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 기후의 특성상 예부터 조상들은 풍요로운 가을 먹을거리를 어떻게 하면 겨우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개발된 게 무청(무잎)을 말린 시래기다. 시래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이 20~50% 가량 줄어 영양 성분이 농축된다. 특히 섬유소가 풍부해 만성 변비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최근에는 귀한 웰빙 식재료로 거듭났다.
시래기를 비롯한 채소나 생선을 말릴 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숙성(熟成)이 일어나 맛이 깊어진다. 숙성은 외부 공기와 교류없이 내부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말리면 자연스럽게 당도가 높아지고 숙성으로 생긴 각종 물질로 인해 음식맛도 배가된다.
시래기는 신선한 채소가 부족했던 겨울철에 영양분 공급 구실을 톡톡히 했다. 시래기(100g)에는 비타민A(2.6㎎), 비타민C(70㎎), 칼슘(190㎎), 철분(14.5㎎) 등이 풍부하다. 철분은 하루 성인권장량(14㎎)에 해당하는 양이 들어 있어 빈혈이 잦은 여성에게 좋으며, 칼슘은 성장기 어린이 골격 발달 및 성인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 동맥경화 억제 효능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체내에서 비타민A로 변하는 베타카로틴이 함유돼 유해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과거에는 시래기를 햇볕이 나는 양지에서 말려 영양소 손실이 심했지만 최근에는 덕장이 갖춰진 그늘에서 주로 말리므로 이런 단점을 크게 줄였다.
시래기는 100g에 32㎉ 정도로 저열량식으로 다이어트식으로 적절하다. 35% 이상이 식이섬유로 위, 장 등에 머물러 포만감을 준다. 자연스레 과식을 막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포도당 및 콜레스테롤 흡수를 저지해 당뇨병, 동맥경화, 변비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체내에서 수분을 흡수해 대변 부피를 늘리고 연동운동을 도와 대장암이나 변비를 예방해준다.
시래기는 우거지와 혼동하기 쉽다. 나물, 국, 찌개 등에 넣어 먹는 등 둘의 사용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이고, 우거지는 배춧잎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거에는 무를 먹고 남은 것을 시래기로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시래기 전용 무를 재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시래기를 얻기 위해 뿌리는 작고 무청이 무성하게 자라는 ‘시래기무’를 키우고 있다. 현재 종묘회사에서 시래기무로 내는 품종은 2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여름 작물을 거두고 난 뒤 심으며 재배기간은 60일 내외다. 시래기무와 일반 무 시래기는 품질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일반 무는 뿌리가 커지면서 무청이 억세지는데 시래기무는 다 자라도 적당한 식감을 유지한다.
김병진 강원도 양구군 농업기술센터 현안대책추진단 관계자는 “지난해 양구 시래기 재배 농가는 130여 곳으로 약 380t를 생산해 46억원의 수익을 거뒀다”며 “감자, 옥수수, 무 등 작물의 수확이 끝난 후인 8월 중순부터 파종을 시작해 10월 중·하순에 거둬들인 뒤 며칠간 건조 후 상품으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양구 고산분지 특유의 큰 일교차와 바람 등을 갖춰 시래기의 향이 진하고 질이 부드럽다”고 덧붙였다.
‘시래기를 볶아 대보름에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과거에는 대보름날(음력 1월 15일) ‘진채’(陣菜, 묵은 나물)를 먹으면 그해 여름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여겼다. 진채는 시래기 외에 호박가지, 버섯, 고사리, 도라지, 토란대 등을 이용해 만든다. 이외에도 시래기밥, 시래기떡, 시래기찌개 등도 대표적인 시래기 음식으로 꼽힌다.
시래기의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인도에서 넘어와 고조선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리안족의 ‘silage’(생목초, 살아있는 목초)란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나마 유력하다. 일부에서 무를 사용하고 남은 쓰레기를 이용했다며 쓰레기에서 변형된 것이라 주장하지만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 전라도에서는 씨래기 또는 씨라구로 부른다.
시래기는 하루 정도 찬물에 푹 담가 불린 후 쌀뜨물에 삶으면 잡냄새가 없어지고 부드러워진다. 시래기는 된장, 고등어 등과 궁합이 잘 맞다. 된장의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시래기가 보충해 주며, 고등어에 부족한 식이섬유를 시래기가 보완한다.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한 산성 식품인 선지와 알칼리성 식품인 시래기도 잘 어울리는 식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