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등학생 10명 중 4명이 소아 여드름 환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여드름학회(회장 서대헌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여드름 유병률을 피부과 전문의의 검진에 의해 산출한 결과를 20일 밝혔다.
여드름은 흔히 ‘스쳐가는 사춘기의 꽃’으로 여겨지나 만성염증성 피부질환의 일종이다. 발병률이 높고, 누구나 한번쯤 겪어 쉽게 여기기 마련이다. ‘애들한테 무슨 여드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아여드름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은 전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36.2%가 여드름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만 9~10세 아동의 여드름 유병률은 70~85%에 달했다.
소아여드름은 여드름 발병의 주원인인 성호르몬 분비가 본격화되기 전인 12세 이하에서 발생하는 여드름을 말한다. 서구화된 식생활 생활습관, 성조숙, 빨라진 초경연령 등이 어린 나이에 여드름을 생성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성인여드름과 마찬가지로 비만·식습관 등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으며, 이들 습관을 교정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악화되거나 성인까지 만성화될 수 있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보통 이마·코 등 티존(T-zone)에 면포(좁쌀여드름), 염증성 병변(화농성) 등 초기여드름 형태를 띤다. 성인이 될수록 턱·목으로 내려오는 경향을 보인다. 간혹 닭살, 비립종, 구순피부염, 물사마귀, 혈관피부종 등과 구분하기 어려워 전문의에게 정확히 진단받아야 한다.
서대헌 회장은 “여드름이 사춘기 학생에서만 발생한다는 통념과 달리 최근 전세계적으로 소아·성인 여드름 발병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여드름은 더이상 한 때의 증상이 아닌 일찍 발병해 오래 앓게 되는 만성 피부질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연령 특성에 맞는 적절한 치료법이 다르므로 피부과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학회는 2004년부터 10년간 전국 7개 종합병원 피부과를 방문한 여드름 환자 18만782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 여드름 환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10년 전에 비해 현재 약 60% 증가했다. 특히 만 18세 이하 미성년 여드름 환자 10명 중 1명(11.5%)은 아동 환자로 나타났다.
소아 여드름의 경우 최근 4년간 매년 13% 이상씩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10년부터 4년간 전국 14개 종합병원 피부과를 방문한 소아 여드름 환자 2557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 환자의 78%가 초등학교 4~6학년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여드름 환자의 발병 나이는 평균 11.1세다.
서대헌 교수팀은 갈수록 증가하는 어린이 여드름 환자에 대해 더 조사하기 위해 올해 5월 9일~6월 27일 서울 소재 초등학교를 방문, 전학년을 대상으로 현장 검진을 실시했다. 조사에 참여한 1~6학년 학생 693명 중 36.2%가 소아여드름 환자로 확인됐다.
학년별 여드름 발병률은 △1학년 20.2% △2학년의 22.5% △3학년의 27% △4학년의 39.7% △5학년의 48.9% △6학년의 54.1%으로 4학년부터 여드름 발병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5~6학년 학생은 2명 중 1명이 여드름 환자일 정도로 발병률이 높았다.
박미연 대한여드름학회 대외협력 홍보이사(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교수)는 “여드름 발병연령이 점차 어려지는 추세로, 10세~11세부터는 적극적인 여드름 관리를 고려해야 한다”며 “소아여드름 환자는 대부분 전신질환이 없지만 7세 미만의 너무 어린 나이에 발병했거나, 성조숙증 등 다른 증상이 동반되면 내분비계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의 피부는 성인의 피부보다 연약해 여드름이 염증성 병변으로 악화되면 흉터, 색소침착 등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흉터는 평생 지속될 우려가 있어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막상 병원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여드름 발병 후 병원을 찾는 소아 환자는 전체 10% 미만이었다. 진료 지연기간도 10개월 이상으로 피부에 후유증이 남을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보통 여드름이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굳이 치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학회가 2012~2013년까지 2년간 전국 4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신규 방문한 여드름 환자 1297명을 분석한 결과, 발병 후 평균 3년 4개월이 지난 뒤에야 병원을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드름 진료 지연 기간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길었다. 성인은 여드름 발병 평균 4년 후, 중·고교생 등 청소년은 2.3년, 소아는 10개월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 소아의 경우 여자아이의 병원 방문 시기는 남자아이보다 2배 이상 늦었다.
이지범 대한여드름학회 총무이사(전남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성인 환자는 여드름이 나면 인터넷으로 화장품, 민간요법 등의 자가치료에 의존하다 악화돼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어린이는 부모가 질환을 인지하지 못해 방치하다 악화된 후 병원을 찾는 케이스가 흔하다”고 말했다. 이어 “좁쌀여드름(면포)과 붉고 딱딱한 화농성여드름이 10개 정도 발견되면 만성적인 염증성 병변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의 상태에 관심을 갖고 질환이 의심되면 속히 피부과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중요하다.
이미우 대한여드름학회 학술이사(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는 “소아여드름 환자는 나이가 어려 치료 순응도가 성인에 비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성장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약물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여드름이 났을 때 약국 등에서 시판되는 일반의약품을 무턱대고 쓰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 여드름치료제에 많이 활용되는 과산화벤조밀은 소아 사용에 대한 안전성이 확립되지 않았다. 살리신산(대개 2%) 역시 어린이에게 사용했을 때 명확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항생제 단독 성분을 장기간 사용하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유발될 우려가 높다.
이미우 학술이사는 “다른 연령대 환자보다 유병기간이 긴 편으로 어릴 때 난 여드름이 청소년기로 이어지는 경우 많아 장기적 치료 플랜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드름을 예방하려면 생활습관부터 개선해야 한다. 우선 지나친 세안은 피부보호막을 파괴하므로 하루에 2회 약산성세안제로 씻고, 피부보습제를 챙긴다. 알칼리성 비누를 자주 사용하면 정상 피부산성도(5.5pH)가 떨어져 피부장벽기능이 깨지기 마련이다.
깨진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표피에 모낭이 막히는 과각화현상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여드름이 악화된다. 피부장벽 기능을 잘 유지하려면 보습으로 피부수분도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막연히 ‘여드름에는 화장품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음식관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우 학술이사는 “과거엔 ‘음식과 여드름의 상관성이 없다’고 여겨졌으나 2000년대 이후 대부분 연구에선 성장기에 유제품, 고칼로리 음식, 고탄수화물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여드름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유는 하루에 2팩 정도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햄버거, 피자, 라면 등 혈당을 급격히 높이는 음식은 체내서 인슐린과 함께 안드로겐이 분비된다. 안드로겐은 표피 및 피지를 과증식시켜 얼굴 기름기를 늘리고 모공을 막아 여드름을 유발한다. 과일, 채소, 곡물 등으로 구성된 식단이 좋다.
수면 부족은 부정적인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므로 하루 7시간 이상 푹 자야 한다.
서대헌 회장은 “학회는 늘어가는 여드름 환자에 비해 잘못된 온라인 의료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드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올해로 두 번째 ‘여드름 신호등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캠페인의 하나로 소아 여드름 환자와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쉽고 효과적으로 여드름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5가지 수칙’을 발표했으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여드름학회 ‘소아 여드름 예방 및 관리를 위한 5수칙’
-지나친 세안, 피부보호막을 파괴해 1일 2회 약산성세안제로 세안 후 피부보습제를 바른다
-과도한 유제품 섭취는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한다.
-고지방·고탄수화물식은 혈당을 급격히 높여 여드름을 유발하므로 과일·채소·곡물을 활용한 식단을 구성한다.
-수면 부족은 부정적인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므로 하루 7시간 이상 잔다.
-잘못된 치료는 여드름을 악화시키므로 정확한 병원 진료로 여드름을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