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력 제약사 사노피가 미국 정부와 손잡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백신 개발에 착수한다. 사노피는 2016년 2월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지카(Zika)바이러스가 중남미에 창궐할 기미를 보이자 미국 육군과 지카바이러스백신을 독점 개발키로 협약해 놓고서는 2017년 계약을 파기해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사노피는 18일(미국 현지시간) 자사의 글로벌 백신사업 부문인 사노피파스퇴르가 미국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 Services)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 BARDA)과 협력해 신종 코로나 백신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노피는 이로써 이 백신을 개발하는 두 번째 글로벌 제약사가 됐다.
앞서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은 지난 11일 미국 보건부와 협약해 신종 코로나 백신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얀센은 자체 기술인 ‘PER.C6’, ‘AdVac’을 활용할 계획이다.
PER.C6 기술은 고수율의 백신이나 단일클론항체를 대규모로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비용-효율적 제조 시스템이다. 성장이 더딘 바이러스 기반 백신, 전세계적 수요가 있는 백신 등의 생산에 유용한 기술이다. AdVac 기술은 유전자 전달체인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개발 및 생산하는 기술이다.
두 기술은 에볼라바이러스 백신 개발에도 활용돼 백신 200만개 분량을 1년 내 생산하기도 했다. 에볼라 백신은 현재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DRC), 르완다에 공급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지카바이러스, RSV, HIV 백신 후보물질에도 두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밖에 10여개의 중소 바이오벤처가 자체 기술로 백신개발 대열에 뛰어들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백신개발을 돕기 위해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에 백신 항원보강제 플랫폼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사노피는 17년 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 연구해 온 관련 백신기술을 바탕으로 이번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2017년에 인수한 프로테인사이언스(Protein Sciences)는 2002~2004년에 발생한 SARS에 대응해 전임상 후기 단계의 백신 후보물질까지 도출했던 경험이 있다. SARS나 이번 신종 코로나는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로서 전임상시험에서 부분적인 예방효과가 있음이 입증됐다.
사노피 임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가능성 높은 백신은 12~18개월 내에 임상치료 현장 투입될 수 있으며, 발병이 계속되고 임상시험에 성공하면 짧으면 3~4년 내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프로테인사이언스는 유전자 재조합 DNA 백신 개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판 승인을 받은 유전자 재조합 독감예방 주사인 ‘플루블록(Flublok)’은 피인수 당시 핵심 제품으로 꼽혔다. 미국 언론은 중국에 우호적인 세계보건기구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COVID-19라고 부르는데 반감을 가진 탓인지 SARS-CoV-2로 표기하는 데가 많다.
사노피는 신종 감염병 백신 연구개발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만 마지막 개발 과제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논쟁만 불러일으킨 바 있다. 2016년 지카바이러스 발생 당시 사노피는 미 육군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백신을 개발, 판매키로 했다. 그러나 가격 책정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고 갑자기 지카바이러스가 수그러들자, 미국 정부는 계약조항을 축소했고 사노피는 협력을 종료했다.
불미스런 전례에도 불구하고 사노피의 백신 R&D 책임자인 존 쉬버(John Shiver) 박사는 “이번 백신개발 참여는 어렵게 결정한 게 아닌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노피 백신 총괄인 데이비드 뢰우(David Loew)는 “중국발 위기를 모니터링해왔고, 계속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춘절 연휴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올 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백신개발엔 딜레마가 상존한다. 신종 전염병에 대응할 백신을 만드는 데엔 수 년 이상 걸리는데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설사 백신을 생산한다해도 전염병이 한 풀 꺾이면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는 게 제약사들의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