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요일 밤 방송되는 KBS의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로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절정이다. 다른 지상파나 종편방송사들은 아예 추격을 포기했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독주를 하고 있다.
마땅히 웃을만한 일도 없는데 그저 TV수상기를 틀면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러가니 괜찮은 일이다.하지만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출근을 생각하면 그 웃음마저도 씁쓸하다는 사람도 많다.개콘에 나가기 위해 KBS에 전속된 많은 개그맨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과거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2~3일 연습하고 말았는데 지금은 개콘 출연진이 거의 매일 출근해 아이디어를 짜고 동료들간에 연기호흡을 맞춘다고 한다. 코너가 재미없으면 폐지되고 캐스팅될 기회를 잃으니 개그맨들은 가히 프로페셔널의 생태계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이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꺾기도’이다.다른 코너는 뇌를 써야 하는데 꺾기도는 뇌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처럼 동작이 너무 과한 것도 아니고 말 장난도 적당히 유치한 게 볼 만하다. 다른 코너가 상당히 사회비판적이고 인생의 맛을 담은 것이라면 이 코너는 황당한 말과 몸 개그로 자연스럽게 웃음보를 터뜨리는 게 백미다.
‘생활의 재발견’도 매우 좋아한다.남녀 연인간에 ‘끄덕하면 그만 만나자’며 밀고 당기기는 애정다툼이 사소한 일상과 화학적으로 매치된 게 잔잔한 웃음을 준다.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는 사회적 체면과 통념 때문에 보다 솔직하고 이기적이고 싶지만 드러낼수 없는 속내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줘 통쾌함을 유발한다.
‘불편한 진실’은 애정남과 전개방식은 비슷하다.하지만 남녀간의 심리차이, 세대간의 심리차이에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의 묘한 심리를 현미경과 망원경을 들이대고 묘사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교무회의’도 참 재미있다.셈에 밝고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며 스타강사라 되려는 수학 선생, 가장 윤리적이지 않고 매너없어 보이고 거친 윤리 교사, 소신의 없고 의타심이 강한 미술교사, 연예인 엔터테인먼트에 관심많은 음악교사, 이들 중구난방 교사를 확실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교장선생님 등 어수선한 공교육 현장이 풍자적으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지인들 중에 교사가 제법 많은 까닭에 정말 이런 식이라면 선생님의 존재가치가 흔들리고 우리나라의 앞날이 어두울 것 같아 심기가 편치 않다.
‘사마귀유치원’은 어린이들에게 성인들의 잘못된 타성을 가르치는 듯하지만 실제는 순수성과 양심을 잃기 쉬운 성인들을 꾸짓는 듯한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상대책위’와 ‘감수성’은 위기에 허둥대며 갈팡질팡하는 정부당국자나 과거 왕조시대를 풍자하는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비상대책위는 김원호의 이런저런 구구절절한 변명이 압권이다. 감수성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일어났을 법한 풍경을 묘사하는데 과거 ‘봉숭아학당’ 코너처럼 정신없는 말과 행동이 그냥 타임킬링에는 그만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코너는 세상에 감사할만한 사소한 일이 참 많다는 메시지가 긍정적인 호소력을 지닌다. ‘네가지’는 뚱뚱한 놈, 촌놈, 인기없는 놈, 키작은 놈에 대한 신세한탄과 자기항변이 재미있다. 실제 네가지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면 썩 내세울 게 없고 마음의 상처가 많을 터인데에도 이를 반전법으로 포장한 게 그만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실연 당해 낙심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려는 피해의식 많은 남자를 대상으로 세상의 벽을 뛰어넘는 용기를 내라고 권유하지만 결국 ‘노력해도 안될 놈은 안돼’처럼 무기력함을 남기는 쓴맛이 묘하다. 신보라 등의 개성있는 절창이 강하게 시청자를 어필한다.
‘이기적인 특허’는 삼성과 애플을 비롯해 기존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풀 하우스’는 빈자들의 애환과 절망속의 긍정을 보여주는 휴먼다큐멘터리 냄새가 난다. ‘아빠와 아들’은 이른 바 먹는 것이면 문제가 다 해결되고 부자간에 마음이 통한다는 일종의 ‘신흥 돼지 부자’를 묘사한 것인데 먹을 것 넘쳐나는 세상에 식탐에 쉽게 무너지는 메시지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이밖에 ‘위대한 유산’은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래된 옛날도 아닌 불과 10~20년전의 사라진 일상을 바탕으로 30대~40대 초반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있기 없기’는 교도소 면회장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의 옛 사랑 회고와 재미있는 말담으로 반전주기가 은은하다.
개그콘서트를 보고 나면 만드느라 참 고생했겠다 싶다.우리가 이 프로를 보고 열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한 것을 낯설은 시각으로 콕콕 짚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 ‘창조적’이라고 하면 무에서 유를 만드는 대단한 작업으로 생각하지만 정말 대박나는 창조는 한 세기에 몇 개나 될까. 심지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발견조차도 인류가 불, 종이, 화약, 신대륙, 증기기관차, 컴퓨터, 전구 등을 발견 또는 발명한 것에 비하면 장고한 역사 중에서 그다지 경이로울 게 없다는 게 인류·미래학자의 견해다.
결국 우리 뇌에서 감성적으로 창조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새롭다’는 느낌, 더 정확히는 ‘다르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가 웃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지만 사실 재미있다는 최종적 감성이고,재미를 일으키는 방아쇠는 ‘다름’(distinction)이란 창조적 감성에 기인한다.
개그프로그램을 지극히 분석적으로 보면 흥미가 떨어지겠지만 지금의 현상을 뒤집어보면 발전할 모멘텀도 얻고 옹졸하지 않게 큰 비전을 세워 밀어나갈 힘이 배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