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당뇨병 치료제와는 전혀 다른 기전으로 비만에 따른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발생하는 제2형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국내 의학자가 찾아냈다. 이를 이용하면 체중 및 지방을 감소시켜 대사조절 장애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서울병원은 10일 삼성융합의과학원 내분비대사내과 이명식·김국환 교수팀과 최철수 가천대 의대 교수가 세포기능 및 대사조절에서 ‘자가포식’의 역할에 대한 연구결과를 이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메디슨’(2011년 기준 논문영양지수 IF 22.462점) 온라인판 최근호에 게재했다고 3일 밝혔다.
자가포식(自家捕食, Autophagy)이란 세포내 라이소좀(lysosome)이 세포내에서 손상된 소기관 등 필요없는 물질을 분해, 제거하는 과정으로 이것이 원활하지 않으면 신경성퇴행질환, 대사이상질환, 종양질환, 염증이 일어날 수 있다. 자가포식이상(Autophagy deficit)란 이런 과정이 결여된 것으로 췌장베타세포와 관련해서는 당뇨병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우리 몸의 세포가 통째로 생사를 반복한다고 인식했으나 자가포식 개념이 생기면서 세포내 소기관이 사멸과 재생을 되풀이하면서 세포 전체를 죽게하거나 재생시킨다고 믿게 됐다.
이명식 교수팀은 국내 자가포식 연구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에는 이미 세포 내 소기관의 자가포식 기능 이상으로 인슐린 분비에 관여하는 베타세포가 정상적으로 재생되지 않아 당뇨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혀낸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논문에서는 이를 한 단계 뛰어 넘었다. 자가포식 이상으로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으로부터 분비되는 ‘Fgf21’이라는 물질이 그동안 존재할 것이란 추정만 해왔는데 이번에 이 물질이 ‘마이토카인(mitokine)’임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이 교수팀이 진행한 자가포식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쥐와 그렇지 않은 쥐를 비교한 동물실험 결과, 조작을 가한 쥐는 정상쥐에 비해 인슐린 저항성은 최대 75% 가량 감소했다. 체중 역시 3분의 1 정도 감량이 이뤄졌고, 지방은 절반 가까이 빠졌다.
자가포식 기능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면 세포내 소기관 중 핵심인 미토콘드리아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은 미토콘드리아는 이에 대한 항진반응으로 마이토카인을 분비하며 체내대사를 조절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을 감소시키고 체중과 지방이 줄어들게 된다. 당뇨병 비만 등 대사이상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단서다.
자가포식에 대한 연구 자체가 미진한 상태에서 자가포식의 이상에 따라 분비된 마이토카인이 체내 대사장애에 따른 각종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냄으로써 기존 당뇨병 치료제와는 전혀 다른 기전으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나 치료방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 환자 상태에 따라 세포보다 더 작은 단위까지 치료할 수 있게 돼 아예 병을 일으키는 원인도 조절이 가능할 수 있다.
아울러 고혈압약 개발 과정에서 먹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가포식 기능 조절 치료제 개발에 따른 부산물로 비만치료에서도 새로운 차원의 치료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현재는 위 절제수술 또는 식욕감퇴제 및 포만감증진제 등 간접적인 비만치료 방식이 주로 쓰이지만 앞으로는 부작용 없이 체중과 지방을 직접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고도비만이나 대사증후군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마이토카인은 노화에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 연구결과도 나와 있어 노화억제제 개발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명식 삼성서울병원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자가포식 분야가 병의 근원을 찾아 치료하는 방향으로 미래 의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올 것”이라며 “남은 연구를 통해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 이명식 교수팀을 글로벌 연구실로 지정하고 연간 5억원씩 9년간 총 45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프로젝트의 첫 성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