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면 문과로 가거나 이과로 가거나 결국에는 치킨집을 창업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반적 회사의 평균 정년이 55세로 줄어든 데다 구조조정이 잦아지면서 정년퇴직자는 물론 조기퇴직한 40대 가장들까지도 갈 곳이 없는 게 최근 현실이다. 보험회사가 연금 상품을 팔면서 돈없이 오래 사는건 불행이라고 강조한 게 틀린 말은 아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4년 143건이었던 치킨 상표의 출원은 2010년 422건, 2011년 609건, 2012년 470건, 2013년 554건으로 10년간 약 260% 증가했다.
치킨 프랜차이즈의 시작은 1977년 문을 연 림스치킨이다. 1984년 KFC를 필두로 1995년에 BBQ가 외환위기(IMF사태)를 뚫고 고속성장했다. 이후 교촌치킨, 네네치킨이 한 때 대세를 장악했다가 최근 중소 브랜드가 틈새시장을 노리면서 주춤하는 분위기다. 치킨집이 유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본에 기술력이 없어도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촌의 경우 반경 1km이내에 13개의 치킨집이 존재할 정도로 포화상태다.
왜 이렇게 앞이 빤히 보이는 창업들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조기퇴직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손쉬운 방안을 찾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골자로 한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청년을 고용하면 한 쌍(임금피크+청년고용) 당 최대 월 90만원(연 1080만원)을 2년간 한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노사간 합의를 통해 피크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하고 소정 기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기존에 정년퇴직이 55세였기 때문에 기껏해야 약 5년 정도 저임금으로 일하게 만드는 제도일 뿐이다. 그리고 2년간 한시지원 후 그에 대한 후속조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은행은 계열사를 통폐합한 여파로 올해 희망퇴직자 중에서 지점 내 청원경찰(로비 매니저)로 재고용하는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다. 150만원의 월급을 받고 매년 재계약을 바라야 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만들어냈다.
제약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국내제약사는 오래 같이 가는 분위기가 남아 있지만, 외국계 제약사는 본사의 지침에 따라 툭하면 구조조정 당하기 일쑤다. 국내제약사 출신들은 의약품 도매상에 취직하는 게 그나마 용이하다. 그러나 외국계 제약사 출신들은 직접 리베이트를 살포하거나, 의사들의 비위를 맞추는 해본 경험이 없어 도매업계에서 그다지 반기질 않는다. 결국 치킨집 차릴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최근 다국적제약사 출신으로 임원까지 지낸 A씨도 서울에 치킨집을 냈다.
최근 일부 국내사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직원들을 내보냈고, 이 과정에서 자포자기에 분풀이가 겹쳐 내부자료를 검찰에 제보한 사례가 적잖다는 게 업계의 흉흉한 소문이다.
영업부서가 아닌 사람들은 의약품 도매상에 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나마 2009년부터 9급 공무원 응시자 연령제한이 사라지면서 이쪽으로 시험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퇴직자들의 경험이 그대로 사장된다는 것이다.
향후 경영난으로 제약회사들의 합병이나 도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회사는 제약 관련 퇴직자들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직업재훈련 기회를 주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