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관한 구매욕에 있어 한국만큼 강한 나라는 드물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7월 한국ㆍ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약1년간에 걸쳐 대 EU 수입품목을 분석한 결과를 가방(35.0%), 신발(31.0%), 시계(51.1%), 화장품(10.2%) 등 소비재 수입이 급증했다. 이들 품목은 유럽 회사가 주로 판매하는 명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럽의 대표적인 명품 회사는 FTA에 따른 관세 인하에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을 내리지 않은 경우가 많아 비난을 받고 있다. 루이비통은 가격을 인하하지 않았다. 샤넬과 에르메스는 주요 제품 가격은 5% 내렸다가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반영 등을 이유로 곧 되돌리기도 했다. 오히려 프라다 같은 브랜드는 명품값을 소폭 올렸다가 빈축을 샀다.
하지만 아름답고 심리적 만족을 주는 명품에 남녀 모두 손이 가는 것을 어쩌랴. 지난 6일에는 ‘아름다운 물건을 사는 행위가 자신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보도돼 관심을 끌었다. 미국 마이애미 주립대(UM)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과학자들은 “미적 만족감을 주는 램프를 산 사람들이 기능성이 높은 램프를 산 사람보다 더 자신감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소비자들이 실용적인 것보다 매력있는 상품을 살 때 자신감이 더 높아지고, 남들이 물건을 잘못 선택했다고 말해도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매력적인 상품을 구매하면 자신감이 높아지고 이런 ‘긍정적 효과’가 정신적인 해방 효과를 가져와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의 충동구매를 섭식장애(폭식증), 과도한 일광욕, 포르노중독, 도박중독,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중독(자해적 현상)과 비유하기도 한다. 또 이성에게 매력을 풍기기 위해, 생존 또는 생식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번식에 대한 본능을 상품이란 성적 시그널로 대체하기 위해 명품을 구매한다고 보기도 한다.
남자는 주로 자동차 또는 오토바이, 시계, 정장 또는 고급캐주얼을 통해 자신의 성적 매력을 과시하려 한다. 여성은 핸드백, 목걸이 등 악세사리, 옷과 구두를 통해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크게 보면 좋은 대학, 괜찮은 직장을 가지려는 것도 이같은 명품 추구 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보다 나은 학벌과 직장, 명품에 대한 갈망은 심리적, 철학적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희구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어쩌다 백화점에서 드물게 ‘노 세일 브랜드’ 명품에 대해 할인판매에 들어가면 수시간씩 줄을 서서 수백만원 지불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 백을 메고 다니는, 그 옷을 입고 활보하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명품을 걸친 자신에게 보내주는 시선은 그 어떤 ‘나 잘 났거든’이란 말보다도 즉각적이다. 타인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고평가하는 반응속도를 단축함에 있어 명품보다 나은 게 없다는 잠재의식이 명품 구매에 작용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쌓는 자존감이 오래가지 못하고 허상인 것을 소비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명품을 일컬어 건설경기 못지 않게 우리 경제를 순환시키는 동력이라고 미화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병들게 하는 게 명품의 흔하고 주된 부작용이다. 명품 때문에 거액의 빚을 지고, 빚을 갚으러 마음에도 없는 술 시중을 드는 유흥여성들이 한둘이 아님을 굳이 말해도 아는 사람은 안다. 이런 세태를 언론들이 개탄하고, 절제할 것을 권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말연시나 졸업·입학, 무슨무슨 데이, 심지어 어버이날·어린이날 또는 명절 선물로 명품을 추천하는 광고성 특집을 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생존법일 것이다. 이런 특집을 읽다보면 명품 선물 못하면 내가 무지렁이인가 싶다.
한 때 휴대폰이 나오자 시계 장수는 다 죽었다. 시계왕국 스위스 경제도 휘청거릴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계는 부활했다. 남자의 품격을 높여주는 시계, 장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시계 등등을 운운하며 사나이의 지갑을 열고 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본연의 기능만 생각한다면 몇만원 짜리 싸구려 전자시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스위스 장인들이 시계조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과연 명품 시계는 다르다는 식의 기사는 우습기도 하다. 자동화 기계로 만들면 수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을…. 게다가 금덩어리도 보석도 박히지 않은 육중한 시계를 명품이라며 차고 다니는 모습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휴대폰 시대가 열려 맨 손목에 해방감을 느끼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 지나친 명품 구매는 자기과시욕, 성적 욕구, 소비 본능, 충동장애 등이 뒤섞인 소비행태의 하나로 영혼의 안식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내면의 깊이 없는 자존감을 채워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