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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소울푸드(soul food)
  •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등록 2013-04-09 13:46:17
  • 수정 2013-04-15 16: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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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상하부에서 배고픔을 느끼고 미각·후각 통해 해마에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좋은 기억 형성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의대 본과 1학년 시절, 학교 가는 길목의 빵집에서 빵굽는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겨나왔다. 진열대 위에 방금 놓여진 갓 구운 빵을 사서 한 입 떼어 먹으면 촉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타이트하기만 했던 의대생의 일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줬다. 나는 그 힘으로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소울푸드’(Soul food)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심신의 허기를 달래주는 어떤 음식.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데 그치지 않고 혀의 미각, 또는 코의 후각을 통해 기억의 저장소인 해마(hippocampus)에 감동을 전달하면서 우리 기억에 자리한다. 음식은 뇌에서 도파민, 베타엔돌핀과 같은 쾌락호르몬을 분비시켜 이런 기억을 강화한다.

쥐에서 도파민 신경을 파괴시키면 입맛은 다시지만, 음식이 옆에 있어도 먹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음식이 주는 쾌락은 위장의 포만감 뿐 아니라 뇌의 정화를 일으키고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곳이 어디인줄 아는가?  바로 ‘꼬르륵’ 소리를 내는 위장이 아니라 뇌, 즉 시상하부이다. 시상하부는 본능의 뇌에 해당돼 기분, 성욕, 식욕을 담당한다.
그래서 식욕과 성욕이 채워졌을 때 포만감과 만족감이 느껴지게 된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해질 때에는 식욕과 성욕의 현저한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크게 오르거나, 거꾸로 심하게 다운되기도 한다.
‘먹방’(맛집이나 먹을 거리를 소개하는 방송)이 유행하는 것은 먹는 행위 자체가 본능에 해당하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신같은 연예인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음식은 배고픔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쾌락, 분위기, 자유시간, 자기위로, 사랑, 함께 함, 친근감, 친구 등 무궁무진한 의미를 부여한다. 

반면 음식의 쾌락이 도를 지나치면 해가 된다. 바로 특정 음식에 중독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게 초콜릿이나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이 많이 들어있는 인스턴트 음식이다.
놀라운 것은 음식중독이 있는 사람에게 마약중독자나 게임중독자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측핵(Nucleus Accumbens)’이라는 부위가 공통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적당량의 음식이란 얼마 만큼을 말하는가?  대체로 세계인들은 하루에 세끼를 먹고 있다. 비만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하는 질문을 참 많이 듣는데 몇가지 원칙만 있을 뿐 각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먹는 양과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원칙은 아침은 가볍게, 점심은 정상식사로, 저녁은 먹고 싶은 것 위주로 하는 게 좋다.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에도 먹고 싶은 것 조금씩 챙겨 먹기, 피곤할수록 나이 들수록 소식하기, 조금 더 빨리 숟가락 놓기, 먹을 때 즐겁게 여유 가지기를 실천하도록 추천한다.

얼마전, ‘일일일식(一日一食)’ 열풍이 불면서 ‘하루 한끼만 먹는게 과연 좋은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이어트 전문가들은 일일일식으로는 혈당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배고픔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고 조언하는 편이다. 
다만 절식할 필요가 있거나, 디톡스(detox, 해독요법) 하는 목적으로 단기간 시행해볼 수는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포만감을 빠르게 해결해주는 양질의 단백질 음식으로 배고픔을 달래줘야 한다.
정해놓은 음식만 먹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이어트 기간에 라면을 먹어도 무방하다. 어떤 환자는 라면은 다이어트하는 동안 절대 안된다는 생각으로 참고 참다가 결국엔 생라면을 우걱우걱 먹다가 잠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자는 라면일지라도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을 1주일에 몇 번은 먹을 수 있도록 ‘위로푸드(comfort food)’를 처방한다. 

비오는 날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부쳐주시던 바삭바삭한 감자전, 주말에 데이트할 때 먹었던 느끼하면서 고소한 파스타, 야밤에 후루룩 불면서 먹었던 쫄깃한 라면 면발, 학창시절 친구들과 손을 후후 불며 먹었던 뜨거운 오뎅국물이 내겐 소울푸드이자 위로푸드이다.
이런 음식은 내게 음식 이상의 것들로 존재해 미각과 아련한 추억의 깊은 맛을 선사한다. 그 음식들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대뇌의 해마에 당시의 행복감이 전달돼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보너스 여행’을 하게 된다. 잠시 후, 퇴근하면 요즘 서먹해진 직원들과 삼겹살 불판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고기를 구워먹어야겠다. 벌써부터 그 향과 쫄깃한 맛, 짭쪼름한 소금기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그래, 사람사는 게 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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