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사는 의학적 사망, 식물인간은 호흡 등 필수기능 남아 있어 … 장기이식, 뇌사자만 가능
고 임수혁 선수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서울 잠실구장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올해는 삼성과 두산이 치열한 승부를 벌이면서 관중들의 함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양팀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잠실구장을 보고 있으니 그리운 한 선수가 생각난다. 그는 3년전 세상을 뜬 ‘마림포’ 고 임수혁 선수다.
임수혁 선수는 1994년 프로 데뷔 후 롯데자이언츠에서 포수로 활동했다. 강타자 마해영과 함께 쌍포로 활약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팀에 승리를 안겼다. 국가대표로도 활동하는 등 한국 야구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임 씨는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원인은 심한 부정맥으로 인한 발작이었다. 쓰러진 후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9년여를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다.
그는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2010년 2월 한림대 강동성심병원에서 42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동안 수많은 악플이 그의 가족들을 괴롭혔다는 점이다. 그 중에는 ‘어차피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왜 장기기증을 안하냐’ 등의 악질적인 댓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언론에는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 장기기증에 필요한 요건 등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뇌사와 식물인간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전 종영한 판타지 드라마에서는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 방영돼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뇌사(腦死)는 뇌가 치명적인 손상을 받아 활동이 모두 정지된 상태를 의미한다. 뇌사자는 사고기능을 포함한 모든 뇌기능이 정지됐기 때문에 주변 자극이나 환경에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다.
호흡 등 생명현상 유지와 의식의 중추인 뇌간(숨골)도 손상돼 호흡능력을 상실한다. 뇌간은 대뇌와 인체를 연결해 인간의 의식을 유지하고, 호흡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한다. 얼굴과 목 부위에서 수행하는 12가지 뇌신경 기능, 호흡, 혈압 등을 직접 조절한다. 이 때문에 뇌간이 손상된 뇌사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지 않고 누워 있는 모습은 의학적으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뇌사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나 생명유지장치를 신속히 부착하면 일정시간 동안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보통 7~14일 이내에 심장이 멎어 사망하게 된다. 뇌사자는 사망한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소생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진권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신경과 교수는 “간혹 방송이나 기사 등에서 뇌사상태에서 회복됐다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뇌사가 아닌 환자를 뇌사라고 잘못 판정한 것”이라며 “의학적으로 정의된 뇌사 기준에 일치하면서 다시 살아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뇌사를 일으키는 질환은 뇌출혈, 뇌경색, 뇌졸중, 간질중첩증, 허혈성 뇌병증, 뇌부종저산소성 뇌손상, 중추신경계 감염 등이다. 이밖에 뇌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모든 질환은 뇌사 상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식물인간도 뇌 손상이 심할 때 발생하지만 뇌사와 달리 모든 뇌기능이 정지된 것은 아니다. 대사기능은 남아 있기 때문에 호흡·소화·순환·혈압 등은 정상인 상태를 유지한다. 눈을 깜빡이거나 잠을 잤다가 깨거나 호흡을 하는 등 행위는 유지되며, 영양분 등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면 길게는 몇년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고차원적인 뇌기능은 소실됐기 때문에 의미있는 행동을 수행하거나 주변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는 못한다. 식물처럼 생존해 있지만 의식적인 움직임이나 반응은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식물인간’으로 불린다. 김 교수는 “식물인간 상태는 간혹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장치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뇌사와는 달리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뇌사는 말 그대로 의학적인 사망인 반면 식물인간은 엄연한 생존상태라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가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김 교수는 “외상성 뇌손상으로 의식을 잃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몇 년 후 정상으로 회복된 사례가 매우 드물게 존재한다”며 “그러나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지 1~2달이 지났다면 회복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물인간 상태는 회복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존재해 연명치료의 타당성 여부가 논란이 된다. 명백히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행위는 살인과 마찬가지라는 의견과,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에서 환자 가족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뇌사와 식물인간을 구별하는 또 하나의 차이는 장기이식의 가능 여부다. 장기이식수술은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장기만 사용해야 한다. 반면 식물인간은 엄연한 생존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장기기증이 불가능하다.
뇌사 판정은 한 사람의 죽음을 선언하는 일이기 때문에 절차와 기준이 까다롭다. 뇌사 판정검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3명 이상의 전문의(신경과 전문의 필수)를 포함, 총 6~10명으로 이뤄진 뇌사판정위원회 전원이 뇌사판정을 내려야 뇌사가 인정된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1조는 뇌사를 판정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 △원인질환이 확실할 것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 기질적인 뇌병변이 있을 것 △깊은 혼수상태로 자발호흡이 없고 인공호흡기로 호흡이 유지되고 있을 것 △마취제·수면제진정제·근육이완제·독극물 등 치료 가능한 약물중독이나 대사성 장애의 가능성이 없을 것 △간성혼수·요독성혼수·저혈당성뇌증 등 내분비성 장애의 가능성이 없을 것 △저체온상태(직장온도 32도 이하)가 아닐 것 △쇼크상태가 아닐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조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의료진은 동공의 확대·고정상태, 뇌간반사의 소실 여부, 자발운동·제뇌경직·제피질경직·경련 등의 발생 여부, 자발호흡 가능성 등을 확인한다. 김 교수는 “이같은 판정결과가 6시간 후 재확인했을 때 유지되고, 뇌파검사를 실시해 평탄 뇌파가 30분 이상 지속된다면 최종적으로 뇌사판정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