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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 위해 ‘신분증 확인제’ 도입 … 정부 정책홍보 소홀에 병원만 책임 가중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7-08 07:17:54
  • 수정 2014-07-09 17: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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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진 환자들 신분증 지참않고 병원 찾았다 항의, 병원 행정직 고충 … 의료계 “부당한 떠넘기기”

의료계는 정부의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이 부당한 업무 떠넘기기라며 비판했다.

“이 병원만 1년째 다니고 있는데 이제 와서 신분증증이 없으면 진료받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4일 서울 응암동 소재 C정형외과의 접수 창구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이달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에 따라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제시해달라고 말한 직원에게 환자가 버럭 화를 낸 것이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컴퓨터로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한 뒤에야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 병원 행정직원 김모 씨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어느 정도 불편은 예상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병원 직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초진환자는 그나마 괜찮지만 재진환자들은 왜 갑자기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지 항의할 때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개인정보 유출을 염려해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주도로 지난 1일부터 시행되는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장기간 체납한 고소득자 등 1494명은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진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하고, 모든 의료기관은 진료를 접수할 때 급여제한 여부를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의료기관은 또 급여제한에 해당되는 환자에게 진료비 전액 본인부담 대상자임을 고지해야 한다. 만약 무자격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진료한 뒤 요양급여보험을 청구하면 급여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는 건강보험료를 체납해도 본인부담금만을 내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며, 건강보험으로 지급된 진료비는 건보공단이 사후에 환수했다.

급여제한 대상자는 연소득 1억원 이상인 고소득자나 총 재산 20억원 이상의 재산가 중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이다. 내달 1일부터는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한 외국인, 국외이주자 등 무자격자 6만1000명도 진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무자격자의 부당수급은 보험재정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지목돼왔다. 최근 조사결과 2011년부터 3년간 24만명의 무자격자가 220억원의 건강보험료를 부당수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료를 6차례 이상 미납해 급여가 제한된 가입자 164만명이 200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부당수급한 진료 비용은 3조8000억원에 달했다. 건보공단은 이 중 1조4581억원을 환수 고지했지만 실제 징수액은 340억원(2.3%)에 그쳤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으로 지급된 진료비를 환수하기가 어렵고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한 국민과 장기체납자간 형평성 문제가 있어 부정 수급자 확인 의무화제도를 도입했다”며 “이를 통해 일부 고소득 체납자가 건강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하면 보험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진료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번 정책으로 개원가는 몸살을 앓고 있다. 충남 천안에서 치과를 운영 중인 원장 이모 씨는 “1700명에 불과한 우선급여제한 대상자의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환자 한명 한명에게 신분증이 왜 필요한지 이유를 설명하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은 극히 비효율적인 행위”라며 “왜 국민들에게 정책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정형외과 관계자는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는 말에 고성을 내거나 욕을 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며 “신분증을 안가져왔다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 병원을 찾은 환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상당수 병원은 처음에는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하다가 환자들의 계속되는 불만에 단순한 주민등록번호 조회 방식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실제 진료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소득 체납자 1494명에게 문자 및 전화 등으로 개별 안내를 실시했다. 문제는 일반 국민에게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전반은 정부가 부정수급에 대한 책임을 일선 의료기관에 떠넘기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두 단체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최선의 진료에 필요한 의료기관들의 ‘손톱 밑 가시’를 빼주지는 못할 망정 대못을 박지는 말아야 한다”며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는 건보공단의 기본업무인데도 이를 의료기관에 미루는 것은 관할 부처인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업무 방기이자 의료기관에 부당한 행정업무를 전가시키려는 행정편의적, 월권주의적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료기관은 몸이 아픈 환자가 찾아왔을 때 최선을 다해 적기에 진료 및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일분 일초가 아까운 환자를 앞에 두고 자격이 안되면 무조건 진료거부를 하는 게 정부의 정책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또 “그동안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사진이 부착되지 않은 건강보험증,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환자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도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수진 자격을 확인해가며 환자가 진료받는데 지장이 없도록 노력해왔다”며 “의료기관이 자격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이 누수됐다는 듯이 여론을 호도하며 국민과 의료계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각과 개원의협의회회장단협의회, 20개 전문과별 의사회도 지난 2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체납자 자격조회를 의료기관에 떠넘기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내원 환자를 일일이 자격조회할 경우 일선 의료기관은 온갖 민원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의사와 환자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체납자에 대한 진료비 미지급 등의 위험부담을 의료기관이 지게 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급여제한 자격조회는 건강보험 부정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책임 전가라는 주장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고득영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보험료 징수가 제대로 이뤄지면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고 이는 공급자인 의료계에게 돌아간다”며 “부정수급은 의료계에도 득 될게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기관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신원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며 “진심을 담아 일선 의료기관의 협조를 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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