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국회, 의료계, 제약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2월 1일부로 재시행을 강행한 시장형실거래가제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시장형실거래가제가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는지 법무법인 율촌에 법률 검토를 의뢰한 결과 ‘거래상지위남용행위’와 ‘부당한 거래거절행위’에 해당해 위법 소지가 크다는 법률자문 내용을 5일 공개하고 제도 개선 요청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시장형실거래가제는 병원 등이 의약품을 싸게 사면 정부가 보험 재정으로 상한가와 구매가격 간 차액의 70%를 해당 기관에 돌려주는 제도로 2010년 도입된 후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조치로 일시 중단됐다가 이달부터 다시 시행됐다.

최근 한국제약협회(KPMA)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장형실거래가 제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유권해석을 의뢰한 데 이어 KRPIA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번 법률 검토는 대다수 의료기관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제약회사 또는 도매상에게 의약품을 대폭 인하된 가격으로 공급하도록 요구(이하 ‘저가 공급 요구’)하고 있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진행됐다.

검토 내용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할인 폭을 정한 뒤 해당 가격에 의약품 공급 △할인 폭을 정하기 위한 가견적 발행 △원내 처방 코드에 의약품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낮은 가격에 공급 등을 요구할 수 있어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제약회사 등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조건을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거래상지위남용행위 중 불이익제공행위에 해당한다고 KRPIA 측은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여러차례의 의결을 통해 의료기관이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 같은 저가 공급 요구는 제약회사의 가격 결정 권한을 배제 또는 제한하는 것으로 경쟁과 혁신을 통한 가격 인하 유도라는 시장형실거래가제의 취지에도 반한다는 설명이다.

또 제약사가 의료기관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의료기관이 해당 의약품의 원내 코드를 삭제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거래상지위남용행위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일부 의료기관이 이를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므로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부당한 가격 인하로 원외 의약품 구매자가 원내 환자보다 더 많은 약제비를 부담할 수 있어 소비자 간의 형평성에도 문제도 제기된다.

의약품의 효과와 안전성에 관계없이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는 의약품은 시장 퇴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환자가 우수한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KRPIA는 시장형실거래가제가 사용량-약가 연동제 등과 함께 제약산업의 규제를 가중시켜 공정경쟁 및 연구개발 투자 의지를 떨어뜨려 제약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불법리베이트 근절과 유통 투명화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제도 도입 목적도 2012년 일괄약가인하 및 리베이트 규제 강화 등으로 이미 달성해 의미를 상실했다는 입장이다.

KRPIA 관계자는 “환자·시민단체, 여야 국회, 제약·도매업계 등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이미 명분과 효과를 상실했기 때문에 재시행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홀로 인센티브 제공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설립한 협의체에서도 복지부는 제도 시행 결과에 대한 기초자료공개 요구에 미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법률적 검토를 통해 시장형실거래가제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복지부가 각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원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제약협회는 지난달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일부 대형병원 등 요양기관의 저가견적요구 등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유권해석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