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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 … ‘밋밋한 향미에 애주가 등돌려’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5-07-28 14:17:59
  • 수정 2020-09-14 1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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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주가 다수 “수입맥주가 좋다는데” … ‘절대 미각’ 무시하고 국산맥주 ‘괜찮다’는 해괴한 변명
2012년 11월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이후 국내 맥주시장이 많이 달라졌다.
당시 오비(카스)와 하이트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가 최근에는 업그레이드된 맥주가 등장했다. 하이트는 부랴부랴 ‘뉴하이트’를 지난해 4월 내놓았다. 알코올 도수를 4.5%도에서 4.3%로 낮추면서 부드러움과 청량감을 높였다.
라거 일색이던 맥주시장에 하이트는 ‘퀸즈에일’, 오비는 ‘에일스톤’으로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가격은 각각 소매기준(500㏄캔) 3500원, 3300원이다. 호프집이나 수입맥주집에서는 병당 5000~6000원이나 간다.

그 사이 수입맥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 대형마트에서 2010년 10% 초반에 불과하던 수입맥주 시장점유율(매출액 기준)은 올 상반기 30%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전체 맥주시장 중 수입맥주는 2012년 3.6% 수준(출고량 기준)에서 2014년 현재 5.7%로 급증했다. 2014년에는 전년 대비 수입량이 무려 24.5%나 증가했다.

지난해 4월 롯데주류에서 맥주에 물과 소주주정을 타는 기존 맥주와 다른 ‘클라우드’를 내놓았다. 알코올 도수를 5%로 높이되 물을 타지 않은 그래비티 공법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양분된 국내 맥주시장에서 또하나의 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국산맥주는 맥주맛을 모르는 소비자를 기망하며 승승장구해왔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맛없는 김치는 못 참는 한국인들이 따분한(boring) 맥주는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는 냉소적인 조롱까지 했다. 국산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도 맛이 없다는 얘기도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국산맥주를 일컬어 ‘보리가 오줌 싼 물’, ‘맥아가 샤워한 물’, ‘밍밍하니까 소주와 폭탄해서 마시면 딱 좋은 맥주’, ‘치킨하고 먹으려면 맥주맛이 약간 싱거워야 좋다’ 등의 폄하가 넘쳐나는데 과연 이에 반박할 국산맥주가 있을까.

사실 맥주가 라거(저온서 하면발효한 맑은 맥주)와 에일(상온서 상면발효한 진한 맥주)로 양분된다는 상식에 가까운 지식도 맥주애호가조차 이제야 아는 듯하다. 맥주가 심심하다보니 소주와 섞어먹는 폭탄주용 베이스로 전락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오비맥주가 벨기에 밀맥주인 ‘호가든’을 국내서 생산하고 있으나 애주가는 맛이 떨어진다며 ‘오가든’이라고 비아냥댄다.

수입맥주를 좋아한다며 기껏 밀러, 쿠어스, 버드와이저, 아사히를 찾는 사람도 실은 하수다. 이런 맥주는 외국의 펍(pub, 선술집, 또는 호프집)에서 값이 싸서 일반 대중이 흔히 찾는 그렇고 그런 맥주에 불과하다. 사실 새뮤얼 아담스(미국 동부의 에일)나 바이엔슈테판(독일 정통 밀맥주)를 안다면 그나마 맥주에 조예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기네스, 삿포로, 산토리, 칭다오 등은 준수한 품질이거나 특색이 있는 맥주들이다.

국내 맥주업체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필리핀(산미구엘), 베트남(비아하노이)보다도 양질의 맥주를 못만드는 것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독과점하다시피 양분해온 시장구조 때문이다.

국산맥주의 선두 다툼은 사실 향미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영업력에 좌우되는 돈놀음에 불과하다. 1991년 오비맥주가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한 사건이 일어났고 1993년에 하이트는 천연암반수를 내세워 물이 좋은 맥주임을 내세워 오비를 밀어붙였다. 오비맥주 몰락에는 페놀사건을 빌미로 대리점들이 강압적인 오비의 영업방식에 반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이트맥주의 독주가 약 10년 가까이 지속되더니 하이트가 진로(소주) 인수 이후 대리점을 강압적으로 대하면서 관계가 뒤틀려 오비맥주에 선두를 내놓게 됐다.

카스와 하이트의 차이는 맥주회사나 주류도매상에서 병당 몇십원 낮은 가격에 카스 또는 하이트를 손님에게 들이대느냐에 달렸다. 아무래도 일반음식점이나 주점, 유흥주점에선 구매단가가 낮은 맥주를 채택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술집 주인들이 ○○밖에 없다며 손님에게 들이댄다. 그러면 개인의 브랜드 선호도조차 상관없이 같이 온 동료들의 분위기를 고려해 그냥 먹어줘야 한다. 이런 착한 손님 덕분에 맥주회사의 밀어내기 전략은 먹혀왔다. 술집 주인으로서도 한가지 제품만 관리해서 좋고 경제적으로도 주류 구입가격이 낮아 이익이 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카스(오비맥주)가 현재로선 더 잘 나가는 것일 뿐이다.

맥주시장 진출의 높은 진입장벽과 주세는 양사의 독과점 구도를 유지하는 철옹성을 마련해줬다. 그동안 맥주생산 면허를 따려면 2775㎘(전발효조 및 후발효조(저장조) 합계)의 시설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소업체의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설기준이 150㎘이상으로 대폭 낮춰진 2011년에야 78년 만에 제3의 맥주 면허업체(세븐브로이)가 생긴 것만 봐도 그동안의 규제가 얼마나 반(反)소비자적인지 알 수 있다. 세븐브로이는 라거보다 20% 맛이 진한(알코올 도수가 높은) 에일 맥주를 내놓고 있으나 아직 시장 점유율은 미미하다.

맥주에는 양주와 마찬가지로 제품 가격의 72%에 해당하는 단일 주세율이 적용된다. 따라서 생산물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생산단가가 높은 중소 또는 신생 맥주회사는 실제로는 대형 맥주회사의 두 배에 달하는 세금을 부담하는 셈이 된다. 현재 주세 체계는 맥주, 소주, 위스키가 72%로 똑같고 탁주가 5%, 약주와 과실주가 30%로 운영되고 있다.

품질 측면에서 국산 맥주가 맛이 없는 첫째 이유는 맥아가 적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맥주내 알코올을 만드는데 맥아를 100% 써야 한다. 일본은 66.7% 이상이어야 한다. 반면 한국은 10%만 넘으면 된다. 맥아란 겉보리를 따스한 온도에 싹튀운 단맛나는 식재료다. 한마디로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과 같다. 여기에 효모를 끼얹으면 발효되면서 맥주맛을 내는 알코올이 분비된다.
국산맥주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국내 업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맥아는 조금만 넣고 옥수수 쌀 등의 부원료를 많이 써 맥주 고유의 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옥수수나 쌀을 써서 발효시키면 뭐가 되는가. 바로 희석식 소주나 청주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주에 맥아를 적게 넣은 것을 일컬어 맥주 조금에 ‘소주 주정’을 왕창 붓는 것과 다름없다고 맥주 마니아들은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산맥주 업체들은 “맥아가 너무 많으면 맛이 씁쓸해져 달고 부드러운 맛을 즐기는 한국 소비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한국인의 기호에 맞게 맥주를 제조하고 있을 뿐이지 절대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 맥아나 호프 등을 적게 넣는 것은 아니라고 억지를 쓴다. 국산 맥주의 맥아함량은 60~70% 수준으로 독일맥주나 네덜란드(하이네켄)의 100%보다는 낮지만 결코 낮지 않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맥아함량이 구체적으로 얼마되는지 공개된 바 없다. 국산맥주 회사들이 억울하다면 소비자단체를 통해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 최근 국산 프리미엄맥주들이 올몰트(맥아 100%)를 내세우며 허둥지둥 광고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국내 맥주회사들은 그러면서 외국 맥주 전문가를 초청해 국내 기자들과 인터뷰를 시키고 “국산맥주가 한국인의 음식문화에 걸맞게 발전해오다보니 청량감과 알싸함이 강조된 것일 뿐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도를 유통시킨다.
또는 기자나 독자를 대상으로 시음회 또는 블라인드테스트를 벌이고 국산 맥주가 외국맥주에 뒤지지 않는다는 식의 평가가 보도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식품안전운동 블로그인 ‘푸드베이브’를 운영하는 미국의 주부 블로거인 바니 하리는 버드와이저와 밀러의 제품 성분 공개를 요청했다. 4만4000명의 서명을 받아 맥주회사를 압박한 결과다. 국내사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하이트와 버드와이저의 맥아 함량은 70~80%, 카스와 밀러·아사히의 맥아 함량은 60~70% 수준이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는 버드와이저와 버드라이트가 맥아, 물, 쌀, 이스트, 홉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밀러쿠어스도 밀러라이트와 쿠어스라이트 등 6개 제품의 성분이 맥아, 물, 옥수수, 이스트, 홉이라고 밝혔다. 쌀이나 옥수수로 만든 주정이 함유됐으며 물로 희석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둘째 낮은 생산 원가에 맞추기 위해 저질 호프를 원료로 쓴다. 맥주의 씁쓸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을 내는 호프는 국산이거나 외제라도 품질이 한참 낮은 것을 쓴다. 한국인은 쓴맛을 싫어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맥주를 선호하니까 호프를 일부러 적게 넣었다는 게 맥주회사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다가 최근엔 프리미엄 국산맥주에 독일, 체코 등에서 수입한 호프를 넣어 향미를 높였다고 광고하고 있다.

맥주 특유의 향과 쓴맛을 결정하는 것은 호프다. 독일·일본 맥주는 주로 유럽산 호프를 쓴다. 반면 국산 맥주는 미국산 호프를 쓴다. 호프의 종류는 수백가지이지만 대체로 유럽산 호프는 더 비싸고 강한 향을 내는 반면 미국산 호프는 저렴하고 부드러우며 톡쏘는 맛을 낸다. 호프는 처음에는 쓰지만 자꾸 입에 머무르면 맥주 특유의 뒷맛(단맛)을 낸다. 국산맥주는 유럽맥주에 비해 호프 첨가량이 훨씬 적으며 쓴맛이 거의 없다. 미국 맥주는 호프를 적게 쓰거나 아예 넣지 않기도 한다. 이를 두고 독인인들은 미국식 맥주를 ‘단물’이라고 비꼰다. 국산맥주도 미국식 맥주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호프 첨가량도 적고, 맛이 쓰지 않다.

국산맥주는 또 인위적으로 탄산을 투입한다. 맥주가 자연 발효돼 생긴 거품은 입자가 작고 오래 남는 반면 탄산 거품을 투입한 맥주는 입자가 크고 금방 꺼진다. 자연거품이 탄산 거품보다 입에서 더 내추럴하고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은 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공감하는 바다. 맥주의 이른 바 ‘엔젤링’은 탄산 거품에선 나오기 힘든 표식이다.

우리나라 맥주가 천편일률적으로 라거(lager)인 것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지 않은 행태다. 맥주는 크게 라거, 에일, 비터 등 3종류로 나뉜다. 국내 시장에서는 하면에서 천천히 저온 발효한 라거가 중심이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다. 유럽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쓴맛이 강한 상면에서 며칠만에 상온(常溫) 발효 에일(ale)의 소비량이 많다.
라거가 청주라면 에일은 막걸리라고 하면 비유가 비슷할지 모르겠다. 비터(bitter)는 보리 싹을 검게 볶아 담근 흑맥주다. 국내 업체는 한두종의 에일이나 비터 맥주를 내놓고 있지만 비(非)라거계 맥주의 소비는 미미하다.
 
사람에겐 ‘절대미각’이란 게 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괜찮은 수준의 맛이 있다. 이게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춰야 개인별로 다른 미묘한 취향의 차이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맥주회사는 정신 차리고 절대미각에 최대한 부합하는 맥주를 출고해야 수입맥주에 밀리지 않고 애주가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용어설명

맥주(beer)
대맥(大麥·겉보리)에 물을 붓고 발아시켜 갈은 후 맥아즙을 만들어 발효시킨 술이다. 맥아즙은 대맥 고유의 디아스타제 효소에 의해 자가분해돼 나오는 당액(糖液)이다. 여기에 호프를 넣어 씁쓸한 맛이 나도록 하고 효모를 첨가해 발효시킨다.

호프(hop)
뽕나무과에 속하는 유럽원산의 다년성 만성초본(Humulus lupulus)의 암꽃을 음건한 것으로 건위(健胃), 정장(整腸), 소화촉진, 스트레스완화 효과가 있는 생약이다. 과거에는 부패를 막기 위해 썼으나 지금은 맥주 특유의 쓴맛과 향기를 내기 위해 투입한다.
참고로 호프(hop)를 호프보리라고 하거나 퇴근길에 들러 생맥주 한잔 하는 호프(hof, 선술집)와 혼동하는 이가 있는데 다르다. 맥주보리는 겉보리 또는 대맥(大麥)이라 불리며, 밀은 소백(小麥)이며, 쌀보리는 대맥과 가깝되 겉피와 종실이 대맥보다 쉽게 분리되고 주로 식용 또는 소주 주정 원료로 쓰인다. 쌀보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품종으로 추위에 약해 남부지방에서만 재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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