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통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도회적으로 세련되게 감정을 절제하느라 그런 것인지 떠나감에 대한 가슴아픔을 눈물로 표현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문상을 하는 사람이나 조문을 받는 사람의 표현도 진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상입니다”,“좋은 때에 돌아가셨죠”, “그동안 병 구완 하시느라 고생하셨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살아야죠” 등 죄다 초상치르는 사람을 위한 말 뿐이다.
“어른을 저번에 뵈었을 때엔 혈색이 좋으셔서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다니 통절한 마음입니다” “생전에 어른이 저희들에게 베푼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등의 고전적인 문상의 예를 갖추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부유한 상주는 아버지가 중환으로 의식을 잃자 막강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진료비 아끼려 몇날 몇달을 다인실에 모셔뒀다가(처박아놨다가 정확한 표현일 듯) 부친이 목숨줄을 놓자 유명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제일 큰 방으로 안치해 수금(조의금 접수)하기에 여념이 없다.
옛말에 살아 진천이요,죽어 용인(生居鎭川 死後龍仁)이라는 말이 있었다면 1990년대 의료계에는 ‘진단은 서울대병원에서,수술은 서울아산병원에서,장례는 삼성서울병원에서’라는 유행어가 입에 회자됐다.
그만큼 사망자가 속출하는 환절기나 혹한기,혹서기에 대형병원 장례식장의 큰 방을 잡는 것은 세력과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 됐다. 병원들도 진료수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영안실 수입에 관심을 갖고 장례식장의 업그레이드에 많은 신경을 쓴다. 병원들의 3대 부수입(비 진료수익)은 장례식장 운영비, 지하매점 임대료, 주차료 등이라는 말도 있다.
또 상주가 CEO이면 회사 직원들이 머슴처럼 3일 내내 조문객을 안내하고 음식을 나르는 등 이런저런 험한 일을 마다 않는다. 하지만 어떤 CEO 상주는 수억원대의 부조금을 받고도 고작 1백만~2백만원 어치의 회식비를 내주며 고생했다고 쓸쓸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한다.
게다가 장례식장에는 얼마나 많은 비리가 존재하는가. 국내 대다수 상조회사의 창립자들은 수의, 납골당에 관한 리베이트를 꼬박꼬박 챙겨 개인통장에 입금시키느라 혈안이 돼 있다. 죽어서라도 망자에게 좋은 입히겠다고 안동포로 된 수의를 사지만 거의 대부분 짜다. 나이드신 할머니들이 더 이상 안동포를 짤 기력이 없어 수년전부터 공급량이 확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중국산 삼베라는 것도 알고보면 원료는 면이고, 질감만 삼베처럼 짠 게 허다하다. 국산 수의 중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2010년 가을에는 상조업체 비리사건(1위인 보람상조 대주주 300억원 횡령, 2위인 현대상조 100억원대 횡령)이 잇따라 터지자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장례서비스업(상조회사)에 진출하려다 당시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과 슈퍼슈퍼마켓(SSM)의 동네 출점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자 포기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를 갖추자. 상주든, 조문객이든 뜨거운 눈물이라도 흘려보자. 곡(哭)소리나는 옛 장례식장의 풍경이 아련할 정도다. 대체보완의학 중에 울음치료,눈물치료라는 게 있다. 감정이 녹아 있는 뜨겁고 짠 눈물에는 카테콜아민이라는 스트레스호르몬이 들어 있어 스트레스 발산에 좋다고 한다. 카테콜아민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분비되면 만성위염이나 위궤양 같은 소화기질환이 생기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동맥경화나 심근경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양파를 썰거나 매운 것을 먹어서 흘리는, 불편한 자극에 의해 생기는 눈물은 싱겁다. 스트레스에 의한 눈물이 아니기 때문에 카테콜아민이 들어있지 않다. 한바탕 곡소리로 망자도 기리고 병도 치유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누구 하나 큰 목소리로 지지를 호소하며 자기의 공약과 소신을 밝힌 것을 들은 바가 없다. 민심의 심판을 받는 축제이자 정치 이벤트인 선거에서 마치 저승문 앞과도 같은 침묵만 흘렀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메가폰을 들고 후보자가 동네 어귀에서 큰 소리로 유세를 하면 밤새도록 장사하다 낮에 잠을 자는 상인들과 야간근로자들이 화가 나서 후보를 찍기는 커녕 반대 후보를 역선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초중고 교정에서 선량들의 합동 유세를 지켜보며 자란 필자로서는 그 어떤 잡음에도 불구하고 시끄러운 유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례식장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는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 상조업체의 비리가 끼어들지 않도록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경찰과 검찰은 철저히 사찰해야 한다. 망자가 떠나는 어수선함을 틈 타 돈을 챙기는 게 아름답지 않다.시골마당에 천막을 여러개 펼쳐 놓고 직접 음식도 장만하고, 밤새도록 통음도 하며, 곡소리가 서글프고 쩌렁쩌렁하던 옛날의 초상집 풍경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