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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세계화에 해썹(HACCP) 인증은 든든한 디딤돌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4-05-30 11:55:58
  • 수정 2016-02-18 05: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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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평 우리술 잣생막걸리 업체 … 의약품보다 엄정한 품질관리로 2020년 1000억 달성 청사진

경기도 가평군 (주)우리술 생막걸리 해썹(HACCP) 인증 생산라인에서 막걸리가 PET병에 위생적으로 담기고 있다.

주류 안전관리업무가 지난해 7월부터 국세청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관되면서 주류업계에도 해썹(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인증 획득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주류업계는 국세청에 술 제조에 필요한 탱크, 병입기, 분배기 등 기초적인 시설장비만 신고하고 주세만 내면 주류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쓸 게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 불량식품 등 4대악 근절을 표방하면서 식품안전을 강조하자 정작 안전성이 가장 중시돼야 하는 주류 제조에도 식품과 같은 엄정한 안전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주류업계도 해썹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2017년부터 연매출 100억원 이상 되는 식품제조업소에서 모든 식품에 대해 해썹인증제도를 의무적용키로 하는 정책 일정을 잡아놨기 때문에 도약을 노리는 주류업체라면 지금부터 해썹인증에 대비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9일 올들어 처음 시행한 우수 주류 제조업체 현장견학 프로그램에는 50여명의 전국 주류업계 관계자가 참석해 해썹 인증 획득 절차와 노하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견학간 곳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의 (주)우리술(대표 박성기) 공장이다. 이 회사는 ‘가평잣생막걸리’,‘미쓰리탄산살균막걸리’, ‘대통주’, ‘조껍데기막걸리’ 등 막걸리 애주가라면 익히 이름을 들었을 법한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61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2020년 매출 1000억원 및 수출 100억원(1000만달러) 달성을 위해 막걸리 세계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업체다. 올 매출목표는 100억원이다. 

흔히 술도가 하면 바닥에는 흘린 술이 흥건하고, 발효열로 술 냄새가 진동하고 무더울 것이라 연상하지만 가평 우리술 공장 현장은 의약품·식품보다 더 높은 단계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해썹 기준이 적용돼 이런 통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국(술 빚는 입자형 누룩곰팡이)의 제조, 고두밥 짓는 과정(증자), 발효, 제성(술 원액과 부재료의 혼합), 여과, 병입, 포장 과정이 상당 부분 자동화돼 있었다.

설비가 들어설 공간이 협소하고 고비용이 드는 문제 때문에 발효조에서의 교반 등은 여전히 사람 손에 이뤄지고 있지만 병마개가 음압으로 빨아올라가 알코올로 세척과정을 던져 툭툭 던지듯 병 상부에 얹혀지고, 중량 미달의 제품이 선별과정에서 걸러지고, 로봇팔이 자동으로 포장해 팔레트에 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막걸리는 페트병, 유리병, 알루미늄캔 등 3가지 용기로 나뉘어 포장되는데 유리병 제품은 각별한 세정 및 이물질 혼입방지 과정을 거친다.

1994년에 준공된 이곳 제1공장은 상대적으로 노후해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전 직원이 낡은 바닥과 천정을 갈아내고 녹색 유성 페인트를 바르거나 인증된 재질의 마감재로 교체하는 등 합심노력했다. 녹슬 우려가 있는 철 재질의 설비는 거의 모두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꿨다. 이 회사는 불과 1년만에 기준서 작성, 시설개보수 공사, 직원교육, 사전모니터링 등을 거쳐 지난해 연말 막걸리 업계로는 처음으로 해썹 인증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국순당과 서울장수막걸리가 해썹 인증을 획득했다.

권용국 우리술 생산관리본부장은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공장 바닥의 패임이나 물고임, 장비의 녹슬음, 곰팡이 등 미생물 증식 우려가 있는 공간 등을 개선하지 않기 위해 전직원이 쓸고 닦고 말리고 칠하는 작업에 자발적으로 나섰다”며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힘으로 해썹 인증을 받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철야를 마다않고, 34명의 생산라인 직원이 해썹 이론을 공부하고 야간작업에 나서준 것에 감사함을 표시했다.

해썹 인증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박성기 사장(사단법인 막걸리협회 초대회장)의 용단도 돋보인다. 지난해 매출에 비해 적잖은 약 10억원(시설개수비 교육비 컨설팅비 등)을 해썹에 썼다. 박 사장은 “과거에는 같은 양조장이라도 계절마다, 술빚는 사람의 기술에 따라 맛이 시거나 쓴 등 맛이 들쑥날쑥했다”며 “세계인의 눈높이에서 높은 위생과 균일한 품질을 확보해야 비로소 세계화를 이룰 수 있고 그런 노력의 하나가 해썹 인증 추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 2공장의 경우 2010년 설계 단계부터 해썹 인증 기준에 적합하도록 신경썼다.

해썹은 우주공간에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우주비행사가 식중독 등에 걸리지 않도록 모든 우주인 식품을 완전무결하게 위생적으로 관리하는데서 시작됐다. 심지어 범죄자들이 식품에 악의적으로 유독물질을 넣는 것까지 방지할 수 있도록 ‘테러 예방’의 차원에서까지 식품을 안전하게 간수하는 게 해썹의 취지다.

주류의 경우 생물학적 위험(식중독균), 화학적 위험(농약, 첨가물, 중금속), 물리적 위험(병조각, 머리카락, 돌가루, 벌레, 금속파편 등 이물)이 존재한다. 종사자의 위생상태가 나쁘거나 재료의 살균·여과 상태가 나쁠 경우 생물학적 위험이 높아지기 쉽다. 재료의 오염되지 않은 순도도 중요하지만 비정상적 발효 과정에서 비알코올성 불순물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제어해야 한다. 이광재 식품안전관리인증원 연구원은 “이물질 혼입은 주류에서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위해요소”라며 “유리병 세척 및 이물질 필터링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술 공장에서는 생주 원액이 나오는 통로와 병입되기 직전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이물질을 걸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생막걸리를 냉장되지 않은 상온 상태에서 운반하는 것도 품질저하 및 생물학적 위해요인이 있다. 가평잣생막걸리의 경우 냉장보관시 30일의 유효기간이 적용된다. 입국을 만들 때 스텐인리스스틸 재질 대신 옛날 방식으로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화학적·생물학적 위해요소가 잠재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평공장은 입국제조장도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꿨다.

또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적절한 배기가 필요하다. 근로자 건강과 균질한 막걸리 품질을 위해서다. 발효열은 알코올 도수의 급격한 변화나 막걸리 품질저하(음주후 숙취유발)를 초래하므로 균일한 발효조 온도유지가 필요하다.

막걸리 발효조는 혐기 상태라 대부분 호기성세균인 식중독균이 발붙이기 힘들다. 하지만 입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클로스트리디움균 같은 혐기성세균이나 리스테리아균 같은 미호기성세균이 증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런 부분에도 신경써야 한다. 초파리는 술이나 식초를 빚을 때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주류업자들은 포기하지만 절대로 그냥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체를 옮기거나 품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 초파리를 철두철미하게 제거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해썹 인증팀을 사무실 직원으로만 형식적으로 꾸려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므로 생산라인의 실무자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이광재 연구원은 강조했다. 

롯데주류는 올해초 소주업체로는 처음으로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강릉공장이 해썹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청주 제품을 생산하는 군산공장, 마주앙·과실주를 담당하는 경산공장, 위스키를 만드는 부평공장의 인증도 올해 안에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연간 매출이 10억원도 안되는 영세 전통주 주류업체는 해썹 인증 확산 바람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 복분자 제조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연수당 지리산복분자주, 함평 레드마운틴, 고창 선운사복분자주 등이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보해 진로 롯데 국순당 등이 복분자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술 원액이나 납품해주는 업체로 전락하고 월 매출이 1억도 못되는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큰 비용을 들여 해썹 인증을 따는 것은 언감생심”이라고 토로했다.

박희옥 식약처 주류안전기획관리단장은 견학 현장에서 “한류의 세계화를 타고 막걸리 등 전통주도 이제 국내시장을 떠나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며 “변화에 맞서 긍정적·선제적으로 움직이면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제품신뢰도 향상 및 매출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독려했다.
해썹 인증을 받은 100개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썹 인증 후 단기순이익은 63%, 매출액은 64% 증가했다. 고객 클레임(불만) 발생건수는 74% 감소했다. 특히 단체급식이나 군납에서 유리한 이미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두드러진다고 박 단장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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