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한 관계 안 생기게 건강한 자아 지키고, 입장 바꿔 생각해줘야
대한민국은 ‘화’가 많이 난 상태다. 중장년층은 고속성장한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의 거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 바쳐야만 했다. 한국인은 급한 성격에다가 목표지향적인 성취만을 위해 달려온 까닭에 개개인의 요구는 어루만지지 못하고 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루려 노력하다 말못할 고통을 당한 사람들도 곳곳에 있다.
화나는 사람들은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분노가 차올라 외부로 분노가 분출되는 경우이다. 흔히 약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분노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향해 투사되는 경우에는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빠진다. 나로 향한 분노의 최고봉이 강력한 죽음의 파괴력, 즉 ‘자살’이다.
화병은 이미 ‘hwa byoung’이라는 영어 병명이 미국 진단분류에 정식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고유의 질병이다. 자랑이 될 수는 없지만, 화병이 우리나라 고유의 질환이 된 이유가 있다. 윗사람이 어려워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알아서 잘 해주겠지 기대했다가 소외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고 속으로 담아두는 문화의 미덕에서 화병이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이 화끈거리며,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는 증상을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을 자주 내쉬고 더운 것을 잘 참지 못하는 등 여러 형태의 증상이 나타난다.
화를 내는 것이 나쁜가?
화는 우리를 보호하는 기능이다. 우리의 안전과 영역(바운더리)이 부당하게 공격당할 때 화가 나는 장치가 발동하므로 무조건 화내는 이가 나쁘다는 것은 오류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동기 유발이 되니까 좋은 것이기도 하다. 물론,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몸에는 좋다. 하지만 우리를 자극하는 화를 무조건 참아낼 수만은 없다.
화를 잘내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화가 난다고 느끼는 순간에 정말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인지, 자신의 내부 문제(열등감 등)가 가미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나와 상대방이 공평할 수도 없다. 또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부조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화가 나는 것은 ‘이 상황이 부당하다’라는 신호이니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정신과 의사가 해주는 일은 화병난 사람, 화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그동안 아무한테도 속상해서, 부끄러워서, 가족이야기라서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게 해주는 것이 기술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화가 나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는 교감신경계는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가라앉히는 편이 낫다. 그래야 큰 병 되지 않는다.
화병의 해답은 서로 입장 바꾸기
우리나라 기혼 성인 2명 가운데 1명은 시부모와 장인·장모는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족관계에 관한 수업을 들었을 때, 미국인들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남편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한국의 가정을 분석하면서 IT산업의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가족의 개념에 있어서는 야만국가로 보는 것을 느꼈다.
과연 가족의 개념은 무엇일까?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가족이 아니여야 한다. 우리의 가족에 대한 인식 중에 며느리니까, 시어머니이니까, 아내이니까, 남편이니까 참아내야 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줘야 한다.
몸의 한부분이 아프면 컨디션 전체가 안 좋듯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라도 ‘희생양’의 역할을 하지 않아야 한다. 화병의 해답도 여기에 있다. ‘불공평’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서 서로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분노를 털어내기 위한 3가지 조건
하지만, 화나면 화내야 한다. 화를 참기만 하지 말고 지혜롭게 분노를 털어내려면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보자. 첫째, 이미 마음에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덜어내어 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자. 마치 봄볕에 이불 먼지 털기를 하듯 말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감상 등 취미생활을 통해 내 행복을 책임질 수 있어야 분노를 가져오는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다.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자.
둘째, 자신의 속풀이는 되도록 가족과 상관없는 믿을 수 있는 제3자가 좋다. 입밖으로 꺼내어진 말들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과 가족에게 화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파워가 있어서 ‘남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반복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되어 사실처럼 느껴지는 인지오류가 생길 수 있다. 아무에게나 분노를 털어내면 분노가 몇배로 부풀려질 수도 있으니 꼭 믿을만한 사람에게 정담을 나눠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서 타인과의 바운더리 설정을 잘 해야 한다. 분노는 불공평에서 온다고 했다. 나와 타인의 불공평한 관계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화병이 잘 생기는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많다. 내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다보니 외부사람들에게 끌려다니게 되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 쉽다. 나중에 남을 원망하며 화병이 생기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예스’와 ‘노우’를 잘 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를 우선적으로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