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와 윤지훈 전 교수(현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이철환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팀(임성균 연구원)는 신경발달장애와 관련된 HDAC3 유전자의 변이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희귀 유전질환 환자들이 겪는 ‘진단 방랑’을 줄이고, 더 정확한 유전자 진단과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신경발달장애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서울대어린이병원 희귀질환센터를 방문한 251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전장엑솜시퀀싱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희귀질환은 전체 인구의 약 5~6%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질환군이다. 지금까지 약 6000~7000개의 희귀 유전질환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으나, 여전히 많은 유전질환의 원인이 미확인 상태로 남아 있어 추가적인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신경발달장애와 같은 복합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발굴하는 것은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연구팀은 환자와 부모의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환자 2명의 HDAC3 유전자에서 신생 돌연변이(de novo 변이) 2가지를 발견했다. HDAC3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로, 이번 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의 변이가 신경발달장애와 관련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국내 2명의 환자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연구진과 협력해 4명의 추가 환자를 찾아내어, 최종적으로 6명의 환자에서 HDAC3 유전자에 6가지 신생 돌연변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국내외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희귀한 사례들을 모아 분석함으로써, 희귀 유전질환의 정확한 원인을 밝힌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돌연변이들이 HDAC3의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관 내 실험, 세포 실험, 단백체 분석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 돌연변이들이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의 활성 저하(66%), 단백질 복합체 형성 저해(100%), 단백질 복합체의 핵 내로의 이동 저하(75%)를 초래해 신경발달장애의 다양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HDAC3 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발달장애의 병리학적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한 중요한 연구로, HDAC3 유전자가 인간의 생리적 기능과 질병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채종희 교수는 “어린이들의 심한 발달장애를 초래하는 희귀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밝혀내는 일은 환자와 부모의 진단 방랑을 줄이고, 가족의 미래 자녀 계획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환 교수는 “이번 연구는 HDAC3 변이의 병리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신경발달장애의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개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후속 연구를 통해 신경발달질환의 새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지훈 교수는 “희귀 유전질환의 신규 원인 유전자를 규명하는 일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희귀한 사례들을 모아 유전체를 분석하고, 실험을 통해 완성되는 어려운 작업”이라며 “이번 연구가 아직 질환의 정체를 규명하지 못한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진단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유전자 기반 맞춤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지원 사업, 한국연구재단, 서울대 의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유전학 분야 최고 저널인 ‘미국 인간유전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 IF=12.6) 최신호에 ‘De novo missense variants in HDAC3 leading to epigenetic machinery dysfunction are associated with a variable neurodevelopmental disorder‘란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