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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양주에 ‘30배’ 돈나가고 ‘30배’로 숙취에 시달린다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2-11-01 23:06:02
  • 수정 2016-02-18 0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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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월 200억원 규모 가짜양주 제조업자를 검거한 이춘 검사

송년회 시즌, 양주와 맥주를 섞은 이른바 폭탄주 또는 ‘양폭’을 먹고 다음날 아침 숙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더 비싼 값을 치렀는데도 더 숙취가 심한 까닭은 가짜 양주의 탓이 크다. 애주가들은 만취해 찾는 2차, 3차 술자리(룸사롱, 카페, 노래빠 등)에서 나오는 양주의 절반은 가짜임을 직감하지만 상당히 취해 진짜라고 우기는 술집 주인이나 종업원의 주장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음주행태에서 가짜양주를 이용한 폭탄주 제조문화는 뿌리가 깊고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한 업주의 폭리와 탈세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즌이다. 하지만 주세를 걷어들이는 국세청은 30년이 넘도록 이를 근절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책의지가 부족한지, 아니면 일선 관할보건소나 검찰·경찰·식품의약품안전청과의 공조가 안돼 그런 것인지 주류소비자들은 짜증이 나고 불안하다.

국세청 가짜양주 단속 소극적 … 가짜 판별 표시는 강화했지만 실질적 단속 전무

가짜 양주 제조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캡틴큐’(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와 ‘나폴레온’(국순당L&B)이다. 무려 11년 전인 2001년에 캡틴큐는 한 해에 무려 27만ℓ가 팔려나갔다. 2005년에는 24만ℓ, 2006년 17만9000ℓ, 2007년 21만7000ℓ, 2008년 16만1000ℓ, 2009년 16만2000ℓ가 생산됐다. 나폴레온은 2005년 34만ℓ, 2006년 17만9000ℓ가 팔렸다.
현재는 물론 그 당시에도 일반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이같은 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판매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캡틴큐는 현재 주로 나가는 700㎖들이 6병 짜리 한 상자가 2만5740원(서울에서 가장 큰 주류도매점 출고가 기준)이다. 360㎖들이 12병 짜리 한 상자에 2만7720원(도매 출고가)이다. 주로 나가는 700㎖가 가짜 양주 제조에 많이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폴레온은 640㎖가 대형마트에서 약7000원대에 소매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서울의 국순당 영업총판 관계자는 “현재 나폴레온은 가정용만 나오고 있으며 일반음식점용이나 유흥주점용으로는 거의 없다. 도매출고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만큼 나폴레온이 가짜양주 제조용으로 주로 유통됨을 판매자들도 잘 알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가난한 청춘 위로하던 낭만의 저가양주 … 가짜 양주 만드는 원재료로 둔갑

캡틴큐와 나폴레온, 썸씽스페셜 등 1980년대 가난한 대학생이나 휴가 나온 군인들이 즐겨찾는 추억의 술이었다. 과거 술집에서 병당 2만~4만원대에 팔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동네 슈퍼마켓에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캡틴큐는 2010년 출고가 기준으로 3억3500만원 어치, 나폴레온은 2009년에 7억5000만원 어치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흔히 캡틴큐는 럼주(rum酒), 나폴레온은 브랜디로 알고 있다. 하지만 캡틴큐는 일반증류주로서 일반 주정에 럼향이 함유된 타입이다. 롯데주류 홈페이지에도 ‘주정에 럼향을 절묘하게 혼합해 만든 제품’이라고 씌어있다. ‘무늬만 양주’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캡틴큐는 1980년대 초 롯데주조(지금의 롯데칠성음료)에서 만든 것으로 국산 주정에 위스키 원액을 20% 미만으로 섞은 기타재제주(其他再製酒)였다. 과거의 기타재제주는 1990년 주세법 개정으로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등의 원액에 값싼 알코올을 섞어 만든 싸구려 술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원액 100% 진짜 양주를 일반 국민이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원액 함량이 제품 전체 알코올의 20% 이상이 되면 정식 증류주로 분류돼 주세가 높아졌기 때문에 원액 20% 이하를 함유하는 기타재제주가 탄생하게 됐고, 캡틴큐는 그 대표 주자였다. 세월이 흘러 캡틴큐는 과거의 인기를 뒤로한 채 ‘일반증류주’라는 이름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다. 주정에 럼향을 혼합한 제품으로 알려진 이 술은 지금은 가짜 양주제조의 주된 재료로서 종종 매스컴에 소개되기도 한다.

나폴레온은 허가상 브랜디다. 나폴레온은 본래 해태제과(해태주조)에서 만드는 럼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로서 알코올 도수는 35도에 이른다. 어차피 가짜 양주를 만들려면 나폴레온이 캡틴큐보다는 질적으로 다소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40㎖짜리 소매가격이 약7000원대에 불과한 나폴레온의 순도나 품질이 병당 5만~10만원대 하는 보통 브랜디제품과 비교해 얼마나 떨어질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양주는 비싼 고급술이라는 인식이 커서 오래전부터 가짜양주를 만들어 파는 일이 많았다. 최백호의 가요 ‘낭만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도라지’ 위스키는 실상 소주에 색소와 위스키향을 첨가한 ‘위스키 맛 소주’였다. 위스키 원액은 단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가짜 양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나마 양심적이었다. 손님들이 남긴 양주를 모아서 합쳐서 ‘내놓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캡틴큐나 나폴레온 같은 저가 양주에 에탄올(소주주정, 심지어 소독용·공업용 에탄올)이나 바닐라향, 꿀물, 캐러멜 등 양주의 색깔이 나게 하고 진짜 양주처럼 부드러운 맛을 내는 식품첨가물 등을 넣어 고가양주와 비슷한 향미을 내는 방향으로 ‘꼼수’가 발전했다.

‘삐끼’ 술집엔 가짜 양주 득실득실 … 어두침침함과 취중을 틈타 가짜 강권

지난 10월 10년간에 걸쳐 200억원 규모의 가짜양주를 제조해 유통시킨 일당이 검찰에 적발돼 가짜양주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서울역, 회현역, 건대입구 등 취객이 많은 곳에서 호객꾼을 동원해 손님을 자신의 업소로 유인한 뒤 가짜 양주를 팔고 신용카드를 이용해 술값을 부풀려 결제하는 수법으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이들이 만든 가짜 양주는 병마개 라벨이 이중으로 돼 있거나 투명한 비닐이 씌워져 있는 등 진짜 양주와 쉽게 구별됐지만 가짜 양주를 유통한 일명 ‘삐끼’ 술집들은 손님에게 미리 병마개를 따서 내놓거나 실내조명을 어둡게 하는 등의 수법으로 손님들을 속였다. 국세청 등 관계기관과 주류제조회사들은 가짜양주를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을 내놓고 있지만 불법 주점들은 술에 취해 심신이 미약해진 손님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뚜렷한 단속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고무장갑과 이쑤시개만 있으면 가짜양주 만들 수 있어

10월에 적발된 가짜양주 제조 일당은 고무장갑과 이쑤시개만으로 간단하게 가짜양주를 만들어냈다. 간단하다. 다 마신 고급 양주의 빈병 입구 부분에 고무장갑을 적당히 잘라 공기가 통하지 않게 적당히 막은 후 캡틴큐나 나폴레온 등 저가 양주에 그럴싸한 향미를 내는 첨가물을 타서 고급 양주를 흉내낸 가짜 양주를 채워 넣는다. 고무장갑으로 공기를 차단시킨 후 압력을 이용해 술을 채우면 고급양주에 키퍼 장치가 돼 있어도 무용지물이 된다. 또 고급 양주병 입구 부분에 이쑤시개를 몇 개 끼운 후 술을 조금씩 부으면 이쑤시개를 타고 가짜양주가 들어가 진짜 고급 양주로 둔갑하게 된다. 일당은 비닐이 훼손되지 않은 병뚜껑을 끼워서 손님에게 진짜 양주인 것처럼 판매했다.

국세청, RFID·스마트폰 활용 진짜 양주 판별법 내놨지만 완벽한 단속 힘들어

국세청은 가짜양주를 척결한다는 취지에서 2008년부터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을 활용한 주류유통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위스키 병에 RFID태그를 부착해 제조ㆍ수입부터 소비단계까지 모든 유통정보가 국세청 전산망에 기록돼 위스키의 유통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다. 2012년 10월 1일부터는 윈저, 임페리얼, 스카치블루, 킹덤, 골든블루 등 5개 국산 브랜드 양주에만 적용돼왔던 RFID태그 부착 의무를 국내 유통되는 모든 위스키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조니워커, 발렌타인, 잭다니엘, 맥켈란, 글렉피딕 등 수입 위스키도 RFID 태그를 붙여 유통되고 있다. 부착의무 지역도 전국 모든 지역으로 확대됐다.

국세청은 무선주파수인식기술을 활용해 가짜양주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2008~2012년 동안 가짜양주 제조ㆍ유통적발 건수는 2008년 1건, 2009년 6건, 2010년 5건이었고 지난해와 올해엔 2년간 단 한 건의 단속도 없었다. 지난 10월에 적발된 일당도 다른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중 우연히 가짜양주 제조사실에 대한 증거가 잡힌 것이었다.
국세청은 RFID태그 부착 이후 가짜 양주 적발 건수가 연평균 1~2건으로 줄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에 걸려들지만 않았을 뿐 여전히 가짜양주가 음성적으로 제조ㆍ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비 70억원이 투입된 RFID사업이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짜 양주에 속지 않으려면 취중 정신 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가짜 양주에 속지 않으려면 아무리 즐겁게 취하려 술을 마신다해도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서는 안된다. 만취하면 술집의 범죄대상이 될 수 있다. 범죄자가 상대방을 속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가짜양주를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은 가짜양주는 색깔이 연하고 흔들었을 때 거품이 더 많이 나고 오래 남아있다. 하지만 술집의 어두운 조명이나 분위기상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이나 술집에 있는 양주 진품확인 단말기를 이용하여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술집에서는 진품을 확인해 줄 의무가 있고, 손님은 확인해야 할 권리가 있다. 국세청이 소비자들에게 양주의 유통이력정보, 상품명, 용량, 용도, 생성일자, 소매상명 등을 확인해 진품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 홍보한 적이 있지만 손님이 앱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사용을 귀찮아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유흥업소의 한 관계자는 “웨이터가 양주를 들고 올 때 손님이 신경을 안 쓰면 대부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만취했을 경우 일행들이나 같이 오신 분들이 신경을 써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가짜 양주가 극히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는데다가 양주를 즐길만한 상류층 또는 중산층이상 계층들이 가짜와 진짜를 식별하는 절차를 귀찮아하거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국세청, 구청, 경찰 측에서 단속이 쉽지 않다”며 “술집에서 가짜양주에 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느꼈다면 즉시 항의하거나, 꼭 신고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가짜양주 제조장과 판매업소를 발견해 제보하면 소정의 포상금이 지급된다”며 적극적인 제보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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