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한 해의 상반기를 마무리 짓는 달이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르며 방학을 맞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밀린 일을 마친다. 이처럼 상반기를 정리하는 가운데 정작 몸은 뻐근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기도 한다.
피곤에 지친 현대인들은 집에만 오면 침대와 소파를 찾는다. 하지만 소파가 허리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는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백수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8~12시간씩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거나, 업무를 보는 현대인의 대부분은 카우치 포테이토라고 불릴 만한 좌식생활(坐式生活, sedentary life)을 하고 있다. 좌식생활은 알게 모르게 현대인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
1시간의 좌식생활, 담배 2개비만큼 해롭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2002년부터 활동성이 떨어지는 현대인의 생활습관이 수명을 단축하고 여러 종류의 질환을 촉발한다고 주장해 왔다. WHO에 따르면,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약 60~85%의 사람들이 좌식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는 심혈관질환, 당뇨병, 비만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한다. 이를 ‘의자질환’(sitting disease)이라고도 부른다.
좌식생활과 당뇨병의 상관관계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최신 연구를 이를 더 확연히 드러낸다. 2012년 미국 미주리주립대(the University of Missouri)이 활동량과 혈당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피험자들에게 운동을 자제하게 하고 혈당을 측정한 결과 적정량의 운동을 할 때보다 평균 26%나 증가했다. 이 실험 결과는 오랜 시간 앉아 있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고혈당, 당뇨병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앉아 있으면 인슐린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 생겨 췌장에서 인슐린이 상당히 분비돼도 인슐린 수용체의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 혈당을 낮추지 못하게 된다. 당뇨병은 심장질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좌식생활은 그 단초가 된다.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응급의학과 전문의 크리스토퍼 카브렐(Christopher Karbhel) 씨는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혈액이 천천히 흐르게 되어 응고되기 쉬워진다”며 “폐에 혈전이 생기는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좌식생활을 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폐색전증에 걸릴 확률이 2배 이상이다. 특히 혈전 형성을 촉진하는 경구피임제(oral contraceptives)를 복용하고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지질 대사에도 문제가 생긴다. 앉아 있으면 지단백분해효소(lipoprotein lipase, LPL)라는 효소 생산이 저해된다. 이 효소는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저밀도 지단백 결합 콜레스테롤, low density lipoprotein cholesterol, 속칭 LDL)을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고밀도 지단백 결합 콜레스테롤, high density lipoprotein cholesterol, 속칭 HDL)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 효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 심장마비, 동맥경화 등의 심혈관 질환에 걸리기가 쉽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iversity of North Carolina)는 쥐를 7~8시간 동안 누워 있게 하자 LPL 활성도가 급강하했으며, 내내 일어서 있던 쥐의 LPL 활성도는 이보다 10배나 높았다고 발표했다. 누워 있으면 저밀도 지방단백질의 분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반대로 서 있으면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로 사용하는 반응이 활발히 일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생활은 하체에 혈액이 모이도록 한다. 중력 때문에 순환이 방해를 받게 되면 다리가 붓게 되는데, 밤에 침대에 눕게 되면 하체에 몰려 있던 혈액이 한꺼번에 위쪽으로 움직이면서 목에 있는 근육과 조직 쪽으로 이동한다.
목이 부어서 수면 시 호흡곤란을 겪을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수면무호흡증(sleep apnea)으로까지 발전한다. 앉은 상태는 몸에 굉장한 긴장을 유발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유지하면 등 아래쪽, 햄스트링(무릎 뒷부분의 힘줄, hamstring), 엉덩이근육이 뭉친 형태로 굳게 된다. 척추와 어깨에도 무리가 온다. 유연성이 떨어지고 자세가 어정쩡하게 굳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적 활동에도 여러 가지 피해가 따른다. 좌식생활로 촉발되는 수면무호흡증은 깊은 잠을 방해해 만성피로를 유발하고 낮에 집중을 어렵게 한다. 또 좌식생활은 뇌에서 장기기억과 공간지각력, 감정적인 행동조절 등을 관장하는 해마(hippocampus)를 퇴화시킨다.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면 뇌가 빨리 늙어 간다는 얘기다.
오랜 시간 앉아서 생활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미국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 미국 대통령자문 신체활동 및 스포츠위원회(President’s Council on Fitness and Sports)는 개별적인 보고서에서 좌식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불안(anxiety)과 우울(depression)로 고통받을 확률도 더 높다고 발표했다.
2012년 겨울 국제 당뇨병학술지(Diabetologia)는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들은 적은 사람들에 비해 당뇨병 발병 확률(112%), 심혈관질환 발병 확률(147%), 심혈관질환 사망 확률(90%), 전체 사망 확률(49%)이 전부 확연히 높다고 밝혔다. 영국 스포츠의학지(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는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이 1시간 늘어날수록 기대수명이 22분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흡연자들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 기대수명이 11분 줄어든다고 하니 앉아 있는 시간 1시간당 담배 2개비만큼 인체에 해로운 셈이다.
거창한 활동보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의자질환’극복
의자질환이 무섭긴 하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학생의 본분을 잊고 훌쩍 떠나버릴 수도 없는 법이다. 현대인들이 좌식생활 위주의 일상을 영위하면서 건강도 지키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꾸준한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매일 몇 분씩 운동을 하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는 일반의 지론과는 반대로 페닝턴 의생명과학 연구센터의 마크 해밀턴(Marc Hamilton) 교수는 “일주일에 5회, 45분씩 운동을 꾸준히 하더라도 일주일에 60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는 사무직(desk job) 종사자라면 여전히 좌식 생활의 피해에 그대로 노출된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운동(work-out)한다 해도, 복부에 식스팩이 새겨진 힘세고 근육질인 사람이라도 의자질환은 똑같이 피해를 준다”며 “운동(exercise)이 아니라 활동(activity)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exercise)이 조깅, 자전거, 웨이트트레이닝 등 땀이 나고 힘이 드는 물리적 활동을 말한다면 활동(activity)은 약간 더 가벼운 개념으로 걷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벼운 집안일 수준의 힘을 요한다. 이 연장선에서 ‘NEAT(니트)’를 추천할 수 있다. 비운동성 활동 열 생성(Non-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으로 풀이되는 니트는 별다른 운동 대신에 생활하는 과정에서 서 있기, 걷기, 스트레칭 등으로 활동량을 늘리고 혈액순환을 돕는 것이다. 직장 생활 내에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비싼 헬스장 회원권을 끊거나, 운동기구를 구입하지 않아도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활동량을 늘릴 수 있다니 희소식이다.
미국 운동위원회(American Council on Exercise)는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주기적인 쉬는 시간을 가져서, 한두 시간에 한 번씩은 산책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미국 운동위원회 대변인 파비오 코마나(Fabio Comana) 씨는 “하루에 5~6회 정도만 스트레칭을 하더라도 몸 상태는 확 달라진다”고 말한다.
직장 내에서도 작은 변화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회의실에 둘러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걸으며 안건을 논의하는 ‘스탠딩 회의(standing conference)’, 점심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산책 등은 활동량을 늘리면서 업무효율까지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옆 부서에 이메일이나 인터넷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직접 찾아가서 용건이나 파일을 전달하고, 앞자리 사람에게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리로 가서 말을 거는 ‘1985년형 생활방식’을 도입하면 건강과 원만한 사내 대인관계를 함께 챙길 수 있다.
의식적으로 자주 걷는 것도 좋다. 본능적으로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공간을 찾는 것은 현대인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편한 자리가 아니라 최대한 먼 자리에 차를 대면 걷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건물 내에서도 한두 층을 오르고 내릴 때에는 계단을 이용하고, 7~8층 위나 아래로 가야 할 때도 한두 층 계단으로 이동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 찬찬히 계단을 이용하는 횟수와 층 간격을 늘림으로써 운동량을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통편을 바꾼다. 자가용 대신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앉아서 가는 대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게 효과적인 니트가 될 수 있다. 도착지 한두 정거장쯤 전에 내려 걷는 것도 좋다. 직장이 비교적 가깝고 공해가 적은 경우에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아침, 저녁으로 상쾌하게 운동할 수 있다.
취미를 만들어야 한다. 스트레스도 풀고 하루를 활동적으로 정리할 수 있라.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든지, 텔레비전을 볼 때 스트레칭을 하면서 본다든지, 친구와 통화하면서 가볍게 걸어 다닌다든지 하는 방법은 기분도 좋게 한다. 여가시간이 있다면 영화, 텔레비전 시청 같은 수동적인 여가활동(passive entertainment) 대신 테니스, 볼링, 당구 같은 능동적인 여가활동(active entertainment)으로 바꾼다. 컴퓨터게임이나 비디오게임 대신 닌텐도 ‘위(Wii)’ 게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종류로 바꾸거나,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대신에 주변 공원으로 산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다가오는 한여름, 휴가에서부터 변화를 주는 것은 어떨까. 휴가철에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자가용, 버스, 기차에 앉아 장소만 이동하는 ‘수동 여행’은 그만두자.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내지 말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적극적으로 여행 과정에 개입하자.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 없이 약간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작은 습관들부터 고쳐 나간다면 좌식생활의 위험성에서 벗어나 생활의 활기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