입원 환자를 위해 긴급사용승인(EUA)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다니엘 오데이(Daniel O‘Day) 최고경영자(CEO), 스테판 한(Stephen Hahn) FDA 국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이같은 소식을 공표했다. 긴급사용승인은 정식 사용 승인과 다르지만 대체 약물이 없는 경우 의사가 처방할 수 있어 사실상 정식 승인과 버금간다.
오데이 CEO는 이번 FDA 조치에 대해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환자들을 돕기 위해 150만 주사분의 렘데시비르를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소 14만명에게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4일부터 약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승인은 지난달 29일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의 안토니 포시(Anthony Fauci) 소장이 전세계 68곳에서 이뤄진 임상시험 결과를 취합했더니 코로나19로 입원한 중증 환자 1063명의 회복 기간을 31%(4일 정도, 11일 vs 15일) 감축시켰다고 뉴욕타임스에 흘리면서 예견됐다. 또 중증 환자의 사망률도 렘데시비르는 8%인 반면 위약을 투여한 환자는 11%에 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 조기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만큼 가급적 빨리 렘데시비르의 긴급사용을 승인하라고 재촉했다.
FDA는 렘데시비르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효능은 상당 부분 보장된다고 밝혔다. 이 약은 간의 염증, 주사 부위 염증과 같은 부작용이 있고 메스꺼움, 구토, 식은땀, 저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임상 결과 드러났다.
4가지 에볼라 신약후보 중 효과 꼴찌 … 조기 투여해야 효과 좋다더니 실제 ‘중증’ 환자용으로 허가
렘데시비르는 2013~2016년 서아프리카에 에볼라가 창궐할 당시 에볼라바이러스(Ebola Virus Disease, EVD) 치료를 위해 투약됐지만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연구가 중단됐다. 그러다 최근 코로나19에 효과가 있을 것이란 가설 아래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2018년 11월 20일부터 2019년 8월 9일까지 진행된 PALM(The Pamoja Tulinde Maisha; 스와힐리어로 ‘함께 생명을 살린다’는 뜻) 임상시험에서 4가지 신약후보물질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한 게 렘데시비르다. 이에 당시 최고의 효능을 발휘한 리제네론의 REGN-EB3가 오는 6월 코로나19치료제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23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실수로 누출한 중국 1상 임상 결과도 보잘 것 없었다. 연구진은 237명의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158명에게 렘데시비르를, 나머지 79명에게 가짜약(위약)을 투여했다. 렘데시비르를 사용한 환자는 투약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나아지거나 혈류 내 바이러스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치사율은 13.9%로 가짜약을 받은 집단(12.8%)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다. 부작용 발생률은 두 그룹이 65%로 같았으나 부작용으로 조기에 치료를 중단한 비율은 12% 대 5.1%로 렘데시비르 투여군이 높았다. 당시 길리어드는 조기에 투여하면 효과가 좋다며 중국 임상은 조기 중단된 임상인데다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속단하기에 이르다는 해명을 냈다.
길리어드는 연말까지 100만명분의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도록 증산 계획을 세워놨다. 로이터통신은 적정 약가 결정을 위해 약물의 유효성을 측정하는 임상경제평가연구소(ICER)를 인용, 10일분 렘데시비르 생산 가격을 10달러(약 1만2000원)로 판단했다. 하지만 임상시험에서 파악된 환자들의 수요로 볼 때 실제 가격은 4500달러(약 548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은 약가 책정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하고 제약사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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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친화적인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각료회의를 열어 렘데시비르 특례승인이 가능하도록 의약품의료기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특례승인 절차를 거치면 1년 이상 걸리는 승인기간이 대폭 줄어든다.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은 “렘데시비르 개발사인 미국 길리어드의 신청이 들어오면 1주일 만에 승인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 일본에서도 렘데시비르를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FDA의 긴급사용 승인을 참고해 이례적으로 승인절차를 간소화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도 렘데시비르 특례수입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 환자 치료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렘데시비르의 특례수입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례수입절차를 거치면 국내 품목허가나 신고 없이도 제조·수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3건의 렘데시비르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길리어드가 신청한 임상 3상 2건과 서울대병원에서 신청한 연구자 임상 1건이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포함)이 경증 및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은 미국 국립보건원(NIH) 협력기관 자격으로 이뤄졌으며 이번 FDA 긴급사용승인 결과에 일부 반영됐다. 지난 3월 중순에 착수한 서울대병원의 최종 임상 결과는 당초 5월 중순 나올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급작스런 긴급사용승인으로 휩쓸려버렸다.
길리어드가 의뢰한 두 건의 임상은 중증환자 75명과 중등도 환자 120명을 대상으로 서울의료원·국립중앙의료원·경북대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데, 중증환자에 대한 임상시혐 결과는 오는 6월 중순 공개될 예정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렘데시비르에 대해선 구체적인 임상연구, 임상시험 결과가 반영돼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부작용에 대해서는 충분한 환자에 대한 투약 결과를 보고 판단하되 효과가 어느 정도 인정된 경우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