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 기립박수의 주인공이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의 유방암 치료효과였다면, 올해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미국 시젠(Seagen)과 일본의 아스텔라스가 공동 개발한 ADC인 ‘파드셉주’(Padcev 성분명 엔포투맙 베도틴, enfortumab vedotin-ejfv, 약칭 EV)의 요로상피암(대부분 방광암)이었다.
지난 22일 스페인 마드리드 IFEMA 전시장에서 토마스 파울스(Thomas Powles) 영국 런던 퀸메리대 유전종양학 교수는 파드셉과 미국 머크(MSD)의 PD-1 억제제인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 병용요법의 ‘EV-302/KEYNOTE-A39’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요로상피암 환자 886명을 대상으로 이들 병용요법을 1차 치료제로 투여한 이번 임상 결과 1차 평가지표인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맹검독립중앙심사위원회(blinded independent central review, BICR) 기준 31.5개월을 기록했다. 대조군이었던 백금기반 화학항암요법(젬시타빈+시스플라틴 또는 카보플라틴) 16.1개월 대비 1년 이상 늘어났다(P<0.00001). 사망 위험이 53%(HR 0.47) 감소했다.
공통 1차 평가지표인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 또한 12.5개월 대 6.3개월로 2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이 55% 감소했다.
2차 평가지표인 객관적반응률(ORR)은 키트루다+파드셉 병용군에서 68%(95% CI : 63.1-72.1, P<0.00001)로 나타났고, 화학요법군에서는 44%(95% CI : 39.7-49.2)를 보였다. 키트루다+파드셉 병용군에서는 29.1%가 완전관해(CR), 38.7%가 부분관해(PR)를 보였으며, 항암화학요법군에서는 각각 12.5%와 35%로 나타났다. 키트루다+파드셉 병용군은 약물반응기간(DoR) 중앙값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동안 요로상피암에서 표준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알려졌던 ADC가 1차 치료제로서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내 크게 주목받았다. MSD는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키트루다+파드셉 병용요법을 요로상피암의 1차 치료제로 추가 승인 신청할 계획이다. 승인된다면 부작용이 많은 화학요법제를 거치지 않고 이 병용요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다만 높은 약가 부담이 걸림돌이다.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은 2상 연구인 ‘EV-103/KEYNTE-869’ 결과를 근거로 지난 4월 3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스플라틴 기반 화학요법제가 부적합한 환자의 진행성 또는 전이성 요로상피암 2차 치료제로 가속승인을 받았다. 미국에서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요로상피세포암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ADC와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하는 요법이 허가를 취득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객관적반응률(ORR)과 반응지속기간(DOR) 중앙값을 근거로 가속승인이 나왔다. EV-103/KEYNTE-869 임상에서 ORR은 68%로 산출됐고 완전반응은(CR) 약 12%, 부분반응(PR)은 55%이었다. 당시 반응지속기간 중앙값은 코호트 A에서 22.1개월(컷오프 시점 기준, 1~46.3개월 이상)로 산출됐고, 코호트 K에서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1.2~24.1개월 이상).
이번 EV-302/KEYNOTE-A39 임상에서 늘어난 추적관찰 기간을 통해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은 완전반응을 보인 환자 비율이 늘어났다.
경쟁약 키트루다에 패배한 ‘옵디보’
하지만 같은 날 10여 분 후에 공개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및 일본 오노약품공업의 PD-1 억제제인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와 화학요법제 병용요법의 요로상피암 1차 치료제 성적은 파드셉+키트루다에 크게 뒤져 반응이 써늘했다.
3상 ‘ChckMate-901’ 임상 결과 옵디보 병용요법은 mOS는 21.7개월로, 화학요법 단독(18.9개월) 대비 2.8개월을 늘리는 데 그쳤다. 암의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은 22% 감소했다.
mPFS도 경쟁요법에 크게 못 미쳤다. 옵디보·화학항암제 병용요법은 7.9개월, 화학항암제 단독요법(젬시타빈+시스플라틴)은 7.2개월이었다.
잇달아 발표된 두 개 임상 결과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 좌장을 맡은 안드레아 아폴로(Andrea apolo) 미국 국립암센터 연구관은 “파드셉과 키트루다 병용요법이 요로상피암 1차 치료법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이 놀라운 OS 성적으로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약 30년 만에 1차 치료의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며 “생존기간을 2배 가까이 연장시킨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고가의 치료제인 키트루다와 파드셉의 약가를 어떻게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지, 파드셉이 가지는 신경독성, 고혈당증, 피부질환(스티븐스존슨증후군(Stevens Johnson syndrome, SJS) 또는 독성표피괴사용해(toxic epidermal necrolysis, TEN) 등의 중증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드셉(올해 3월 10일 국내 승인)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임상에 활용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만큼, 임상의사들이 독성 관리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또 “파드셉의 부작용을 고려하면 옵디보와 젬시타빈 병용 3상 연구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3차 치료로 주로 사용되던 파드셉과 2차 치료로 사용되던 키트루다가 1차 치료로 넘어온다면, 차기 2차 치료는 어떤 옵션이 주어질 지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제기했다. 그는 “파드셉은 화학요법제와 기전이 달라 만약 1차 치료제가 된다면, 현재 1차 치료로 사용되는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 병용요법이 2차 치료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