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2019-nCoV), 이른바 ‘우한 폐렴’이 육안으로 관찰되는 증상이 없는 무증상·잠복기 환자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국하는 교민 700여명의 격리 수용지로 지정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주민들은 ‘결사 반대’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하고 철야농성 중이다. 지난 29일엔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이들 지역을 찾았다가 옷이 찢기고 머리채가 잡히는 봉변을 당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NHC)에 따르면 29일 오후 8시 기준 우한 폐렴 확진자는 6086명, 사망자는 132명으로 집계됐다. 의심 환자는 하루 전보다 2200여명 늘어난 총 9239명이었다. 이밖에 일본·태국·한국 등 아시아,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지역 15개국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지난 29일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중동 지역 첫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특히 독일에선 확진자 4명이 증상이 없던 중국인 여성으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무증상 전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NHC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최장 14일에 이르는 잠복기 중에도 전염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창궐해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 SARS, SARS-CoV)와 2015년 국내에서만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MERS-CoV)와 달리 잠복기에도 전염돼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HO)가 불을 지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지난 28일 “조사가 좀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무증상 감염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며 “감염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증상을 보여야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지 아직 단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육안으로 관찰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증상은 발열, 기침, 근육통, 무기력함 등이 대표적이다. 질병예방통제센터가 지난 23일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에 게재한 연구결과 우한 폐렴 환자 41명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98%가 발열, 76%는 기침을 경험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대부분 잠복기 전파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증상이 없거나 미미한 수준에서는 바이러스를 보유하더라도 전파력이 매우 낮다는 설명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반적인 감염병은 증상이 없는 잠복기엔 전염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홍역이나 인플루엔자(독감)는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전염될 수 있어 전파력이 강한 편”이라며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전성이 89.1% 일치하는 사스나 50% 일치하는 메르스의 경우 증상이 없을 땐 전파력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복기 또는 무증상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된 사례는 실제로는 이미 경증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환자가 이를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로 주관적으로 느끼는 증상은 없지만 고해상도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폐렴 소견이 나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잠복기·무증상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데다 발병단계로 넘어가면서 미세하게 경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무증상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며 “중국 당국과 WHO가 별다른 과학적인 근거자료도 없이 무증상 전파를 언급해 불필요한 공포감만 키웠다”고 안타까워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스나 메르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전파력이 없다는 게 정설”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이같은 전형적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도 잠복기나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는 바이러스 전파력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박혜경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팀장은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증식·증폭 과정을 거쳐 양이 늘어나는데 증상 발현 전까지는 바이러스의 양이 매우 적다”며 “무증상기나 잠복기에 전파력이 있다는 주장은 좀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질본은 신고 및 대응을 위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례 정의’를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와 의료기관 등에 배포하고 있다. 확인 즉시 의료기관 등에 신고해야 하는 사례는 ‘조사대상 유증상자’, ‘의심환자’, ‘확진환자’ 등 3가지다.
조사대상 유증상자(Patient Under Investigation, PUI)는 중국 방문 후 14일 안에 영상의학적으로 폐렴이 나타난 사람을 가리킨다. 의심환자(Suspected case)는 후베이성(우한시 포함)을 다녀온 뒤 14일 이내 37.5도 이상 발열, 기침 또는 인후통 등 호흡기증상이 나타난 사람이다. 확진환자(Confirmed case)는 코로나바이러스검사 등을 통해 병원체 감염이 확인된 사람을 의미한다.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국하는 교민들은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공무원 교육시설에 나눠 격리 수용될 예정이다. 귀국 교민은 공항에서 증상여부 검사 후 증상이 없는 경우 14일 동안 임시생활시설에서 생활하게 된다. 가급적 상호접촉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개인공간을 벗어날 땐 마스크를 상시 착용케 할 방침이다. 입소 기간 외부 출입 및 면회는 금지된다.
진천군 주민들이 임시보호시설 지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인구 밀집지역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다. 격리 예정지인 인재개발원 정문부터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의 거리는 불과 400m정도다. 전체 인구 중 청소년과 영유아 비율도 높다. 인구 2만6000여명 중 3520여명이 유치원, 어린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박 팀장은 “격리시설엔 의료진·검역관·경찰이 전부 배치돼 있고, 격리자간 전염을 막기 위해 1인 1실이 배정되며, 방을 나갈 때마다 모든 증상을 체크한다”고 말했다. 이어 “격리시설 기준이 엄격하고,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전혀 없으므로 지역주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국가들도 중국 우한에 고립된 자국민에 대한 수송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9일 우한에서 철수한 미국인 201명을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 소재 마치 공군기지(March Air Reserver Base) 물류창고에 격리 수용할 계획이다.
영국은 30일 전세기를 통해 자국민 200여명을 귀국시킬 예정이다. 영국의 보건부 장관은 이들을 2주간 격리 수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29일 도쿄 하네다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국민 206명 중 증상이 발견돼 입원이 결정된 인원을 제외한 192명을 지바현 가쓰우라시의 모 호텔에 격리 수용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인 최도자 의원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서 “재난용으로 만들어 둔 이동형 병원을 복지부가 창고에만 쌓아두고 있다”며 “재난현장의 의료공급을 위해 만들어둔 ‘이동형 병원’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격리된 교민 중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확인된다면 지역사회가 느낄 공포감과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것”이라며 “환자를 주변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경우에 불필요한 오해와 불편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위기상황으로 가정하고 이동형 병원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동형 병원을 제작하기 위해 2016년 50억원의 예산을 사용했고, 매년 한두 번의 설치훈련과 유지보수를 위해 7~8억원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 실제현장에서 활용된 적은 없다. 이동형 병원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CT실, 제염실 등이 모듈 형태로 구성돼 있다. 외과수술, 중환자 관리가 가능한 50병상 규모이며, 긴급하게 확장할 경우 최대 100병상으로 늘릴 수 있다.
최도자 의원은 “우한에서 온 교민들 격리시설에 이동형 병원을 설치한다면 현장에서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하고, 환자의 이동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며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전파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는 방안으로 이동형 병원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