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DPP-4 억제제가 다른 당뇨병 치료제보다 독보적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국내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의 지난해 시장규모는 3533억원으로 전년 대비 2% 성장한데 그친 반면 DPP-4 억제제는 815억원으로 43%나 성장하는 힘을 보여줬다.이런 가운데 한국베링거인겔하임과 LG생명과학이 올 하반기 신규 DPP-4 억제제를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어서 동일 계열 제제간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기존 DPP-4 억제제도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한편 적응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DPP-4 억제제 시장,신규제품 참여로 경쟁 가속
한국노바티스는 지난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자사의 DPP-4 억제제인 ‘가브스’(성분명 빌다글립틴,vildagliptin)가 단독요법 및 당뇨병 초기 병용요법으로 적응증을 추가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가브스는 그동안 경쟁제품인 한국MSD ‘자누비아’(시타글립틴,sitagliptin)이나 지난해 11월 출시된 한국BMS ‘온글라이자’(삭사글립틴,saxagliptin)에 비해 단독 투여할 수 있는 적응증을 갖지 못해 마케팅에서 상대적 열위에 놓여 있었다.
이에 앞서 가브스는 지난 1월 중등도 및 중증 신장애 환자, 말기 신부전환자에게도 1일 1회 50㎎을 투여할 수 있는 적응증도 획득했다.이전에 가브스는 이들 환자에게 투여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이처럼 가브스가 적응증을 확대함에 따라 더 많은 의사와 환자에게 설득력을 갖고 처방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
의약품마케팅 전문 유비스트(UBIST)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자누비아 원외처방 조제약 매출액은 193억원으로 전년 동기(127억원) 대비 52%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자누비아의 지난해 매출은 571억으로 2010년(392억원)에 비해 45% 증가했다.가브스는 올 1분기 80억원, 지난해 243억원 매출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1%, 36% 성장했다. 온글라이자는 지난해 두달 동안 1억원,올들어 1월에 1억원을 찍었다.
온글라이자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사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시판하는 약으로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후발주자라는 원천적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은 자누비아와 가브스에 비해 이름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한국베링거인겔하임과 한국릴리는 DPP-4 억제제인 트라젠타(성분명 리나글립틴,linagliptin)의 국내 시판을 승인받았고 현재 보험약가 산정절차를 밟고 있다.오는 8월안으로 약가가 확정돼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LG생명과학도 DPP-4 억제제인 LC15-0444(제미글립틴, gemigliptin)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LG는 2008년 3월에 이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1상 임상시험을, 2009년 9월에 2상 임상시험을 마쳤고 2012년 2월말 현재 임상3상을 완료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국내 최초의 당뇨병치료제로 신약등록을 신청 중이다. 올 상반기 중 식약청 승인을 받아 하반기에 보험약가를 취득,시판할 예정이다. ▶각 제품의 종합적 평가는 본 사이트 의약품센터의 의약품평가 부분 참고
DPP-4 억제제의 핵심은 인크레틴 활성화
당뇨병 치료의 최신 패러다임은 ‘인크레틴’ 활성화다. 인크레틴(incretin)은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체내호르몬으로 혈중 포도당량(혈당)에 따라 인슐린 분비를 조절한다. 혈당이 높을 때에만 인슐린을 분비토록 유도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가만히 있는 똑똑한 호르몬이다. 인크레틴은 또 글루카곤(간에서 혈당을 합성하는 호르몬) 분비를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인크레틴에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ucagon like peptide: GLP-1)과 당의존성 인슐리노트로픽 펩타이드(glucose dependent insulinotropic peptide, gastric inhibitory peptide, GIP)가 있다.
이들 인크레틴은 식사후 소화관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secretin)으로 GLP-1은 포도당량에 근거해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고 글루카곤의 분비를 억제한다. GIP는 십이지장과 공장(空腸, 십이지장 다음에 이어지는 소장의 한 부분)의 점막에서 발견되며 혈액으로 흘러들어간다. GIP 수용체는 7개의 막단백질로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발견된다.
그동안 쓰여온 설포닐우레아계 당뇨약, 메트포르민, 치아졸리딘디온 등의 먹는 혈당강하제나 인슐린 주사제는 저혈당쇼크 심장발작 고인슐린혈증 비만 등 적잖은 잠재적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설포닐우레아계 당뇨병약은 이미 기능이 저하된 췌장베타세포에게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라고 강제한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인슐린이 다량 분비될 경우 저혈당쇼크가 왔고 잔여 인슐린이 지방이 축적될 경우 비만이 초래됐다. 종국에는 베타세포가 지친 나머지 숫자와 기능이 줄어들어 약의 용량을 늘리거나 인슐린을 추가 투여해야 했다.인슐린은 고인슐린혈증이나 비만, 치아졸리딘디온 계열 약물은 심장발작 등의 부작용이 우려돼 왔다.
이에 반해 DPP-4억제제는 생체의 인슐린 분비리듬과 가장 가깝게 혈당을 조절해주는 체내 호르몬인 ‘인크레틴’을 활성화시켜 당뇨병을 치료한다. 증가된 혈당에 반응해 분비되는 인슐린의 양을 늘리기 때문에 저혈당쇼크 위험이 월등히 낮고 체중이 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위장관계 부작용이나 부종과도 무관해 내약성이 우수하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적 감소와 기능 감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월등한 강점이다. 또 기존 치료제와 다른 약리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약이 잘 듣지 않는 환자에게 투여해볼 수 있다.
DPP-4 효소 억제제, 어떻게 작용하는가
제2형 당뇨환자에서는 췌장 섬세포(랑게르한스섬)의 기능 부전이 생긴다. 이로 인해 췌장 섬세포 중 알파세포에서는 글루카곤에 의해 당 과잉 생성이 유발되고, 베타세포에서는 인슐린 분비가 저해된다.
DPP-4억제제(dipeptidyl peptidase-4 inhibitor)는 췌장의 알파세포와 베타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작용해 신체의 자연적인 혈당조절 능력을 개선시키며 베타세포의 기능을 장기적으로 개선해 당뇨병 진행을 늦출 수 있다.
DPP-4 억제제는 인크레틴(GLP-1,GIP)의 활동을 저해하는 DPP-4효소를 억제한다. 인크레틴은 주로 식후에 분비돼 자연스럽게 혈당을 조절하는데 이를 막는 훼방꾼을 단속함으로써 혈당강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인크레틴의 기능이 크게 손상돼 있다. 당뇨병 환자는 식후 분비된 15~20% 정도의 활성형 인크레틴만이 간, 췌장에 도달해 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인크레틴의 활동을 저해하는 DPP-4효소를 억제하면 자연스럽게 혈당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같은 작용을 하는 DPP-4억제제로 현재 시판 중이거나 향후 1~2년안에 등장할 약으로는 한국MSD의 자누비아 등 7가지가 있다.
왜 한국형 당뇨병에 인크레틴인가
한국형 당뇨병은 수년전만해도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어렸을 땐 적정치 이하 열량을 섭취했던 지금의 장노년들이 성인이 돼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는 양이 늘어나면서 췌장이 이를 감당할 만큼 인슐린을 만들지 못해 발병하는 것으로 설명돼왔다. 그러나 최근엔 한국인 등 아시아인의 인슐린 분비량이 서구인의 2분의 1∼3분의 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타고 난 베타세포의 양이 적고 개별세포의 기능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아시아인에 ‘마른’ 당뇨병 환자가 많은 것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미국은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가 25∼30인 비만인구가 약60%인데 반해 한국은 10∼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국의 전체 당뇨병 유병률은 8%정도로 비슷해 아시아에 마른 당뇨병 환자의 비중이 높다.
당뇨병은 크게 인슐린저항성과 인슐린결핍 등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나타난다. 췌장의 베타세포는 인슐린 분비량을 좌우하며 베타세포의 양이 적을수록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커진다. 비만도와 베타세포의 양은 비례관계에 있다. 마른 사람의 경우 비만한 사람보다 베타세포의 양이 70~80% 적으며 특히 마른 당뇨병 환자는 비만한 당뇨병 환자보다 베타세포의 양이 더 적은 특징을 보인다. 타고난 베타세포의 양이 적으면 인슐린 분비량이 적은데 대체로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베타세포 및 인슐린 양이 적다.
인슐린저항성은 인슐린 분비량이 적지 않지만 인슐린이 효과적으로 혈당을 처리하지 못하는 형태이다. 한국인은 인슐린저항성보다는 인슐린 분비량의 부족 및 분비기능의 저하가 당뇨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게 최근의 견해들이다. 한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30대와 40대의 당뇨병 유병률은 4%와 6%로 서양보다 10배 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수십~수백년 전보다 음식물 섭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췌장세포가 손상되고 췌장기능이 저하되며 호르몬 교란으로 당뇨병이 더 증가하는 게 아닐까하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허내과의 허갑법 원장(전 연세대 의대 교수)은 “한국인은 대략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당뇨병이 70%, 인슐린 결핍에 의한 당뇨병이 40%로 추정되고 약10~15%는 두가지 요인을 동시에 가진 사람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설적으로는 인슐린이 적게 분비되는 마른 체구의 당뇨병 환자에게 인크레틴을 활성화시키는 DPP-4 억제제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의 DPP-4억제제인 자누비아의 경우 18주 동안 임상시험한 결과 한국인 당뇨병 환자의 당화혈색소(HbA1c·적혈구내 혈색소에 당이 붙어 있는 상태로 3개월간의 혈당수치 변화 추이를 반영하는 척도)를 1.38%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중국·인도의 평균인 1.03%보다도 높은 수치며 서구인에 비해선 50%나 혈당강하효과가 강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치다.
DPP-4 억제제의 한계
DPP-4 억제제라고 해서 결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들 약제는 베타세포 기능이 이미 현저하게 떨어졌거나, 인슐린이 분비되나 세포가 이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는 ‘인슐린저항성’이 강하거나, 장기간 인슐린주사로 치료해온 경우에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DPP-4억제제는 기존 먹는 약보다 혈당강하효과가 낮아 기존 약과 병용할 필요성도 있다.약값도 설포닐우레아계 약물은 하루분에 300원 미만인 반면 DPP-4억제제는 800~900원대로 훨씬 비싸다.
장기적으로 사망률과 유병률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결론지어진 게 없지만 임상연구에서 DPP-4 억제제는 비인두염, 두통, 오심, 고혈압, 피부이상반응 등의 이상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노바티스의 가브스는 임상시험 후 시판허가가 한참 동안 지연됐는데 영장류에 대한 독성실험에서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병변 문제가 원인이었다. 결국 이 부분은 끝내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DPP-4 억제제의 다른 이상반응으로 고혈압과 췌장염이 보고됐다. 이는 DPP-4 억제제가 염증세포의 집중을 완화시키는 DPP-4효소의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케모카인 CCL11/eotaxin에 의한 염증 유발을 억누르는 DPP-4의 기능이 차단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체외 시험관 연구에서 DPP-4 억제제는 GLP-2와 함께 대장암의 증식과 전이를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장기적인 암유발 가능성은 입증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