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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과 모럴해저드 늪에 빠진 한국의 보험상품【1】
  • 안지용 기자
  • 등록 2012-04-10 00:44:28
  • 수정 2013-04-25 17: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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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보험사도 가입자도 펑펑 쓰면 그만, 뒷감당은 누가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 모씨는 M화재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후 3년이 지난 작년 10월 보험 갱신 안내장을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보험료가 8710원에서 1만6540원으로 무려 90%나 인상됐기 때문이다. 특히 질병입원의료비는 인상률이 무려 108%나 올라 보험사에 문의해보니 보험사 손해율이 상승하고 연령이 높아져 보험료가 오른 것이란 설명밖에 들을 수 없었다.

김모씨실손보험인상표-수정.jpg

실손보험료ㆍ암보험료 줄줄이 인상 대기 … 보험사 과당경쟁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내놓은 민영의료실비보험와 암보험의 보험료가 이달 들어 또 올랐다.이미 올린 보험사가 서너군데고 나머지 거의 모든 보험사도 속속 인상할 태세다. 2009년 정부가 의료실비보험의 지급액 중 자기부담금을 0%(제로)에서 10%로 올리자 보험사들은 ‘의료실비를 100% 보장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라는 식의 문구를 내걸고 무리한 절판마케팅으로 고객들을 유치했다.
가입자가 여러 실손보험에 들어봤자 중복 보상을 받을 수 없음에도 보험사들은 겹치기 가입을 유도했다. 또 모든 실손보험 상품이 3~5년마다 보험료가 올라가는 자동갱신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는 가입자들에게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공격적 영업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중복가입에 따른 보험료 낭비와 보험료 인상 폭탄을 한꺼번에 맞고 있다. 가입자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최근까지 해당보험사와 소비자보호원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감독원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보험료 인상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보험사 간 과당 경쟁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적정 손해율을 예상, 그에 맞게 보험상품을 꾸리지 않고 일단 무리하게 보험료를 낮게 책정하면서 많은 보장을 해준다고 약속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유치하는데 급급해하고 있다. 이런 탓에 실손보험 손해율은 2008년 이후 꾸준히 100%를 넘고 있다. 비유하자면 보험사가 120원의 보험료를 거둬 사업비로 약20원을 쓰고 나머지 100원으로 가입자에게 보상을 해주다 지출할 돈이 모자라면 100원을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향후 들어오는 기존 및 신규 가입자의 보험료 수입과 기존 가입자의 갱신 보험료 인상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보험사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보험가입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이는 보험사들이 절판마케팅에 열을 올릴 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보험사들이 무리한 절판마케팅, 공포마케팅으로 실손보험을 판매하고 해마다 가파르게 보험료를 올리고 있어 도덕적 해이가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신문에 게재된 실손보험 광고로 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과잉진료 부추기는 병원과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는 가입자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이처럼 무리하게 고객을 유치해 온 보험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실손보험 가입자와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가입자들은 진료비의 90%를 대신 내주는 보험의 혜택을 든든한 배경삼아 보험 가입 전보다 더 자주 병원에 가 의료쇼핑을 한다.병원도 수입을 늘리기 위해 이들을 과잉진료하며 맞장구를 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서울의 한 학원강사는 말을 많이 하는 탓에 목이 아프고 열이나 대형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후두염인 듯 하지만 종양일 수도 있으니 피검사, 흉부 X-레이 촬영, 소변검사 등을 받아보라”고 했다. “실손보험에 들었으니 공짜나 마찬가지”라며 의사는 불필요한 치료를 부추긴다.
실손보험가입자인 마포의 오 모씨도 지난 겨울 얼어 붙은 길을 가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타박상을 당해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오 씨에게 자기공명영상(MRI)를 찍어보라고 권하자 별 부담없이 응했다. 편두통을 간헐적으로 앓는 이 모씨는 동네 종합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는 이 씨에게 뇌스캔검사를 권했다. 경증 디스크 환자 권 모씨는 병원의 권유로 불요불급한 디스크 수술을 받고 후회하고 있다. 이처럼 실손보험 가입으로 쓸데없는 치료를 받고 과잉진료를 일삼는 도덕적 해이가 의료현장에서 난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창호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박사는 “보험 가입자들과 병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는 법적인 처벌을 하는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가입자들과 병원이 자성하고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것밖엔 지금 당장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이어 또 한차례 절판마케팅 기미 … 보험료 자기부담금 인상 핑계

실손보험의 보험료가 이달부터 인상될 예정인데다 지난 3월말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이 실손치료비의 자기부담금을 10%에서 20%로 올리는 방침을 논의했다고 알려지면서 또 한 차례 ‘절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릴 태세다. 직장인 박 모씨는 지난달 K손해보험사 설계사를 통해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박 씨는 ‘곧 실손보험료가 오르고 자기부담금이 20%로 올라 지금이 아니면 기존 가입자처럼 많은 보장을 못 받는다’, ‘이달 말까지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가 크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는 설계사의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회사원 최 모씨도 알고 지내던 C보험사 설계사가 “암 발생 증가율이 높아지고 보험사가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조만간 암보험이 사라질 것”이란 말을 듣고 서둘러 암보험에 가입했다. 이미 다른 암보험에 가입한 최씨는 설계사가 내놓은 가파른 암발생 증가 추세와 엄청난 암 치료비용을 보도한 언론기사를 보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절판마케팅에 속았다고 깨닫고 해약을 결심 중이다.
보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소비자들을 ‘낚기’ 위해 암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암 치료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시급하게 보험을 준비하지 않으면 ‘노년에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겁을 주는 ‘공포마케팅’이 절판마케팅과 병행되고 있다.
공포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가 은퇴하는 55세 이후를 노리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은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중병에 걸려 치료에 들어갈 막대한 병원비나 노후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자극하면 소비자들은 보험가입을 외면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공포마케팅·절판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 소비자의 튼튼한 귀 필요

소비자들이 무분별하게 설계사의 말만 믿고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보험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은 “설계사의 말이나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며 “소비자들이 보험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의 세부 개념이 어렵고 보험의 종류도 다양하고 가입시 받아보는 약관의 분량도 너무 많아 무지한 소비자는 보험사의 전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창호 박사도 “보험이 소비자들에게 어렵고 보험 판매체계가 대리점이나 설계사들이 소비자에게 강권하는 형태를 띤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보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보험에 가입할 땐 허위광고 여부를 반드시 검토하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상품인지 철저히 확인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 경영대학원 교수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이란 것이 장난감 조립할 때 보는 설명서처럼 쉬운게 아니라서 보통 설계사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한 명의 소비자가 보험에 가입할 때 한가지라도 더 챙겨 설계사들을 피곤하게 하고 깐깐하게 요목조목 따지기 시작한다면 보험사도 가입자를 쉽게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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