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중국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감염자가 나왔다. 지난 19일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35살 중국인 여성은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인천의료원에 이송 및 격리돼 치료받고 있다. 그는 입국 하루 전인 지난 18일 발열 등 증상으로 현지 병원에서 감기를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아닌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은 태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첫 확진자가 나오자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높이고 24시간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 환자와 동행한 5명을 비롯해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과 승무원 등 환자와 접촉한 약 180명을 확인하고 있지만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에선 감염 환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진원지인 우한을 넘어 베이징과 상하이, 광둥성(廣東省) 등에도 번졌으며 쓰촨성(四川省), 윈난성(雲南省), 산둥성(山東省), 저장성(浙江省) 등에도 의심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4명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했으며 전체 감염 환자는 우한 198명 외에 광둥성(14명), 베이징(5명), 상하이(2명) 등 모두 219명에 달한다. 이 중 35명은 중증이며 9명은 생명이 위중한 상태다. 한국을 비롯한 태국 2명, 일본 1명 등 해외에서도 확진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사람 간 감염이 확실시 되는 데다 수 천만명이 중국 전역과 해외로 흩어지는 ‘춘절 대이동(1월 24~30일)’을 앞두고 있어 대규모 확산이 우려된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4일 전세계 의료기관에 우한 폐렴의 ‘슈퍼전파(super-spreading)’에 대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우한 폐렴의 원인 바이러스는 호흡기질환을 유발하는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의 일종인 ‘2019-nCoV’다. 2019년 말 처음 인체 감염이 확인됐다. 2003년 8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 SARS, SARS-CoV), 2015년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MERS-CoV) 등이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다.
참고로 2009년 국내에 대유행하면서 260명의 사망자를 낸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A의 변형(H1N1)이다. 조류독감은 조류에만 걸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사람에게 전염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 종류에 따라 크게 알파(Alpha), 베타(Beta), 감마(Gamma), 델타(Delta) 등 4개 그룹으로 나뉜다. 알파와 베타 그룹은 주로 낙타나 박쥐 등 포유류, 감마와 델타는 조류에서 발견된다. 이 중 알파와 베타 그룹만 인간에게 감염되며 베타가 더 치명적이다. 알파는 다시 1a형과 1b형으로, 베타는 2a·2b·2c·2d형으로 세분된다.
코로나바이러스 중 인간에게 감염되는 것은 이번 신종 바이러스를 포함해 총 7종이다. 7종 중 HCoV-229E와 HCoV-NL63은 알파 1b형, HCoV-OC43과 HCoV-HKU1은 베타 2a형, SARS-CoV(사스)는 베타 2b형, MERS-CoV(메르스)는 베타 2c형이다. 신종 바이러스 2019-nCoV는 사스와 유전자 형태가 89.1% 일치해 베타 2b형으로 분류됐다. 사스·메르스·신종 바이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4종은 인체에 전염돼도 기침, 콧물 등 가벼운 호흡기 증상만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라는 명칭은 전자현미경으로 볼 때 바이러스입자 표면에 곤봉 모형의 돌출부가 마치 왕관을 연상시켜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 ‘corona’에서 파생됐다. 직경이 80~200nm(나노미터)로 세균보다 작아 일반 광학현미경으로는 관찰할 수 없다. 1937년 닭에서 처음 발견됐고 1965년에 처음 인체 감염이 확인됐다. 발견 초창기엔 코감기 등 호흡기 증상만 일으킬 뿐 위험성이 높지 않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염성이 강하고 다른 병원균과 쉽게 결합해 점차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바뀌어갔다.
2002년 중국 광동 지방에서 발병한 사스는 홍콩·타이완·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과 캐나다·미국 등으로 퍼져 7개월간 32개국에서 8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774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선 의심 환자만 나왔고 확진자는 없었다. 메르스는 2012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발병해 전세계 2500여명이 감염됐고 이 중 449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선 2015년 5월 첫 감염자가 발생,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 중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스와 메르스는 모두 야생동물을 매개로 사람에게 옮겨졌다.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에 변종이 생기면서 사향고양이로 옮겨졌고, 이 사향고양이를 요리하던 요리사를 시작으로 사람에게 전파됐다. 메르스는 아직 명확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우한 폐렴도 환자 대다수가 비위생적인 야생동물 도축이 이뤄지는 우한시 해산물 시장을 방문한 뒤 발병했다는 점에서 야생동물이 매개됐을 가능성이 높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발열과 함께 기침, 숨가쁨, 호흡곤란 등 증상이 동반된다. 바이러스성 질환이라 항생제는 효과가 없으며, 감염 시 항바이러스제를 증상 완화용으로 처방한다. 입원 환자는 수액과 호흡 보조장치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자의 체력과 면역력에 회복 여부가 좌우된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유행 양상을 고려할 때 전파력은 낮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확진된 중국 여성과 동행했던 사람들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은 비말(침방울)로 전파돼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나타내는 ‘재생산지수’는 높지 않은 편”이라며 “메르스는 재생산지수가 0.4∼0.9명, 사스는 4명이었는데 우한 폐렴의 전파력은 두 질환 사이 어디쯤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비말감염은 바이러스가 침방울을 통해 타인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공기감염보다 전파력이 훨씬 낮은 편이다. 공기감염(공기전파)은 환자의 분비물이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 있는 고체입자 또는 액체방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져 전염돼 전파 속도가 빠르다. 신종플루(인플루엔자A(H1N1), 결핵 등이 대표적인 공기감염 사례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한 폐렴사 태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가장 중요한 치사율은 21일 기준 중국내 감염확진자 219명중 4명이 사망해 2%정도로 사스의 10%, 메르스의 30%보다 낮다”며 “하지만 노약자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의 감염이 늘면 치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려면 감염 위험이 있는 시장 및 의료기관 방문을 삼가고 야생동물·가금류 또는 발열·호흡곤란 등 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한다. 중국에서 귀국 뒤 14일 안에 관련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99)에 전화하면 된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을 꼼꼼이 씻고,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예방수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