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필자의 비만·스트레스클리닉에서는 체성분 분석표가 수북히 쌓인다. 환자들은 체중계에 오를 때 떨리는 반면, 의사들은 체성분 분석표를 가져올 때 떨린다. 중년 주부 B씨의 체성분은 다행히도 1주일간 나타나야 할 변화들의 시작을 반영했다. 체중은 3㎏이 빠지고, 체지방도 체지방도 1.5㎏이나 줄어들었다. 다이어트 초기에 보여야 할 수분량의 감소도 함께 나타났다.
완벽주의, 부정적 자아, 분석적 인지패턴 강할수록 살빼기 어려워
비만치료 2주차. 환자와 주치의 모두 긴장되는 순간이다. 2주가 되면 주치의는 더욱 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2주까지 잘 빠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거나, 앞으로도 빠지기 어렵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14일동안’이라는 다이어트 업체도 있지 않는가. 필자도 다이어트 시작 후 14일 동안의 체중·식사습관·생활습관의 변화가 앞으로의 다이어트 성공여부를 점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B씨은 2주째에 3㎏가 더 빠졌다.
“네 아주 잘 빠지고 있어요. 몸이 좀 가벼워지셨어요? 이정도 빠지면 그래도 몸에서 느낌이 오실 텐데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잘 빠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목표하는 대로 잘 되어가고 있어요. 일주일에 1㎏ 정도 빠지면 적당해요. 그 이상 빠지면 오히려 수분만 빠져나가니까 좋지 않아요. 아마 한달만 더 지나면 몸이 많이 가벼워질 거에요.”
비만치료를하다 보면, 체중이 빠지는데도 안 빠진다고 우기는 분들이 꼭 계신다. 반대로 체중이 별로 안빠졌는데도 잘되고 있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 전문가라면 살이 안빠진다고 주장하는 분들 때문에 기분이 나빠질 필요도 없고, 비만치료가 잘되고 있다고 믿는 분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질 리도 없다.
체중의 변화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다양하다. 완벽주의 성향, 부정적인 자아상, 분석적인 인지패턴 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데 불만을 품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아, 이 분은 이런 패턴이시구나.’라고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는 게 우선이다. 체중이 3㎏ 빠졌는데도 반응이 미지근하다면 다이어트의 동기부여가 다시 한번 필요한 때이다.
딸 때문에 속상해 ‘폭식’하고 비만상담 클리닉 찾은 엄마들 자화상
“처음에 클리닉 오실 때 어떤 생각으로 오셨어요? 단단히 마음먹고 오셨을텐데.”
초심을 묻는 질문이다. 수줍은 답변이 이어진다.
“글쎄요. 지금 못 빼면 영영 못 뺄 것 같은 기분? 다이어트 생각은 늘 하지요. 살 빠지는 허브티도 사놓고 찬장에서 몰래 타먹다가 딸애한테도 걸리고. 사실 우리 딸이 대학 들어갔는데 확 소리 지르면서 ‘엄마 옷이 그게 뭐야. 왜 그러고 살아. 엄마도 살 좀 빼!’ 하잖아요.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다 해놓으니까 요즘 엄마한테 함부로 한다니까요.”
“어떻게 함부로 하는데요? 말로 상처주나요?”
“말도 마세요. 화날 때는 ‘엄마는 엄마만 옳다고 생각해. 내가 필요한 것을 해준게 아니라 엄마가 필요한 것만 해줬다’며 길길이 날뛰죠. 자기는 엄마 때문에 불행하다나.”
얼마나 속이 상할까. 전업주부의 완성이 자식이라는데, 자식에게 듣는 이런 피드백은 마치 ‘엄마의 삶은 지금까지 실패야. 헛살았어.’라는 말과 동일어 아닐까. 그래서, 자식이 커갈수록, 머리가 굵어지고 똑똑해질수록 우리 어머니들은 우울하다.
이래서 ‘그래, 너 잘났다. 네가 그래봤자 내 뱃속에서 나왔고 똥오줌 못가렸건만, 이제 다 키워놨더니 그게 할 소리냐.’라는 말이 입밖으로 술술 나올 수 밖에. 딸 아이가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면 어머니의 마음 문도 쾅 닫힌다. ‘그래, 자식 다 키워놓아 봤자 헛수고다.’ 라고 씩씩거리면서 부엌으로 향해 냉장고 문을 연다.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는 한국엄마의 ‘포함단위’ 이론
문은희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상담학 박사)이 저술한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서양 어머니들의 우울증을 설득력 있게 비교·분석했다. 이 책에는 아이를 아프게 하는 엄마가 성찰해야 할 내용이 있다.
문은희 박사는 ‘포함단위’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를 찾아내 ‘포함’ 이론을 정립했다. 자녀의 행복과 불행이 자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고 사는 어머니의 것으로 간주되는 걸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 문화의 맥락을 밝혀주는 이론이다. 포함 이론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엄마!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 대부분은 바로 엄마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토로했던 C 환자분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을 해서 나도 자녀를 기르지만, 정말 우리 엄마와는 조금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요. 엄마 같은 엄마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 속에 분노가 역력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엇을 그리도 잘못하신 걸까. 평범한 엄마들은 왜 자신의 딸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원인조차 꿈에도 모르고 있으리라.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 되라고 잔소리하고, 간섭하고, 부담주고, 조바심내다가 그만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만 것이다.
“친구 같은 엄마와 딸도 있는데 딸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많이 섭섭하시겠어요. 딸이 해도 너무 했네요.”
“….”
B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책상 위 휴지에 손을 뻗어야 하나 마나. 상담 중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에게 휴지를 바로 가져다 주면, “이제 그만 하세요. 눈물 뚝.”이라는 간접적인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에 무작정 휴지를 드리는 친절이 오히려 상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눈물이 흘러 손으로 닦고 계신 분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그 눈물을 정면으로 보고 앉아있기가 불편해서 크리넥스로 눈을 돌려 손을 뻗는다. 아이가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듯이 엄마 역할에 충실한 것이 죄가 되는 B도 치료자에게 이해받고 싶으리라.
“공부를 잘해줘서 대견하죠 뭐. 요즘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가기가 어디 쉬운가요? 그래도 공부로 제 속 썩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공부를 잘해주었던 딸, 그 딸을 칭찬하는 엄마. 소아정신과 상담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보다는 사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 눈치를 보면서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 역할을 배우는 아이들은 엄마들이 아이가 잘되라고 한 일에 상처를 입고 만다.
필자가 서초구 반포동 학원가 건너편에서 병원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 온 많은 엄마들을 만난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반포에 새로 리모델링된 아파트는 외부에서 유입된 가족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말한다. 학군이 좋은 곳에서 공부시켜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자녀의 성적이 ‘자신의 자존심’이 돼버린 강남 엄마들
자녀 키우기가 자신의 경력이고, 자녀의 성적이 자신의 자존심이 됐다. 지난해 3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안방에 시신을 8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지 모 학생(19) 사건을 접한 뒤 환자들의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진료실에서 최진실의 자살 소식을 들은 이후로 환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뉴스였다.
강남권 엄마들은 좋은 학벌과 직장을 버리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엄마로 남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훌륭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투철하다. 엄마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자녀들에게 부족함 없이 쏟아붓고 있고, 절대로 체벌하거나 험한 말을 하지 않으니 마음에 상처 준 일이 어딨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실망어린 눈초리나 목소리 톤만으로도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 시절, 엄마의 권유로 의대를 가게 됐고, 이후 의대 공부가 힘들 때마다 엄마를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의사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엄마가 하지 그랬어?”라고 엄마를 심하게 윽박질렀던 기억도 난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의사되고 싶지 않았어. 너가 어렸을 때부터 의사되고 싶다고 했잖아? 얼른 가서 공부해.”라고 말했던 엄마가 그 당시는 참 섭섭했다. “의대 공부가 그렇게도 힘드니?”라는 말로 따뜻하게 감싸주길 바랐는데, 엄마는 엄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듯 얼른 눌러버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겨우 철이 들어 “엄마 덕분에 내가 의사가 되었어”라고 인사를 잊지 않았지만, 엄마가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줬더라면 엄마와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은 딸이 속썩이는 일 많은가 봐요.”
“너무 늦게 다니니까 문제죠. 밤늦게 남자 만나러 다니는가 싶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지 영…. 이제는 늦어도 늦는다고 전화조차 없다니까요. 새벽 2~3시까지 기다리다가 잠도 못자니까 이것저것 주워먹게 되고. 내가 자꾸 살이 찔 수밖에 없다니까요.”
“엄마와 딸이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억지로 할 수도 없어요. 이제 대학을 갔으니 자기 갈 길을 가도록 관여하지 않도록 해보세요. 어린아이 때에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펴줘야 하지만, 점점 간섭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게 참 힘들죠.”
한국 엄마들 무조건 ‘희생’이라는 자기억압에 매몰돼
부모 자식간에도 인연이 있다는데 원수와 같은 사이도 드물지 않다. 엄마 때문에 살기 싫다는 딸들도 많이 만나봤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신이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에 사랑할 때와 놓아줘야 할 때를 모른다.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따라오지 않으면 “넌 내 전부야”라고 부담을 주거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배신이라도 당한 듯 괴로워한다.
해결책은 단 한가지. 인생의 2막이 시작되면, 아이를 놓아줘야 한다. 엄마 자신이 스스로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모성 쇼크’라는 책을 얼마전 읽었는데, 우리 엄마들의 모성은 무조건 ‘희생’이라는 자기억압에 매몰돼 있다. 모성이라면 겁부터 나는 것이 초보 엄마들. 모성은 엄마가 행복할 때 저절로 샘솟아야 한다. 엄마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만이 아이들의 욕구에도 민감할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결국 아이를 위한 일임을 잊지 말자. 행복해하는 사람 옆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늘 간섭하려 하고 잔소리만 하는 불평불만인 사람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이와 연애하듯 지내자.
‘엄마가 내편’이라는 생각을 가진 아이는 강하다
엄마들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되라고 한 일에 지금 아이들은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 필자는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억울해하는 엄마들을 많이 만나왔다. 엄마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자. 아이의 눈이 슬픔을 이야기하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아이의 눈이 비어 있으면 눈물을 가득 담고 꼭 안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분노에 차 있으면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기쁨에 넘치면 있으면 같이 기뻐하자. 엄마가 내편이라는 생각을 가진 아이는 그 어떤 힘을 가진 이보다 강해진다.
사랑인 줄 알고 저지른 엄마들의 잘못 리스트
* 자녀의 큰 꿈에만 박수쳐주었는가?
* 엄마의 꿈을 자녀의 꿈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는가?
*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하다고 칭찬했는가?
* 아이답지 않고 어른스러워야 좋아했는가?
* 규칙과 약속을 꼭 지키게 했는가?
* 엄마 취향과 같은 것을 고를 때만 허용했는가?
* 슬픔이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 해결해주기 위해서만 노력했는가?
* “너는 내 전부다”라고 부담을 주지 않았는가?
* 실패할까 두려워 미리 지적하고 잔소리하지 않았는가?
* 아이와 마음을 나눈다고 엄마의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냈는가?
* 자만하지 말라고 남들 앞에서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 아기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안심했는가?
* 아이 자신보다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 전문가나 책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가?
*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가?
* 체벌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