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들이 포도 위에 다소곳이 내린다
저 잎새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이 옛날에 있었다.
이시영님의 '무늬'라는 시집에 수록된 '무늬'라는 시다.
시 한편을 두고 고리타분한 글을 얼마나 길게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부적절한 예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1994년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에 실렸으니 30년은 족히 넘은 시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접한다면 자연친화적이고 순응적 모습으로 목가적으로 읽힌다.
작가의 생각을 읽어낼 필요도 없고 창작의 산고 끝에 태어난 글이니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읽는 이들 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포장된 도로가 흔치 않은 시절 즐겨쓰던 포도라는 단어가 과일로 읽힌다고 잘못된 해석 일리도 없다.
나뭇잎들이 자라났던 가지는 굴레였을까 아니면 안식이었을까.
뜨거운 햇살아래 치열했던 부대낌을 뒤로하고
그간 보지 못했던 자신이 속해 있던 나무의 온전한 모습을 보게된 것은 헤어짐 보다는 떠남, 다른 시작 아닐 듯 싶다.
시인의 기억하는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짐작이 가는 이가 한 분있다. 젊은 시절 운이 좋게 기회가 닿아 이시영 님께 여쭤보기도 했지만 웃으시고 말았다.
그러한 이유로 잘못 짚었을 확률이 높기는 하다. 같은 길을 걷다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택했는데, 반대편으로 간 것도 아닌데 혹자는 변절이라고 비난했고 그 시절에는 그렇게 편협했다.
내 삶은 잠시나마 어떤 무늬를 남기게 될까. 허투루 사는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