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시판을 위해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신약개발의 가장 중요한 단계일 뿐 아니라 비용도 매년 수백만~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 동물 대상 전임상시험에서 시작해 사람에 적용하는 임상시험 3상까지 마치기에는 시간도 수년 내지 십수년이 소요된다.
핵심 임상단계인 3상에 도달하면 그나마 성공 확률은 높아지지만 3상 고개를 넘지 못하면 해당 기업 투자자에게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입히고 환자들에겐 절망을 준다. 외신이 뽑은 올해의 주요 신약개발 실패 사례 15개 아이템을 소개한다.
이전에 승인된 치료제가 없었으나 주요 임상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치료법으로 진전하지 못한 신약후보물질들이다. 15개 실패작 중 노바티스는 3개를 차지해 2019년 가장 큰 실패를 본 빅파마가 됐다. 애브비, 바이오젠·에자이(공동 주관)도 각각 2가지 임상을 지원했다가 쓴맛을 봤다.소분자 신약후보물질에서부터 생물학, 백신, 유전자치료제, 유전자교정(편집)약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1. 미국 애브비의 다형교모세포종(glioblastoma multiforme) 치료물질 ‘데파툭스 M’(Depatux-M, depatuxizumab mafodotin 또는 ABT-414)은 시애틀제네틱스(Seattle Genetics)로부터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 ADC) 기술을 이전받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억제제다. 2014년 미국 FDA와 EU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생존율을 높이는 데 충분한 임상근거가 없어 중단됐다.
2.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개발해온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물질 ‘엘렌베세스타트’(elenbecestat 또는 E2609)는 베타아밀로이드절단효소(beta amyloid cleaving enzyme, BACE) 억제제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바이오젠 측은 치료효과보다 복용에 따른 위험성이 더 크다고 판단해 개발을 중단했다.
3. 스위스 노바티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소재 코나터스파마슈티컬(Conatus)이 공동개발 중이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on-alcoholic steatohepatitis, NASH) 치료물질 ‘엠리카산’(Emricasan)은 카스파제(caspase) 억제제로 중기(2상) 단계 임상시험에서 주요 지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4. 노바티스의 만성 심부전 치료제 ‘엔트레스토필름코팅정’(Entresto, 성분명 사쿠비트릴/발사르탄, sacubitril/ valsartan)은 2015년 이미 좌심실의 수축기능이 떨어진 심박출계수 감소 심부전(heart failure with reduced ejection fraction, HFrEF) 환자의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심박출계수 보존 심부전(Heart failure with preserved ejection fraction, HFpEF)에 효능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임상에 도전했으나 지난 7월 임상시험 판독 결과 사망률과 입원기간을 감소시키고자 했던 주요 목표를 도달하지 못해 엔트레스토의 사용 확대 승인이 불발됐다.
5. 노바티스의 경구용 천식 치료물질 ‘페비피프란트’(fevipiprant)는 알레르기성 천식을 일으키는 염증 작용에 관여하는 수용체로 프로스타글란딘D2수용체(Prostaglandin D2 receptor 2, DP2 또는 CRTh2)의 길항제이다. 주요평가지표인 ‘1초간노력성호기량’(Forced Expiratory Volume in 1 sec, FEV1)을 개선하는 지 알아보는 두 건의 임상 3상 시험에서 폐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실패해 치료제 개발을 중단했다.
6.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Myers Squib, BMS)의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는 교모세포종 대상 3상 임상에서 실패했다.
7. 신라젠의 표적항암제 ‘펙사벡’(Pexa-Vec)은 간암 대상 3상 시험 무용성평가에서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받아 사실상 신약개발 자체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8. 사이클러리온테라퓨틱스(Cyclerion Therapeutics)의 심박출계수 보존 심부전(Heart failure with preserved ejection fraction, HFpEF) 치료제 ‘프랄리시구앗’(Praliciguat)은 대조군에 비해 운동역량(exercise capacity)을 개선하지 못했다. 임상 2상에서 주요 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중단키로 했으나 신장질환계를 적응증으로 한 파이프라인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9. 아일랜드 더블린 소재 엘러간(Allergan·올 6월 애브비에 통합됨)의 항우울제 ‘라파스티넬’(rapastinel)은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 길항제다. 주요우울장애의 보조요법제로서 라파스티넬을 항우울제와 병용한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위약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3건의 말기 임상시험 중간평가 결과 라파스티넬 치료군은 1차, 2차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10. 미국 메릴랜드주 노바백스(Novavax)의 ‘레스백스’(ResVax)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respiratory syncytial virus, RSV) 백신이다. 산모에게 투여 시 영아에서 RSV에 의해 유발되는 중증 호흡기 감염을 예방하는데 실패했다.
11. 미국 화이자와 글리코미메틱스(GlycoMimetics)의 ‘리비판셀’(Rivipansel)은 3상에서 1차, 2차 평가변수에 모두 도달하지 못했다. 리비판셀은 겸상적혈구(sickle cell)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의 혈관 폐색 위험을 치료하는 신약후보물질이다.
12. 애브비의 소세포폐암(small cell lung cancer, SCLC) 표적 항암신약물질 ‘로바-티’(Rova-T, 성분명 로발피투주맙 테시린, rovalpituzumab tesirine)는 항체약물결합체로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여러 번의 임상 시험에서 실패해 약물 개발을 중단했다. 애브비는 2016년 스템센트릭스(Stemcentrx)를 98억원에 인수하며 로바-티를 얻었다.
13.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상가모바이오사이언스(Sangamo Biosciences)의 제2형 점액다당질증(mucopolysaccharidosis type II) 치료물질 ‘SB-913’는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ZFNs)를 이용한 유전자편집 기술이다. 헌터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체내(in vivo) 간세포 DNA 내부의 정확한 병소 부위에 교정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임상 1/2상에서 눈에 띄는 개선사항이 나타나지 않아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14. 길리어드의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물질 ‘셀론서팁’(selonsertib)은 세포자멸 신호통제 키나제(Apoptosis signal-regulating kinase 1, ASK1)를 억제함으로써 간섬유증을 개선하는 기전을 가졌다. 3상 임상에서 NASH로 인해 발생하는 간경변 환자의 섬유화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15. 미국 캘리포니아주 토카젠(Tocagen)의 재발성 고도신경아교종(high-grade glioma, HGG) 치료물질 ‘Toca 511/Toca FC’는 두 부분으로 이뤄진 면역 유전자 치료제이다. 애브비의 데파툭스-M, BMS의 옵디보 이후 남아있는 마지막 임상 후기 단계의 관련 항암제였으나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1차 유효성 평가지수로 표준 치료제와 비교했을 때 전체생존율(overall survival, OS)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2차에서도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Toca 511은 전구약 활성화 효소 시토신 데아미나아제(CD)로 코딩된 레트로바이러스 증식 벡터고, 토카 FC는 5-FC(5-fluoro cytosine)의 경구 서방형(ER) 제형으로 CD를 만나면 5-FU(fluoro uracil)로 변환된다.
16. 오락가락하는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물질 ‘아두카누맙’(Aducanumab)은 몇 주 전만해도 2019년 실패한 임상 시험 목록 상단에 있었다. 지난 10월 말 갑작스런 추가 데이터를 발표하면서 아두카누맙의 무용성평가 결과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아두카누맙에 대한 허가 신청을 재개한다는 바이오젠의 낙관적인 결정에 브라이언 스코니(Brian Skorney) 베어드(Baird) 소속 분석가는 “FDA 승인 기준은 유효성이 실질적 증거로 아두카누맙의 누적된 데이터는 이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사실상 승인 가능성이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