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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분명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데 결과물은 ‘글쎄’ … 조용한 ADHD 의심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5-08-10 10:12:23
  • 수정 2020-09-14 12: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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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에 비해 과잉행동 줄어들고 부주의함이 주로 문제 … 스트레스로 후천적으로 발생하기도
어린 시절 ADHD를 겪지 않아도 성인이 된 후 스트레스 조절에 실패하면 성인 ADHD를 겪을 수 있다.여대생 이모 씨(28)는 고교 시절부터 ‘앉아있는 시간에 비해 성과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별히 사고를 치거나,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학생이었지만 늘 기대보다 못한 성적 등으로 ‘열심히 노력했으면 된 거지’라는 위로만 들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과 떠들거나 수업을 방해하지 않을 뿐, 혼자 조용히 딴 생각을 하거나 멍때리는 게 그의 ‘주특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소설이 없다. 

대학에 와서 더욱 문제가 심각해졌다. 고교 때와 달리 강제성이 전혀 없는 대학생활에 이 씨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모두 마친 뒤에도 멍을 때리거나,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수업시간을 흘려보냈다. 

최근에는 공인 외국어인증 시험을 치루기로 해 놓고 준비를 다 한 뒤에도 역시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이같은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크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진로 관련 심리상담을 받다가 ‘조용한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잘 잊고, 매사에 싫증을 자주 느끼며 무기력하고, 과제나 일을 앉은 자리에서 끝낸 적이 거의 없다. 수업이나 근무 시간이 되면 5분만에 마음이 멀리 우주를 유영한다.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ADHD가 성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인도 어린이 ADHD의 지속부터 스트레스까지 다양하다.

ADHD는 크게 과잉행동·충동형, 부주의형, 혼합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송동호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어린이는 ADHD의 전형적인 증세 부주의함, 충동성, 과잉행동 등 세 가지가 모두 나타난다”며 “하지만 성인의 경우 과잉행동은 줄어들고 부주의함이 주로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성인에서 많이 나타나는 주의력결핍 증상만 있는 ADHD는 별칭으로 ‘조용한 ADHD’나 주의력결핍장애로 부른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용한 ADHD’ 환자 수가 일반적인 ADHD 환자의 2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은 앉아있는 시간은 길지만, 실제로 집중하는 시간은 채 5분에서 10분도 안 되고, 성적도 그리 좋지 않다. 수업 중에도 가만히 앉아있지만 혼자 낙서한다든지,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자주 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어렸을 때 ADHD를 겪은 뒤, 완치되지 않아 증세가 성인이 돼서도 나타나는 ADHD 환자가 적잖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성인 ADHD 환자가 전체 인구의 약 2~4%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어린이 환자 비율인 5%(가벼운 경우는 약 8%)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어려서 ADHD를 겪은 사람의 절반이 성인 ADHD로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부주의함에 따른 무능력과 무기력을 겪는다. 인구 중 2%라면 50명 중 한 명꼴로, 학교로 치면 한두 반에 한 명이 환자가 된다. 

이들은 직장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일에 집중하고 싶어도 5분이 채 안 돼 딴 생각이나 딴짓을 하니 능률이 떨어진다. 조금만 규모가 크거나 복잡한 일을 만나면 머릿속이 엉킨 것처럼 돼 제대로 마치지 못하며, 심지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얼마나 시간을 들여 어떻게 마쳐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다. 과잉행동처럼 공격적인 증상은 아니지만, 잦은 실수와 건망증, 무능함으로 사회에서 갈등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그 결과 우울증까지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증상이다.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인 ADHD 증상은 크게 △실수형 △외톨이형 △이직형 등 세 가지로 드러난다. 

우선 업무상에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실수형은 주로 시각인지기능 저하와 큰 연관이 있다. 이런 경우 문장을 따라가며 읽는 능력이 낮아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 읽기도 한다. 그 결과 직장 내에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어져 심리적인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단체생활 속에서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외톨이형은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눈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인간은 우측 대뇌반구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데, 이 기능이 저하된 성인ADHD의 경우 회의 상황이나 사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주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질문에 대해 답하는 데 엉뚱한 소릴 한다.

실수형과 외톨이형의 복합형인 ‘이직형’은 잦은 실수와 단체생활의 어려움을 느껴 회사를 이직하는 경우다. 성인 ADHD 환자는 상사의 말이나 업무의 불공정을 다른 사람보다 잘 참지 못해 과잉행동을 보이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인관계 실패로 인한 외로움, 피해의식, 열등감 등을 치유해야 자신의 삶에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다. 가정, 직장 등에서 적응훈련도 필요하다. 생활하면서 부딪히게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대처방법을 익혀야 한다.

성도덕도 다른 사람에 비해 가벼운 경우가 적잖다. 싫증을 자주 느끼는데다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즉흥적이기까지 하니,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를 가질 확률도 높다. 

러셀 바클리 미국 서던 캐롤라이나대 의대 교수는 성인 ADHD 환자들의 10대 임신 위험성과 성병 감염 위험성은 다른 사람에 비해 각각 10배와 4배나 높다. 준비되지 않은 자식을 갖고는 돌보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혼이나 불륜 역시 각각 2배와 4.6배 높게 발생한다. 

ADHD는 유전과 뇌 발달 결함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성인 ADHD는 때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건망증을 비유한 말로, 불필요하게 과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성인 ADHD의 증세는 의학적인 실체가 있으며, 그 뿌리 역시 어린 시절 겪은 ADHD에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성인 ADHD를 확진할 때 의심 환자가 12세 이전에 ADHD 증상을 보였는지를 확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트레스도 성인 ADHD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어린 시절 ADHD를 겪지 않아도 성인이 된 후 스트레스 조절에 실패하면 성인 ADHD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는 스트레스가 전전두엽에 영향을 미쳐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저하시키고 즉각적 보상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성인 ADHD 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스트레스에 의한 뇌의 변화는 일시적이라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박혜연 임상심리전문가(서울대 심리학과 연구원)는 “적어도 쥐 실험에서는 코르티솔 주입을 중단하면 뇌가 원상 복귀됩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회복을 실험한 연구 결과는 없어요. 계속 주의와 연구가 필요한 이유죠”라고 말했다.

아직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는 스트레스가 ADHD의 원인이라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지금도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이며, 의미 있는 연구 결과도 쌓이고 있다. 

성인 ADHD치료는 약물치료 등으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진단의 체계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증상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치료해야 한다. ‘내가 성인 ADH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자가진단할 게 아니라 전문가와 상담받고 치료 시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일단 성인 ADHD로 진단되면 약물치료로 집중력을 높이고 생활을 안정시킨다. 이와 함께 인지행동요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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