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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만 최고? … 긴 역사 속에 다져진 내공, 스페인 와인
  • 김지예 ·소믈리에 기자
  • 등록 2020-05-03 04:10:28
  • 수정 2020-05-07 18: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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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 소유 … 내전과 독재 등으로 오랜 침체기 후 국제 무대서 두각
 스페인 와인은 흔히 브랜디를 넣은 주정강화 와인 셰리와인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뛰어난 품질의 레드와인와 화이트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양조용 포도밭은 가진 국가다. 스페인의 포도 재배 면적이 115만ha에 이르지만, 와인 생산량은 34억ℓ로 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다.
 
스페인 와인은 오랫동안 전통 와인국과 아메리카 및 대양주 신세계 국가 와인들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유럽 와인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와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2010년 이후 수입량 가파르게 상승해 2017년부터는 프랑스와인을 제끼고 수입 와인량 1위를 차지했다.
 
이슬람 지배‧전쟁‧전염병‧내전‧독재 … 수많은 부침을 겪은 스페인 와인 사업
 
스페인의 포도재배는 기원전 1000년 전 페니키아인(지중해 동안)에서 시작한다. 이후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본격적인 와인 문화가 꽃을 피웠다. 로마 제국의 몰락 후 7세기부터 고트족과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스페인 와인 문화는 침체기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셰리와인(Sherry Wine)은 이 지역의 주요 수출품으로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기록에 따르면 1364년 영국 에드워드 3세의 궁전에서 이베리아반도(스페인) 산 셰리와인은 최고 가격을 자랑했다고 한다.
 
1492년 기독교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되찾으면서 스페인의 와인 문화는 다시 꽃을 피웠다. 그라나다를 정복해 통일 스페인을 완성한 군주 이사벨1세 여왕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와인 문화의 근간이 되는 교회와 수도원을 적극 지원했다. 또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등 모험가를 지원해 신대륙과 해로를 개척하면서 신대륙으로까지 와인 수출 시장을 늘렸다.
 
하지만 이후 영국 헨리 6세와 스페인 출신 왕비 카트린의 이혼으로 발발된 전쟁은 최대 와인 수입국인 영국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했다. 게다가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자 점차 스페인 와인 사업은 쇠퇴해갔다.

필록세라(와인 흑사병)에 걸린 포도나무는 뿌리부터 말라간다. 위키피아 제공.
침체됐던 스페인 와인 사업에 부흥의 기회가 돌아온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다. 1800년 대 후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는 포도 흑사병이라 불리는 필록세라(Phylloxera)가 퍼졌다. 포도나무 뿌리에 진드기가 기생하면서 나무가 말라죽는 질병이었다. 다행히 스페인은 필로세라의 피해가 적었던 탓에 와인 생산이 멈춘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신 유럽 각국에 와인을 수출할 수 있었다. 이 때 많은 보르도 양조가들이 스페인, 특히 리오하(Rioja)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스페인 와인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1878년 말라가(Malaga)를 시작으로 스페인 땅에도 필로세라가 상륙하면서 상당수 포도밭이 파괴됐다. 이후 19세기 말 스페인내란, 세계 1‧2차 대전, 군부독재 등을 거치며 스페인 와인은 국제 시장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1978년 민주화 이후 스페인은 갈리시아 지방과 라만차 지방의 와인사업 경제 원조를 시작으로 새로운 포도 재배법과 양조 기술‧시설 등을 도입하며 와인 사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처음에는 마땅한 브랜드 없이 벌크 와인 수출이 주를 이뤘으나 차츰 자신들의 브랜드를 내세운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출이 늘어났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주요 와인 수출 국가로 자리를 잡았다.
 
와인의 퀄리티를 가르는 5개의 등급과 숙성 정도 표기법

비노 데 파고(Vino de Pago)를 제외한 스페인 와인등급
스페인의 와인 사업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체계화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1926년 리오하 지역을 시작으로 1933년 헤레스, 1937년 말라가 등 주요 와인 생산지에서 ‘등급별 원산지 통제 지침’을 정하고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스페인 와인 등급에는 △준수 기준이 거의 없는 테이블 와인 ‘비노 드 메사’(Vino de Mesa. VdM) △그 보다 높은 ‘비노 꼬마르깔’(Vino Comarcal. VC) △프랑스 와인의 뱅 드 빼이(Vins de Pays)에 해당하는 ‘비노 데 라 띠에라’(Vino de la Tierra. VdlT) △프랑스의 AOC급을 적용한 ‘데노미나시온 데 오리젠’(Denominacion de Origen. DO) △최고등급인 ‘데노미나시온 데 오리젠 깔리피까다’(Denominacion de Origen Calificada, DOC)가 있다.
 
최고급 와인 등급 DOC는 현재 라 리오하(La Rioja)와 프리오라토(Priorato)의 몇몇 와인만 가지고 있다. 2003년에는 단일 포도원 개념을 도입해 DOC보다 한 단계 높은 ‘비노 데 파고(Vino de Pago)’라는 새로운 등급을 만들기도 했다. 특별한 환경과 뛰어난 와인을 생산한 실적이 있는 DOC 구역 안에 위치한 단일 포도밭에서 나오는 고급 와인이 이에 속한다. 프랑스의 특급와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등급으로 이해하면 된다.
 
와인 숙성 등급 , 밑에서부터 비노 신 끄리안사(Vino Sin Crianza), 비노 데 끄리안사(Vino De Crianza), 레세르바(Reserva),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
스페인 와인의 특이점 중 하나는 숙성 기간이 표시됐다는 점이다. 이는 와인의 품질을 확인하는 데 등급 못지않게 중요한 정보다. 숙성 정도에 따라 5개로 나뉜다. '비노 호벤(Vino Joven)'은 숙성을 거치지 않고 병입한 와인이다. '비노 신 끄리안사(Vino Sin Crianza)'는 1년 스테인리스통 숙성 후 6개월 병입 숙성한 와인을 말하며, '비노 데 끄리안사(Vino De Crianza)'는 2년 스테인리스 숙성 후 6개월 이상 오크통 숙성해야 표기할 수 있다. '레세르바(Reserva)'는 레드와인은 3년 이상, 화이트와인은 2년 이상 숙성한 와인으로 그 중 최소 2년은 오크통에서 숙성돼야 한다. 가장 높은 등급인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는 리세르바와 같은 방식을 거쳐 병입 후 3년 추가 숙성해서 시장에 나온다.
 
템프라니오‧아이렌 등 고유 품종이 인기 … 리오하‧라만차 등 각지에 주요 산지 분포
 
스페인 와인은 오크통 속에서 오랜 기간 숙성되면서 생기는 고유한 향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처럼 스페인도 지역마다 다른 포도품종을 기르고 있다. 스페인에서 재배되는 포도품종만 약 60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양조에 주로 사용되는 품종은 20여 종이다.
 
레드와인 용 품종 중 가장 유명하고 스페인 국민에게 사랑받는 품종은 ‘템프라니오(Tempranillo)’다. 섬세하고 향이 좋으며 재배가 쉽다. 리오하 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그라시아노(Graciano)’는 맛이 묵직하고 장기 숙성에 적합해서 그란 리세르바 등 고급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된다. 그 외 ‘가르나차 틴타(Garnacha Tinta)’, ‘모나스뜨렐(Monastrell)’, 등이 있다.
 
화이트 와인 용 품종으로는 중부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아이렌(Airen)’이 가장 흔하고 유명하다.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마카베오(Macabeo)’, ‘비우라(Viura)’ 등도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은 전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중북부의 리오하, 중부 내륙의 라만차(La Mancha), 북동부의 프리오라트(Priorat), 남부의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가 주요 와인 생산지다.
 리오하의 와이너리. 보르도 지역과 가까워 기후가 비슷하다.
리오하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남서쪽으로 322km 떨어진 위치로 기후와 재배 환경이 유사하다. 필록세라 때 보르도의 유명 양조가들이 옮겨 오면서 고급 와인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페인 와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묵직하고 농축된 스타일의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스페인 중심부에 위치한 라만차는 스페인에서 최고(最古) 와인 산지로 가장 넓은 포도 경작지를 가지고 있고 생산량도 제일 많다. 겨울과 여름의 온도차가 매우 크고, 여름 일조량인 12~14시간으로 아주 길며 비가 잘 오지 않아 품질 좋은 포도를 기르기에 적합하다. 템프라니오를 주재료로 하는 레드 와인과 아이렌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뛰어나 스페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곳이다.
 
프리오라트는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도시다. 과거 필록세라의 침입으로 와이너리들이 모두 문을 닫았으나 1990년대 이후 실험적인 양조가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고급 와인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양조가 라울 보베와 대부호 세르지 페레르 사라가 손잡고 만든 ‘페러 보베(Ferrer Bobet)’ 등이 대표적인 와이너리다.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는 과거부터 유명한 스페인의 셰리와인의 생산지다. 셰리와인은 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으로 긴 시간 항해에 와인이 변질되지 않도록 브랜디를 첨가한 데서 유래됐다. 청포도 품종인 팔로미노(Palomino)로 제조되는 화이트 와인으로 은은한 황금빛과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와인은 실용적이고 편안하다. 수출 중 긴 항해를 이겨내려고 와인에 브랜디를 넣는 파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감히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와인에 과일과 설탕을 넣고 차갑게 즐기는 상그리아(sangria)는 또 어떤가. 전통과 격식도 좋지만 자유로운 변주는 편하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최근 스페인 와인이 떠오르는 데엔 그런 매력이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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