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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학 발전은커녕 의료시장만 혼란 … 의전원 몰락 가속화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2-08 09:32:00
  • 수정 2020-09-10 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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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이후 2곳만 남아 … 의료계 순혈주의에 졸업생 경쟁력 약화, 현대판 음서제 비판도
특정 의대 출신끼리 뭉치는 의료계 순혈주의로 인해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채용이나 승진에서 밀리거나, 심할 경우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모 씨의 특혜입학 시비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 1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의전원을 운영해 온 동국대, 강원대 등이 잇따라 의대 전환 계획을 밝히면서 도입 초기 27개에 달했던 의전원은 2023년 이후 건국대와 차의과학대 단 두 곳만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의전원 체제는 과열된 의대 입시 경쟁을 억제하고 의대 진입장벽을 낮춰 타 전공 출신 기초의학자를 육성한다는 목표로 2005년 도입됐다. 이전까지 의대 교육이 질병을 진단 및 치료하는 임상의학에만 맞춰져 기초의학 연구가 취약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입이 추진됐다.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와 지원 약속으로 당시 전국 41개 의대 중 27곳이 의전원 체제로 전환했다. 의전원은 예과 2년과 본과 4년의 ‘2+4’ 학제인 기존 의대와 달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입학해 4년간 의학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현재 의전원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강원대, 건국대(충주), 동국대(경주), 제주대, 차의과학대 등 5곳뿐이다. 조국 딸 특혜 입학 시비로 문제가 됐던 부산대는 2017년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대 체제로 전면 전환했다. 그나마 남은 동국대도 2020년, 제주대와 강원대는 2021년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예과 신입생만 뽑을 예정이다. 차의과학대와 건국대도 향후 5년 내에 의대 체제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잖다.
 
건국대는 의전원 운영과 관련해 최근 총장이 직위해제되는 등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지난 9월 민상기 전 건국대 총장은 민주당 충주지역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충주 글로컬캠퍼스로 옮기고 의전원을 의대로 변경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를 인지한 학교 이사회는 민 총장이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의전원의 빠른 몰락은 이미 도입 초기부터 예고됐다. ‘기초의학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양성된 기초의학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편없이 부족했다. 정부도 표면상으로만 기초의학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실질적인 예산 지원엔 인색했다. 기초의학은 생명 현상의 본질과 각종 질병의 근본적인 발생 원인을 밝히는 학문 분야로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미생물학, 기생충학 등을 포함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인 임상의학은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등 실제 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지는 분야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비용 대비 효과나 안전성 등 눈에 띄는 지표가 확실하게 도출되는 임상의학 연구와 달리 기초의학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해 제대로 된 국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기초의학 연구자는 임상의사에 비해 일자리를 구하기 더 어렵고 연구비 지원도 부족해 국내에서만큼은 장래성 있는 직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실제로 의전원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의전원생 10명 중 9명은 기초의학이 아닌 임상의학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명감을 갖고 기초의학자의 길을 선택해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H 대학병원 관계자는 “연구중심병원 시행으로 대학병원들이 임상의사 중 연구에 열정을 갖는 사람(중개의학 지향자)을 중심으로 양성하면서 의전원 출신 기초의학자들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전원 졸업 후 의사가 되더라도 ‘순혈주의’가 강한 의료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의대 출신 의사에게 밀리기 일쑤였고 일부 의료기관에선 단지 의전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 의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50대 이상 중진 교수들은 본고사나 학력고사를 보고 의대에 합격한 뒤 의사면허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정통 코스’를 밟았기 때문에 의전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C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교수진이나 학생, 부모나 소위 잘 나가는 사람만 모여 있는 ‘그들만의 리그’라 입학 과정이나 장학금 지급 등 학사일정 전반에서 부정과 특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며 “최근 논란이 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부산대 의전원 특혜 입학이 대표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공대나 자연대 등 다른 이공계 전공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전공 분야와 상관없는 의전원 행을 택하면서 의학을 제외한 이공계 전반의 인재 풀과 경쟁력이 감소하는 이공계 공동화 문제도 불거졌다. 아예 대학 입학 초기부터 의전원 진학을 위해 학점을 따고 스펙을 쌓는 등 대학을 의전원 진학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만 보는 경우도 있다.
 
법조계 로스쿨과 같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도 거셌다. 2015년 기준 의전원의 1년 등록금은 2000만원 수준으로 일반 의대보다 2배 이상 비쌌다. 4년 과정을 마치려면 적어도 8000만원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풍족한 정치인,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 등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입학률이 월등히 높다.
 
의전원 출신 일반의들이 대거 배출돼 의료시장 질서가 흐트러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반의는 의대 과정 6년 또는 의전원 4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뒤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이다. 반면 전문의는 의사면허를 따고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인턴) 1년과 전공의(레지던트) 3~4년 과정을 거친 뒤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의료인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전원 졸업생 중 부유층 자제들은 의사면허만 딴 뒤 극한의 피로감과 인내를 요구하는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모의 지원을 받아 개원하거나, 상대적으로 근무 강도가 덜 센 페이닥터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의전원 출신 일반의가 인기가 좋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병·의원을 개원해 비급여 진료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임으로써 부가 대물림되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결국 기초의학자 양성 실패, 기성 의료계와 사회 전반의 반대여론, 의전원 출신 의사들의 경쟁력 부족 등 요인이 겹치며 의전원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현재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의전원 실패 이유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투입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의전원은 나무를 보지 못하고 숲만 본 정부의 졸속 행정으로 인해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며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향후 교육 정책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 의료계 전문가 단체와 논의를 거쳐 철저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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