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형제·자매와 함께 부대끼며 자란 아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과정이 힘들 뿐이다. 아이가 둘만 돼도 육아맘·육아대디의 주름살은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아이들이 치고받고 싸울 때 받는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질투와 싸움은 둘째가 태어나는 직후부터 시작된다. 동생의 탄생은 첫 아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자 스트레스다. 심리학에서는 이 때 느끼는 감정을 ‘폐위된 왕의 감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첩을 보는 정실 부인의 시각’이라고도 한다. 그동안 쭉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던 첫째는 이제 막 태어난 둘째가 귀엽기도 하고 은연 관심도 갖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 위기의식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점차 동생은 얄미운 존재가 되고, 이 때 첫째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은 동생을 괴롭히고 심하면 손찌검까지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평소 어린이집을 잘 가던 아이가 동생이 생긴 뒤 갑자기 가지 않겠다고 울며 떼를 쓴다면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동생하고만 함께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에선 동생이 생긴 뒤 첫째 아이가 잠시 퇴행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아우 탄다’라고 표현한다. 아우 타기 증상은 크게 △동생을 때리고 꼬집는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인다 △평소와 달리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고 우유병을 물고 다닌다 △두통이나 복통 등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한다 등 3가지로 나타난다.
형제간 경쟁심리와 질투심은 왜 생길까. 부모는 서로 사랑해서 스스로 선택한 짝과 가정을 이루지만 형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상대방이 아닌데다가 성격도 천차만별이라 사사건건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취미나 취향조차 맞지 않으면 다툼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형제자매는 나이는 물론 성격도 조금씩 달라 서로를 밀어내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즉 경쟁과 질투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본능이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장기에 부모가 조금이라도 자녀를 차별한다면 아이들은 질투, 경쟁, 열등감을 더 크게 느끼고 피해의식이 생길 수 있다”며 “아이가 차별받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주의하고 아이의 개성과 장점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이유로 첫째 아이가 동생을 질투하고 괴롭히는 것은 성격 문제가 아닌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문제는 이런 질투심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아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신경생물학적으로 질투심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최근 카렌 베일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박사팀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티티원숭이를 대상으로 질투의 감정과 뇌 변화간 연관성을 연구했다. 이 원숭이는 성체가 되면 배우자와 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이들은 마치 연인처럼 짝을 보호하는 행동을 보이고 떨어져 있으면 고통스러워 한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암컷 원숭이가 낯선 수컷 원숭이와 같이 있도록 배치해 수컷 원숭이들의 질투심을 유발했다. 또 질투심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다른 날에는 낯선 암컷이 낯선 수컷과 같이 있도록 했다. 수컷 티티원숭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질투심을 나타내 짝을 이룬 암컷이 낯선 수컷과 교류하는 것을 육체적으로 막기까지 했다. 30분간 이런 상황을 관찰한 뒤 수컷 티티원숭이의 뇌를 스캔해 어느 영역이 활성화됐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질투심을 느낄 땐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연관되는 뇌 뒷부분 대상엽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질투심을 느끼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자신의 짝이 낯선 수컷과 오래 함께 있을수록 코르티솔 수치는 더 많이 상승했다.
자녀 간 다툼을 줄이고 아이의 질투심을 완화하려면 부모가 이런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형제·자매는 근본적으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나눠 가져야하는 운명이다. 누군가는 더 사랑을 받고, 누군가는 덜 사랑받는 것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삶의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해결하는 과정, 싸움을 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과정,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연습토록 해야 한다.
첫째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김 교수는 “아이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되 허용되지 않은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다정하게, 지속적으로 훈육하는 게 중요하다”며 “예컨대 ‘동생이 네 장난감을 망가뜨려서 동생에게 화가 났구나, 그 마음은 잘 알지만 그래도 동생을 다치게 하는 건 안 돼’,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아 섭섭했구나, 엄마 아빠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타일러야 한다”고 말했다.
질투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 큰아이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부모가 동생을 사랑하지만 나에게 오는 사랑의 양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음을 인식한다면 더이상 동생을 더이상 질투하지 않게 된다.
첫째 아이와 매일 최소한 30분이라도 온전히 집중하고 충분히 놀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고 베게싸움이나 펀치놀이 등 거친 놀이를 통해 공격성을 표출하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짧지만 부모와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을 통해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첫째 아이는 동생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여담으로 심리학에서는 세 명의 형제자매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여긴다. 첫째는 태생적으로 똑똑하고, 둘째는 협상력이 강하며, 셋째는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삼형제·자매는 서로의 입장을 살피고 장점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
아이 성별에 따라 이상적인 형제·자매 나이차도 다르다. 여자아이는 정서적 성숙이 빨라 24개월이 지나면 동생을 보아도 괜찮지만 남자아이는 적어도 3살이 넘었을 때 동생을 보는 게 좋다.
뇌에는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좌우의 대뇌반구가 만나는 부분, corpus callosum, 腦梁)이 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이 부위가 클수록 사회적 관계가 원활하고 공감능력이 큰 편이다. 남녀 중 여성의 뇌량이 상대적으로 더 커 남성보다 여성의 공감능력이 높은 편이다. 영·유아에서도 남녀 성별에 따른 이러한 특성 차이가 나타나 여자아이가 동생의 존재를 더 빨리 인정하고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교육학에선 형제의 이상적인 나이차를 3살로 본다. 그 이하이면 첫째 아이의 시기와 질투심이 강해 동생을 괴롭히는 빈도가 잦고, 반대로 형제자매의 나이 차가 3살 이상 벌어지면 상호작용이 부족하거나 사회성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