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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네이티브의 정신건강 지키는 법
  •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등록 2015-04-29 09:47:47
  • 수정 2015-05-07 1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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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주 하루 스마트폰 프리데이 선언, 멍때리기로 온라인 노예서 벗어나야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이메일 도착 알림음, 휴대전화 벨소리 등이 끊임 없이 일상을 파고든다. 이런 소리들이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다. 아침에 눈뜨면 확인하는 메시지 창,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 앱. 화면이 뿌옇게 보이면서 눈이 침침해진다. 손가락도 점점 저린다. 

벌써 새벽 두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게 스마트폰은 또 다른 자아, 곧 자기자신이다. 온라인상에 내가 따로 있다. 실제의 나와 거의 관련 없는 가치관과 성격을 가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의 내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는 30대 초반 여교사입니다. 평소에는 수줍은 성격이지만 온라인에서는 LTE급 사랑을 추구하죠. 그곳에서 만난 ‘제트’와는 아무 때나 우리가 원할 때 만나서 사랑을 나누죠. 우리는 쏘쿨(so cool)해요. 잠자리에서도 그 사람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해도 되는 관계이죠. 성에 대해서도 굉장히 개방적이죠. 헤어질 때도 아쉬운 거 없어요.”

그들의 관계는 늘 어디서나 접촉이 가능하다는 점, 어떤 이야기나 행동도 서로 포용한다는 점, 서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우리가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사랑’의 판타지를 충족해준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지속하면서 양자 관계의 깊이와 진정성이 실제 친밀감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허무해진 그녀가 나를 찾아왔었다. 스마트폰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건강 조건을 꼽으라면 ‘자아정체성’이다. 온라인상에서나 현실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냐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그동안 어떤 스펙을 쌓아왔냐는 것 말고. 

학교를 도대체 가지 않으려하는 남자 고교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교를 왜 가야하나요? 미래에도 과연 학교가 필요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스마트폰에 들어있는데요. 손가락만 움직이면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즉각 연결되는 세상이 여기 있어요. 학교에서 쓸 데 없는 것 배울 시간에 저는 스마트폰에게 배운다는데 뭐가 문제냐고요?”

당신의 자녀라면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과연 이 주장이 맞는지 어른들은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소리, 학교는 당연히 가야지. 학교에서 공부만 하나, 친구들도 사귀고. 사회규범도 배우고.” 진료실에서 이런 진부한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 스마트폰 잘 쓰면 훌륭한 도구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여러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탐색하는 것은 긍정적인 교육 효과이지만, 앱이 정해준 포맷과 답변에만 국한돼 사고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깊이 사고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도 모르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서 단지 스마트폰에만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본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5가지 습관

1. 일주일에 한번, ‘스마트폰 프리 데이’를 정하라

나를 비롯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매일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로 습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은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습관들을 양산해냈다. 운전하기 전에는 로드맵 앱을 켜게 되고, 필요한 물건도 클릭 몇 번으로 집에서 받아볼 수있다. 무인도에 단 한 가지만 챙겨갈수 있다면, 모두 ‘스마트폰이요!’라고 답할 정도로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두고 의존성과 자립성 사이를 오가고 있는 세상에서 정신과, 안과, 정형외과가 성행할 것이라고 한다. 불면증, 안구건조증,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기니 아예 스마트폰을 없애라고 할 수도 없다.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습관을 적절히 조절하는 게 스마트폰의 부작용은 줄이는 길이다.
스마트폰을 지금처럼 사용하되, 차라리 1주일에 하루라도 ‘스마트폰 프리 데이’를 두라고 권한다. 방법은 무척 쉽다. 그냥 집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오거나, 주말에 꺼두거나 서랍 안에 감춰두느는 것이다. 대다수가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한다.

2. 때로는 ‘멍때리기’ 고수가 되라

필자는 대학생 시절, 강의가 없으면 학교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다.  카페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고, 동아리 활동으로 ‘으샤으샤’ 다같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대학가에서 보기 어렵다. 1인용 탁자에 앉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니 우리의 두뇌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숙면 다음으로 두뇌에 휴식을 줄 수 있는 소위 ‘멍때리기’가 스마트폰을 서치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순간들이 사라졌다. 아니,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게 됐다. 쉴새 없이 카톡으로 친구와 연결되거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보면서 자기존재감을 확인해야 한다. 
카톡을 하면서 동시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운전 중에도 이런 멀티태스킹이 거뜬해졌다. 멀티태스킹이 두뇌가 진화한 증거로 보이지만, 사실은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모두 활성화됨에 따라 사고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뇌는 쉽게 피로에 빠진다.
마크 바우어라인이 디지털세대가 ‘가장 멍청한’ 세대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세상을 향한 시야가 더 넓어진 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 교류하길 기피하고 고립된 공간에 몸을 움츠리고 점점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세대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나가서 고르고 만져볼 생각을 않는다. 지도앱을 켜지 않으면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수로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헤매는 경험을 해야 그 길을 익힐 수 있는데, 그런 실수를 용납하기 싫어한다. 헤매는 시간이 아깝고 귀찮은 것인데 과연 그럴까.   

3. 귀찮아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 있음을 알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카톡을 실컷하다가 더 이상 대화하기 싫으면 그냥 ‘나가기’를 눌러버린다.  연인끼리 헤어질 때에도 문자로 통보한다고 하니 얼마나 하기 싫은 일들을 귀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친구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으려고 해요. 한참 구경하고 나면 이 친구는 뭐가 이렇게 잘났고, 나는 왜 이렇게 못살까하며 스트레스를 받다 잠들거든요. 다들 잘났어요. 정말!”이라고 욕하는 이도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전략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생일 축하’메세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달기 바쁘다. 실시간으로 사진도 올리면서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 살아가고 싶은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간다. 동성애 친구를 두고,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성숙한 인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앱이 싫증나면 삭제해버리듯이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게 해버린다.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쿨한척 하는 것이 대세다. 애인사이에도 애착이나 희생은 지극히 감정낭비이다.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는 학생들이 정신과에 의뢰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정상이다. 다만 반사회성이 높고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애성 인격성향이 많다.

4. 온라인세상에서 지켜야 할 법과 윤리가 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방대한 정보의 홍수를 만난 적이 있을까. 우리는 처음 맞는 환경이지만 당황하지 말고 절제된 태도를 지켜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리포트를 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글인양 인용하는 것, 페이스북 상대에 대한 안좋은 정보를 올리는 것, 타인이 만든 노래가사를 원저작자를 밝히지 않고 인터넷에 퍼뜨리는 것, 저작권 없이 영화나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것, 채팅방에서 집단 따돌림을 하고 폭언하는 행위, 댓글로 인신공격이나 스토킹하는 것 등은 모두 범법행위이다.  
앱에 대한 의존성을 떨쳐버릴 때 만나는 자유를 받아들여 보자. 낯선 곳을 찾아가는데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화내봐야 소용 없다. 당황스러워하지 말고 묘하게 차오르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보자.
여행지가 블로그와 다르다고 울음을 터뜨렸던 여대생을 기억한다. 그녀는 여행지 블로그 검색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는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도 꺼둘 필요도 있다. 여행이나 인생이 계획한대로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5. 온라인이나 현실에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예의를 잊지 말라

온라인은 늘 연결돼 있지만,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이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사람들에게 외로움과 소외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에릭슨이 인간발달 과제에서 말했듯이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이루는데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스마트폰을 마음대로 다루듯 인간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은 서로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아픔을 겪으면서 관계가 지속돼간다. 약속도 갑자기 문자메시지로 취소하면 안된다.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약속을 못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별이나 절교 선언을 문자메시지로 통보받고 마음의 상처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말한다. “그 사람에게 그동안 나는 뭐였을까?” 아무리 직접 만나기 껄끄러웠다고 하더라도 나와의 관계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내버릴 수 있냐는 분노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같이 사는 가족들도 식탁에서 마주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 할말들을 대신한다. 각자 너무나 바쁜 나머지 못다한 대화를 온라인에서라도 대신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서로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고 상대의 감정표현에 공감해주는 예의는 온라인이나 현실에서 서로를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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