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사들 사이에서 ‘핫(hot)’한 대화 주제는 항응고제다. 지난달 1일부터 신규경구용항응고제(New Oral Anti-Coagulant, NOAC)를 1차 치료제로 급여 처방할 수 있게 되면서 선택의 폭이 넒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최근 항응고제 신약들의 보험급여기준 개정사항을 포함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약제)’ 고시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 신규 경구용항응고제로는 바이엘헬스케어의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 rivaroxaban)’, 베링거인겔하임의 ‘프라닥사(성분명 다비가트란 에텍실레이트, Dabigatran etexilate)’, BMS제약·화이자제약의 ‘엘리퀴스(성분명 아픽사반, Apixaban)’ 등이 있다. 이들 약제는 모두 ‘비판막성(NV) 심방세동(AF) 환자의 뇌졸중 예방’에 대한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심방세동 환자는 뇌졸중 예방을 위해 항응고제를 평생 복용하는 확률이 높아 NOAC의 처방량 역시 예전에 비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사유에 대해 “교과서, 국내외 가이드라인, 임상연구 논문, 뇌졸중 예방효과, 출혈 위험성 감소, 약 용량 조정 불필요 등의 임상적 유용성을 고려해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 중 고위험군에 투여 시 1차 약제로 급여기준을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의사들은 ‘와파린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라는 기준의 객관성 부족으로 주관적 판단에 따라 NOAC를 사용해야 했다. 고시 개정안은 ‘와파린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만’이라는 제한적 성격의 문구가 삭제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이같은 규정에 막혀 주요 시장인 뇌졸중 예방 영역에서 매출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NOAC는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또 시장규모가 확대될 경우 각 제품 간 매출실적 차이도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제품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의료진은 이번 급여기준 개정을 반기며 ‘더 이상 요청사항이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정부에서 심장질환을 포함한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계획을 발표한 이후 줄곧 NOAC의 급여기준의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동안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에게 뇌졸중 예방 목적으로 투여됐던 와파린은 연령, 유전적 요인 같은 환자 개인의 특성과 더불어 병용약물이나 음식물 등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 제한이 컸다.
와파린은 NOAC가 등장하기 전 가장 많이 사용되던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약이다. 아스피린이 33%의 예방효과를 보였다면 와파린은 이를 68% 수준까지 끌어올려 효과가 좋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의사가 사용하거나 환자가 복용하기엔 까다로운 약이기도 했다.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음식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아 복용에 있어 따질 게 많았고,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혈액검사를 통해 이 약이 INR(혈액응고수치) 레벨 2~3을 적정하게 유지해주고 있는가 확인해야 했다. 환자는 매번 피를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비타민K가 있는 음식의 섭취를 피하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국내의 경우 최소 3개월마다 INR 수치를 모니터링해야 하고 목표치료범위(TTR) 유지 등의 어려움 때문에 와파린 투약을 시작한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의 약 25%가 첫해 투약을 중단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심지어 INR 수치가 적절히 유지되는 경우라도 치료 중 뇌졸중 및 뇌출혈 위험이 상당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와파린을 처방받더라도 제대로 복용하는 환자가 적었다. 정보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항응고치료가 필요함에도 불편감 때문에 와파린을 처방받지 못했던 환자가 약 60%, 나머지 40%의 처방받은 환자 가운데도 치료범위가 유지됐던 이들은 절반 가량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개원가의 경우 와파린 처방이 유독 어려웠다. 와파린을 처방할 경우 INR 혈중레벨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못받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도 이 수치를 조절하는 게 너무 복잡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NOAC의 등장은 의사들과 환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의사들이 꼽는 NOAC의 대표적인 장점은 복약 편의성과 안전성이다. 혈액검사를 자주 하지 않아도 항응고효과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INR 수치가 조절되지 않던 환자에게 유용하다.
이처럼 NOAC가 ‘포스트 와파린’으로서 인기가 급상승하자 매출 증대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현재 프라닥사와 자렐토의 치열한 양강구도에 엘리퀴스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외래처방 집계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2014년 자렐토는 50억원을, 프라닥사는 37억원의 처방액을 기록했다.
프라닥사의 경우 의사들로부터 뇌졸중 감소 효과가 가장 좋다고 평가된다. 특히 뇌졸중 원인의 대부분인 허혈성 뇌졸중 발생을 와파린에 비해 감소시킨 유일한 NOAC다. 3상 임상연구(RE-LY)를 통해 허혈성 뇌졸중 및 출혈성 뇌졸중의 예방 효과 및 안전성 측면에서 기존의 표준치료요법인 와파린 대비 우월성을 보인 치료제로 201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획득했다. 100여개 국가에서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 예방을 위한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에서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의 위험감소를 위한 치료제로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임상 결과 프라닥사를 아시아인에게 1일 2회 150㎎씩 투여하면 와파린과 비교해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약 45%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혈성 뇌졸중 위험은 약 78% 감소했으며, 두 용량(110㎎·150㎎) 모두 주요 출혈 및 전체 출혈 위험을 유의하게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의 NOAC인 자렐토는 ROCKET AF임상시험을 통해 와파린 대비 뇌졸중과 비중추신경계 전신색전증 발생률을 21%, 뇌졸중·전신색전증·심근경색증 및 혈관사망 등의 발생 위험을 15% 감소시켰다. 출혈 발생률은 와파린 대비 유사했지만 두개 내 출혈과 치명적 출혈의 발생률은 각각 와파린 대비 33%와 50% 감소했다.
‘심장표지자 상승을 동반한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을 경험한 환자에서 아스피린과의 병용 혹은 아스피린 및 클로피도그렐과 병용투여시 죽상동맥혈전성 사건 발생률 감소’ 적응증까지 포함해 국내에서 총 5개의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바이엘은 자렐토가 NOAC 중 정맥과 동맥혈전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가장 넓은 범위에서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NOAC와 달리 하루 한 번만 복용하면 돼 편의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뇌졸중 위험 낮추는 데에는 프라닥사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고, 자렐토는 출혈위험이 상대적으로 낮고 복용이 간편한 게 장점이다.
엘리퀴스는 안전성이 강점으로 2011년 11월 ‘고관절 또는 슬관절 치환술을 받은 성인 환자의 정맥혈전색전증의 예방’ 적응증으로 허가되며 국내에 진입했다. 이어 2013년 1월에는 자렐토와 프라닥사에 이어 세 번째로 ‘비판막성 심방세동(NVAF) 환자의 뇌졸중 및 전신 색전증의 위험 감소’ 적응증을 획득했다. ARISTOTL임상을 통해 와파린 대비 뇌졸중 또는 전신색전증 발생률을 21%,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위험을 11%, 주요출혈 발생률을 31% 감소시켰다.
BMS 측은 엘리퀴스가 비타민K길항제(VKA) 대비 뇌졸중·전신색전증, 주요출혈, 사망률 모두에서 우월성을 입증한 유일한 NOAC라고 주장한다.
정당 가격은 자렐토는 10·15·20㎎ 모두 2626원, 엘리퀴스는 2.5·5㎎ 모두 1313원, 프라닥사의 경우 110㎎ 1287원·150㎎ 1316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