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쉬게 만들어 잡념 없애고 스트레스 해소 … 우울증·강박 치료는 ‘전문가’ 함께해야
김선현 차의과대 미술치료대학원 교수가 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SNS에 ‘색칠공부하면서 힐링’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블로거 중엔 컬러링에 재미를 들려 좀더 풍부한 색감을 위해 전문가용 색연필을 구비하는 사람도 적잖다. 고된 일상생활 속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한 방법으로 ‘색칠공부’를 선택하는 사람이 하나둘 보이는 추세다.
인스타그램, 지인들의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예쁘게 색칠된 일러스트 사진을 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집 교사 허 모씨(30·여)는 “우연히 블로그에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컬러링북을 구입하는 사람을 보게 됐다”며 “평소 직장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색칠놀이나 그림을 그리기를 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색칠공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 모씨(25)도 “최근 취업준비에 대한 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넘어 약간의 우울 증세까지 온 것 같다”며 “일러스트에 색을 칠하다보면 테두리를 넘지 않고 칠하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게 돼 치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색칠할 때 잡념이 없이지는 것은 ‘뇌’까지 쉬게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려면 뇌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게 관건이다. 뇌는 텍스트를 보는 동안 아무리 편안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계속 활동하게 된다. 인터넷, TV, 스마트폰 등은 뇌를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다양한 색을 칠해 나가는데 집중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뇌를 쉬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색’은 기분을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괴테는 “사람들은 대체로 색에서 기쁨을 느낀다”며 “눈은 빛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색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흐린 날 태양이 한 부분을 비춰 색이 나타나도록 만들었을 때 느꼈던 상쾌한 기분을 기억해보라”며 “다채로운 색의 보석들이 치유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괴테보다 약 20년 정도 늦게 태어난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마음이 뛴다”고 노래했다.
정신없이 복잡한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성인들을 힐링에 목마르다.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고픈 것이다. 이런 마음을 읽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컬러링북은 저마다 색칠을 통한 ‘아트테라피, 심신을 치유한다’는 내용을 앞세운다. 하지만 혼자서 색칠하며 잡생각을 잊는 컬러링북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수는 있지만 정신건강적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 치료는 ‘전문가’와 함께 했을 때 치료효과가 커진다. 혼자 색칠공부를 하면 기존의 증상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아트테라피(임상미술치료)는 미술·의학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치료법’이다. 이는 미술활동으로 환자의 심신 상태를 평가(진단)하며, 질병 치료나 증상 호전을 도모한다.
그림을 통한 상담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미술치료의 개념을 확장, 미술치료의 특징을 의학에 적용해 심리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상태까지 호전시켜준다.
김선현 차의과대 미술치료대학원 교수는 “아트테라피는 엄밀히 말하면 우울증·ADHD·강박·조울증 등으로 치료받아야하는 사람이 미술활동 등을 통해 치료효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도식화에 색을 칠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엔 적합할지 몰라도 전문가, 치료프로그램(계획), 상황에 맞는 컬러 등을 선택할 수 없다면 아트테라피라고 보기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아트테라피 등 미술치료를 무조건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치료법이라고 여겨서는 안 되고, 현대의료와 대체치료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야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엔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색칠공부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정서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엄마들은 ‘힐링’이 된다고 해서다. 김선현 교수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교감하는 것 자체는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색칠놀이는 오히려 아이의 창의력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은 그림을 직접 그리고, 관찰하며, 이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물론 색칠놀이를 하다보면 풍부한 색감을 자주 보게 되고, 집중력이 좋아지는 등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긍정적이다.
김 교수는 “어린이에게 미술은 자신이 생각·고민한 것을 언어처럼 표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색칠공부에만 집중하면 어떤 대상을 떠올렸을 때 컬러링북에서 봤던 일러스트만 생각하게 돼 오히려 창의력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잘한다는 말보단 색칠하기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십상”이라며 “예컨대 도식화의 아웃라인을 빠져나가면 안된다는 강박감을 아이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컬러링북의 인기폭발은 복잡한 것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며 “단순하게 색칠을 하는 게 전부여서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컬러링북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로는 적합하지만, 우울증 치료를 원한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