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연구 개발(R&D) 투자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스위스계 제약바이오기업인 로슈(Roche)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제약사들의 R&D 투자 전체 규모는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한 가운데, 로슈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투자 규모 1위를 유지했다. 2021년 10위권에 들지 못했던 프랑스 사노피(Sanofi)는 1년 만에 다시 10위권(9위)에 진입했다. 사노피는 70억6000만달러를 투자해 전년 대비 18% 증액됐다.
27일(현지시각) 미국 제약·바이오 전문매체 피어스바이오텍(Fierce Biotech)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R&D 10위권 제약사들의 투자 규모 총 합산액은 1043억2000만달러로, 전년(1081억 달러) 대비 약 3.4% 감소했다.
로슈의 2022년 R&D 투자액은 147억1000만 달러로 전년 161억달러에서 소폭 줄어들었다. 로슈는 투자 금액 대비 신약개발 성과는 미흡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가장 주목을 받았던 알츠하이머병의 신약후보물질인 ‘크레네주맙’(crenezumab)과 ‘간테네루맙’(gantenerumab), TIGIT 억제제 계열 항암제 ‘티라골루맙’(tiragolumab) 등이 모두 임상 실패로 쓴맛을 봤기 때문이다.
전년 대비 투자 증가율이 두 자리수를 기록한 기업은 △미국 머크(Merck, MSD, 10.6%↑) △미국 화이자(Pfizer, 10.0%↑) △프랑스 사노피(18.0%↑)였다. 이 가운데 MSD와 화이자의 지출 증가는 각각 ‘키트루다’ ‘코로나19 백신’에 편중된 최근 수년간의 매출을 다각화하기 연구개발 투자를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에 135억5000만달러를 투자한 MSD는 PD-1 면역관문 억제제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이 지난해 209억3700만달러(전년 대비 22% 성장) 매출로 항암제 시장을 주름잡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했지만 2028년 특허 만료를 앞두고 이를 대체할 수익원 찾기가 시급하다.
MSD의 2023년 총 매출액은 593억달러로 이 가운데 키트루다가 차지하는 비중은 35%를 웃돈다. 이런 매출 편중을 타개하기 위해 이의 일환으로 MSD는 지난해 약 100개 이상의 2~3상 임상시험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
지난해 114억3000만 달러를 R&D에 투자한 화이자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화이자의 전체 매출(1003억3000만달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제품군은 단연 코로나19 의약품이었다.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주’(Comirnaty)는 265억달러,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정’(Paxlovid, 성분명: 니르마트렐비르·리토나비르, nirmatrelvir·ritonavir)는 170억 달러로, 총 합산 매출액 335억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 관련 품목으로만 전체 매출의 44%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유행도 팬데믹에서 엔데믹을 향해 가면서 화이자로서는 새로운 캐시카우 창출이 절실하다. 이에 화이자는 향후 1년 6개월간 18~19개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사노피는 2022년 가장 높은 R&D 투자 증가율을 보였다. 전년 57억9000만 달러에서 18% 늘어난 70억6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R&D 비용이 이처럼 증가한 것은 그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A형 혈우병 치료제 ‘알투비요’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예방 항체(백신과는 다름) ‘베이포터스’에 대한 투자금이 증액됐기 때문이다.
‘알투비요’(Altuviiio 성분명 에파네스옥토코그 알파, efanesoctocog alfa, Fc-VWF-XTEN Fusion Protein-ehtl)는 지난 2월 23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출혈 에피소드의 일상적인 예방, 출혈 조절을 위해 필요할 때 사용하는 치료, 청소년 및 성인 A형 혈우병 환자들의 수술 전‧후 관리 등의 적응증으로 시판허가를 받았다.
‘베이포터스’(Beyfortus, 성분명: 니르세비맙·nirsevimab)는 지난해 11월 4일 유럽연합(EU) 승인을 받았고, 현재 미국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반면 연구개발 투자 7위를 차지한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 Myers Squibb, BMS)은 R&D 투자비용 감소폭이 가장 컸다. BMS는 전년 113억달러에서 15% 줄어든 95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2022년 실적 발표에서 “투자금 감소는 경영에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글로벌 제약업계는 BMS가 R&D를 협력사에 외주함에 따라 비용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컨대 BMS의 CAR-T 치료제 ‘아베크마’(Abecma, 성분명: 이데캅타진 비클류셀·idecabtagene vicleucel)는 미국 블루버드바이오(BluebirdBio)와 공동 개발한 것이다.
이밖에 10위권의 연구개발 투자 업체로는 △2위 존슨앤드존슨(얀센) 146억달러(전년 대비 0.8% 감소) △5위 노바티스 100억달러(5% 증가) △6위 아스트라제네카 97억6000만달러(0.3% 증가) △8위 릴리 71억9000만달러(4.0% 증가) △10위 애브비 66억1000만달러(6% 감소) 등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릴리로 25%였다. 다음으로 MSD 23%, 로슈·아스트라제네카 각각 22%, BMS 21%, 노바티스 20% 순이었다.