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부터 의료기관에서 치료 목적으로 천연온천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온천법 개정안이 예고되자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천수를 이용한 온열요법의 치료효과와 안전성 수준, 적용 대상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지자체와 한의계의 편의를 위해 개정안을 졸속으로 밀여붙였다는 이유에서다. 온천의 질병치료 효과를 주장해 온 한의사들과 온천업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온천은 지열에 의해 평균 기온 이상으로 데워져 지표로 용출되는 지하수다. 현행 온천법 16조와 시행령 17조는 온천수를 목욕장·숙박업·산업시설 등에서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 개정안에 따르면 병원과 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위해 온천수를 사용할 수 있다.
1980년대 말까지 최고의 여행지는 온천이었다.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신혼부부 여행지, 고령층을 위한 효도관광, 자녀 동반 가족여행, 수학여행의 단골명소였다. 전국의 유명 온천지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해외여행객이 늘고 여행지가 다변화되는 와중에 낡은 온천시설의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인기가 급락했다. 전국의 온천 이용객은 연간 2000만명으로 10년째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국내 온천은 전국 440여곳 정도다. 온천법에 따르면 물 온도가 25도만 넘으면 온천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온천협회 관계자는 “온천 한계온도는 지역, 나라마다 정의가 다르다”며 “한국에서는 25도 이상의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물로 규정하고 있고 영국·독일·프랑스 등은 20도 이상, 미국은 21.1도 이상의 물을 온천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선 온도에 따라 25도보다 낮으면 냉천, 25~34도는 미온천, 42도 이상은 고온천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수온이 높은 곳은 부곡온천(경남 창녕)으로 약 78도이며 동래온천(부산) 61.3도, 수안보온천(충북 충주) 53도, 온양온천(충남 아산) 49도 순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왕의 온천’으로 알려진 수안보온천이다. 조선시대부터 ‘물이 솟는 보의 안쪽 마을’이란 뜻에서 ‘물안보’라고 불렀고 이후 지명이 수안보(水安保)가 됐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 치료를 위해 찾았고, 환국 정치로 유명한 숙종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 1892년 수안보 주민들이 만든 규칙을 담은 ‘동규절목(洞規節目)’에는 온천을 즐기기 위해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에 흩어지는 남녀로 인해 법도가 어지러웠다는 내용도 나온다.
행안부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독일, 프랑스, 헝가리 등 유럽 국가들처럼 온천수를 활용한 의료관광 프로그램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헝가리는 2010년부터 1000여개에 달하는 온천에서 척추치료, 물리치료, 수압마사지 등을 치료하는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선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친환경적 온천단지로 설계한 ‘바트블루마우(Bad Blumau)’가 유명 웰니스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터키는 1980년부터 천연온천을 기반으로 한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프랑스 아벤느온천은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 등 피부질환을 앓는 환자를 대상으로 수치료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크나이프’요법의 발원지답게 온천을 이용한 수치료가 활발하다. 크나이프요법은 냉수욕·냉수마찰·교대욕·온열법 등을 조합시킨 치료법이다.
예부터 온천수는 치료용으로 활용돼 전국의 온천엔 조선의 왕들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한의계와 온천업계에 따르면 더운물은 경직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줘 통증을 없애주고 만성 관절염 등의 진행을 더디게 해준다. 피부노폐물을 제거하고 전신을 이완시켜 피로를 개선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피부각질을 녹이고 피부를 매끄럽게 해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도움된다. 호흡기가 약한 환자의 경우 온증기를 통해 불순물을 걸러내 점막기능을 개선한다. 또 온천욕을 통한 기초대사량 증가로 다이어트 효과까지 볼 수 있다. 또 각종 무기물이 함유돼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노폐물을 배출시켜 각종 척추·관절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심뇌혈관계질환 환자는 온천욕이 권장되지 않는다. 김양현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심혈관질환자가 장시간 온천욕을 하면 피부혈관이 확장되면서 표피로 가는 혈액량이 많아지고, 대신 심장·뇌로 가는 혈액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고혈압, 저혈압, 빈혈 등 심뇌혈관계 환자는 열탕에 오랜 시간 있거나 곧바로 냉수마찰 및 냉탕에 들어가는 목욕법은 삼가고 체온과 비슷한 36~37도 탕에서 시작해 서서히 뜨거운 탕으로 옮겨가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흔히 온천은 피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여겨져지지만 과유불급이다. 온천수에 몸을 지나치게 오래 담그면 피부를 보호하는 지질막과 각질층이 모두 벗겨져 피부건조증과 가려움증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건성습진처럼 건조한 피부 탓에 발병한 피부병을 앓는 환자에게 온천은 독이 될 수 있다.
항암치료 부작용인 림프부종을 앓는 환자도 온천을 삼가야 한다. 림프부종이 있으면 피부감각이 떨어져 화상을 입기 쉽고, 사우나나 뜨거운 목욕탕은 림프부종을 악화시킬 수 있다.
업계에선 중구난방인 국내 온천 성분을 표준화해 등급을 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온천은 성분에 따라 단순천, 탄산천, 알칼리천, 식염천, 식염천, 게르마늄천, 라듐천 등으로 구분된다.
단순천은 함유된 성분의 양이 온천수 1kg당 1g 이하이면서 25도 이상인 온천이 나오는 곳이다. 국내 온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온천수보다 유효 성분이 적지만 자극이나 부작용이 적어 고령자에게 적합하다. 신경통, 피부질환, 부인병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구온천(경북 울진), 수안보온천, 온양온천(충남 아산), 척산온천(강원 속초)이 해당된다.
탄산천은 탄산가스 성분이 물 1kg에 250㎎ 이상 함유된 온천이다. 대부분 저온온천으로 말초혈관장애, 가벼운 고혈압, 동맥경화증에 효과적이다. 유독 유럽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국내에선 오색온천(강원 양양), 산방산온천(제주 서귀포)이 유명하다.
알칼리천은 온천수 1kg당 탄산수소나트륨이 340mg 이상 함유된 온천으로 피부질환·신경통·당뇨병·비만·신장염·인두염·후두염 개선에 효과적이다. 상대온천(경북 경산)이 관광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유황천은 온천수 1kg당 유황이 2mg 이상 함유된 온천으로 물이 하얀빛을 띠고 흐리며 달걀 썩는 냄새가 나는 게 특징으로 만성 피부병, 천식, 신경통, 호흡기질환 개선에 도움이 된다. 단 악성 피부질환 환자나 진물이 흐르는 습진이 있는 환자는 피해야 한다. 부곡온천, 신북온천(경기 포천)과 도고온천(충남 아산)이 유명하다.
식염천은 온천수 1kg당 식염을 1500mg 이상 함유한 강식염천과 500mg 이하로 함유한 약식염천으로 나눈다. 알레르기성 피부염, 아토피피부염, 류마티스관절염 등에 효과적이라는 선행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발안식염온천(경기 화성), 마금산온천(경남 창원)이 가볼 만하다.
게르마늄천은 온천수 1kg당 게르마늄(Ge) 함량이 1㎎ 이상인 온천으로 통증 완화와 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선 지리산온천(전남 구례), 용암온천(경북 청도)이 유명하다.
라듐온천으로 불리는 방사능천은 온천수 1kg당 라듐이 1억분의 10mg 이상 함유된 것으로 신경통, 관절통, 피부병, 통풍 개선하는 데 도움된다. 이는 많은 양의 방사능은 독이 될 수 있지만 적은 양은 신체조직을 자극해 신진대사와 생리활성이 촉진된다는 ‘방사선 호르메시스효과(Radiation hormesis effect)’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유성온천(대전)이 방사능천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