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타인의 술버릇에 관대한 음주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해 봤을 때 배우자가 될 사람이 나쁜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막상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결혼 전에 배우자의 술버릇을 확인해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수현이 ‘결혼상대자, 이것만은 용서 못한다’라는 주제로 여성 3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상대의 바람기(113명, 34.4%)가 1위를 차지했고, 술버릇(94명, 28.3%)이 2위에 올랐다. 3위는 무능력(83명, 25%)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능력 없는 배우자보다 술버릇이 좋지 않은 배우자에게 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할 수 있는 5가지 술버릇 유형과 개선방법을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봤다.
잠드는 것은 술버릇이 아닌 알코올에 약한 것
술만 마시면 바로 잠들어버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빠지는 경우는 술버릇이 나쁜 게 아니라 술에 약한 것이다. 알코올이 잠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폭력적이거나 민망한 술버릇이 아니라고 넘어가기 쉽고 배우자가 될 사람도 안심하기 쉽지만 방심할 일은 못 된다. 길바닥에서 잠이 들 경우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겨울에는 동사할 위험도 있다. 허 원장은 “잠이 든다는 것은 술이 약하다는 의미로 술을 얼마나 마실 지 미리 양을 정해 그 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약속을 정해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필름이 자주 끊긴다면 알코올의존증 의심
필름이 끊기는 현상, 즉 ‘블랙아웃’은 알코올이 대뇌의 측두엽 해마 부분에 작용해 뇌의 정보입력 과정에 이상을 일으킬 때 발생한다. 해마는 기억의 일시적 저장고로 여러 번 반복 학습하면 해마의 역할로 대뇌에 장기 기억을 남긴다. 사람이 머리를 쓰지 않으면 해마가 퇴화해 인지기능장애가 빨리 온다. 술을 폭음해 취중 기억이 끊기는 블랙아웃은 해마의 기능이 마비된 것으로 이런 현상이 잦아지면 50대 이후 치매로 발전할 확률이 높아진다.
허 원장은 “만약 6개월 이내에 블랙아웃이 2회 이상 나타났다면 알코올의존증 초기를 의심해볼 수 있다”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알코올 전문병원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는 블랙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는 점이 문제다. 블랙아웃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치부하고 웃어넘겨주면 음주한 사람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다. 사고를 저질렀을 경우 책임을 추궁해 실수가 재발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술만 마시면 눈물바다, 제때 스트레스 해소해야
평소 성격이 억눌려 있고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감정을 표출시키는 경우가 많다. 술만 마시면 울거나, 어딘가에 끊임없이 전화를 걸거나, 주변 사람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게 이같은 유형이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만든 술자리에서 매번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술자리에서 외면하고 싶은 기피대상이 된다. 배우자가 이런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평소에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할 수 있도록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한다.
넘치는 애교를 주체하지 못한다면
술을 먹고 배우자 앞에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애교를 지나치게 많이 부리면 바람기로 오해받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평소에는 점잖은 남성, 얌전한 여성이 술만 마시면 스킨십이 많아지고 언행이 과감해지는 경우도 비슷하다. 평소 애정표현에 서툰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용기 내는 것이라면 사랑스럽게 봐줄 수 있지만, 배우자가 아닌 이성에게도 동일하게 행동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평소에는 얌전, 취하기만 하면 난폭해져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평소에는 점잖다가도 술만 먹으면 욕을 하고 폭력을 쓰는 유형은 과음이 장기적으로 이어져 알코올 성분이 뇌의 전두엽을 손상시켜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런 유형은 쉽게 흥분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음주 후 난폭한 행동이 반복된다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뇌의 기능을 상실해 발생하는 병적인 증상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뇌의 이상으로 성격이 변해버린 경우는 술을 끊은 후에도 변화된 성격이 그대로 남는다. 이럴 경우 변화된 성격이 굳어지면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난폭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단주가 필수적이고 혼자 힘으로 어려울 경우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허 원장은 “단순히 술버릇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행동이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알코올질환의 증상일 수도 있다”며 “반복되는 술버릇을 비난하거나 체념하기보다는 평생 함께 할 사람인만큼 단주나 절주를 유도하면서 믿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