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고 헛것이 보이는 ‘가위눌림’으로 고충을 겪는 경우를 평생에 몇번은 겪는다. 가위눌림의 의학적 명칭은 수면마비(Sleep paralysis)로 잠이 든 직후나 잠에서 막 깼을 때 무엇인가에 잡힌 듯 전신이 마비된다.
가위눌림이 오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오면서 괴롭거나 무서웠던 과거 경험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사람 목소리나 호루라기 소리 등 소음이 들린다. 공포심을 떨치기 위해 몸을 움직여도 꿈쩍하지 않고 목소리도 거의 내지 못한다. 보통 수 초, 수 분 이내에 회복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지가 저리면서 아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몸을 만지거나 말을 걸면 마비가 바로 풀리는 게 특징이다.
이런 증상은 옛 조상들도 ‘귀염(鬼魘)’, 즉 귀신이 압박하는 증상이라며 두려워했다. 동의보감은 가위눌림에 대해 ‘잠들었을 때 혼백이 밖에 나간 틈을 타 귀신이 침입, 정신을 굴복시킨 것으로 당사자 앞에서 불을 비추거나 이름을 부르면 죽을 수 있어 발뒤꿈치나 엄지발가락 발톱 근처를 아프게 깨물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위눌림은 잠을 자던 중 의식이 갑자기 돌아왔는데 근육은 아직 깨어나지 못해 발생한다. 인간의 수면 단계는 렘(REM, Rapid Eye Movement)과 비렘(NREM, Non-Rem sleep)으로 나뉜다.
렘은 몸은 잠들었지만 뇌는 깨어있는 얕은 수면 단계다. 호흡·심장박동을 유지하는 몇몇 근육을 제외하고 모든 근육의 긴장이 풀리면서 몸 전체가 마비 상태에 들어간다. 반면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호흡화 혈압이 불규칙하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 꿈을 꾸므로 ‘꿈잠’으로 불린다. 렘수면 단계에서 근육이 마비되지 않으면 뇌가 현실과 꿈을 혼동해 자다가 일어나 걸어다니거나 폭력을 가하는 몽유병이 생길 수 있다.
전체 수면의 70~80%를 차지하는 비렘은 렘보다 깊이 잠든 상태로 뇌와 몸이 함께 휴식을 취한다. 렘 단계보다 호흡과 심박동이 느리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얼마나 깊이 잠들었느냐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수면 중엔 렘과 비렘이 90~120분 주기로 3~5회 번갈아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근육도 마비됐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만약 렘수면 단계에서 갑자기 의식이 깨어나면 근육은 여전히 마비된 상태여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를 가위눌림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10대 청소년기에 처음 경험하고 연령대나 남녀별 차이는 없다. 한 해외 연구결과 세 명 중 하나는 일생에 한번 이상 수면마비를 경험하고, 이 중 10%는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마비를 유발하는 주요인은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수면습관이다. 심신이 지치고 마음의 병이 심할수록 가위눌림 빈도가 잦아지고, 마비 상태에서 귀신 등을 보는 ‘입면기 환각’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수면마비가 있는 사람은 불안척도 점수가 높게 나오는 등 정신병리학적으로 불안감과 깊게 연관된다.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연관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X염색체 우성에 의한 유전적·가족형 수면마비도 있지만 몇 건의 사례만 보고될 정도로 극히 드물다. 또 기면증 환자의 20~40%가 수면마비를 경험한다.
일반적인 수면마비는 치료가 불필요하다. 특히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주로 나타나는 격리형 수면마비는 일시적인 증상으로 전체 인구의 40~50%가 겪는다. 단 증상이 너무 자주 반복돼 잠을 설치고 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전문의와 상담해보는 게 좋다.
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마비는 불규칙한 수면습관, 수면부족, 스트레스, 공포영화 시청 등 시각적 자극이 원인”이라며 “잠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편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들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면 수면마비 예방에 도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