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결혼제도는 누가 만들었냐고. 결혼제도는 미친 짓이다”라고 40대 초반의 미시즈 K는 진료실이 떠나가라 언성을 높인다. 핑크빛 신혼의 꿈은 금방 깨지고 ‘내가 미쳤지’하면서 후회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크게 줄고 있다. 결혼을 고려하는 미혼 여성들도 남편의 ‘스펙’은 물론 시댁의 ‘재산’까지 철저하게 계산해본다. 내가 결혼해서 이분들을 부양할 짐을 지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인가
역시 결혼은 경제력과 현실이라는 것을 이미 젊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떨 때 이혼하고 싶냐는 질문의 답은 남녀가 다르다. 여자분들은 ‘남편이 예전같지 않을 때’,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을 때’가 많다. 남자라는 특성은 자기가 몰입할 때에는 그 대상이 자신의 전부라 행동하지만, 결혼함과 동시에 우선순위가 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두고 부인들은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는 잔소리꾼이 되어버린다.
놀랍게도 남자들은 새로운 이성에게 끌릴 때 이혼을 꿈꾼다. “내가 처자식만 없으면 저 여성과 ‘세기의 사랑과 섹스’를 나눌 텐데”하며 아쉬워한다. 세기의 사랑으로 믿고 행동으로 옮겼다가 스스로 이혼을 택하거나, 이혼당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 모두 결혼생활에서 돈 문제는 이혼과 직결된다. 성경에서도 ‘돈이 가는데 마음이 간다’고 했듯이 가정을 유지하는 경제력이 부부의 자존감과 결부돼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여자가 돈을 많이 벌면 남편이 무시당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시댁이 돈이 많으면 간섭을 하게 되고, 친정이 돈이 없으면 무시당해서 문제가 생긴다.
따로 돈을 챙기던 남편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이혼하게 된 부부도 있다. 남편 지갑의 문제는 결국 남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부부는 역할 분담, 한 달 생활비, 양쪽 집안 참여도에 대한 규칙을 어느 정도 타협해두는 게 현명하다. 결혼하면 이론적으로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하는 요즘에는 각자 재정관리를 알아서 하는 ‘딴 몸’ 부부가 늘어가고 있다. 결혼했으니 무조건 재정을 공개하라고 대응하기보다는 개인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인정해줄 필요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한 가정을 이룬 이상 공동의 책임으로 아이양육비, 생활비를 어떻게 조달할 지 논의하고 가계 실정에 맞게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혼을 꿈꾸는 이유는 이혼을 망설이기 때문
요즘 반가운 소식은 급증하던 우리나라 이혼율이 다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이혼율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혼은 남녀 모두에게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결혼이 새로운 생활로 시작되는 것이라면, 이혼 역시 현재의 생활에서 다른 새로운 생활로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이밖에 배우자가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 결혼에 실패하면 나에게도 이유가 있다는 자존감 저하, 한국 사회의 비판적인 시선 때문에 이혼을 망설인다. 대다수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가 자식 때문에 이혼을 망설여하지만, 정말 배우자와 살기 싫어진다면 자식도 ‘보호인자’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혼이 자녀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일까? 이혼 후 자녀문제 상담을 보면 크게 두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부모의 이혼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연령층의 자녀들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아이들을 위축시키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왕따를 당하게 한다. 분노가 공격적으로 바뀌면 행동으로 옮겨져 남을 괴롭히는 ‘품행장애’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분노조절장애’가 온다. 학교에서 왕따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생기는 셈이다.
물론 이혼해도 잘 자라는 아이가 있다. 살펴보면 부모가 이혼 과정을 아이들에게 잘 설명하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스킨십과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가정이다. 이런 자녀들은 우리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지원도 이혼 후 자녀키우기에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외벌이로 생활고로 허덕인다면 그만큼 자녀들과 같이 할 시간은 부족하고, 자녀들은 방치될 것이다. 따라서 위자료나 재산 분할도 잘 준비돼야 하고, 편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줄 친인척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도 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남은 인생 자신을 위해 이혼하는게 맞을까?’라는 고민은 해답이 없어보인다.
이혼하면 과연 행복할까 … ‘준비된 이혼’이어야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사람에게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질문은 “내 삶이 중요한가. 자녀의 삶이 중요한가” 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이혼하면 내가 과연 행복해질 것이냐’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내 삶과 자녀의 삶이 따로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해도 지금의 삶보다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다면 이혼하지 말라고 권한다. 준비되지 않은 이혼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가끔 안타까운 것은 우울증,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이 결혼만 벗어나면, 저 배우자만 내곁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스트레스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혼해서 통계적으로 50%가 후회한다고 한다. 이혼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크다. 홧김에 변호사를 만나고 법적인 소송의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돌이킬 없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다. 그래서 필자는 변호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정신과 의사를 만나라고 권한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내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신상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홧김에 상대방을 고소하거나, 이혼소송을 시작하면 배우자 또는 양가 집안의 감정대립으로 번져서 ‘건너서는 안될 강’을 건너게 된다.
상대를 끝까지 욕하지 말자
인생의 큰 그림에서 보면, 나와 인연이 되어 내 인생의 일부에 들어온 상대방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가 이성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녀의 양육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역할 분담을 할수 있다면 왜 굳이 이혼하겠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다.
상대를 욕하고 비난하는 일은 이혼 과정이나 이혼 후에도 자녀 앞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이다. 머리로는 판단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자신의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분노가 넘쳐 흐르게 된다. 이혼 후폭풍을 잘 다스리려면 당사자가 먼저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사람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해야 분노 조절이 가능하다. “남편은 이래야만 한다”, “아내가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당위성을 가지고 생각하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게 된다.
불행의 원인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이혼한 가정의 자녀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엄마 아빠가 따로 살게 되어도 우리 가정은 지금처럼 똑같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혼 후에도 동일하게 아빠, 엄마로서 성숙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이혼해서는 안된다. 이혼한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혼하고 나서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섣불리 이혼도 안했을 것이다”이다.
이혼하기 전에 자신의 정신건강을 먼저 챙겨보자. 행복한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결혼생활도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일상적인 관계에 소중함을 감사하자. 얼마전, 상담을 통해 황혼이혼의 위기를 넘긴 60대 여성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혼자 밥먹지 않는 것이 어디야. 같이 밥먹을 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성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